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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어머니는 바보야 36회

2026-04-15 10:01 | 입력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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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목포공생원 원장
공생복지재단 회장
- 1942년 목포 출생
- 중앙신학교(現 강남대학교) 사회사업학과를 졸
- 아동복지시설「목포공생원」의 원장
- 정신지체장애인시설「공생재활원」을 설립
-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회장(1987年~2001年)을 역임
- 1989년 일본 최초의 재일동포를 위한 노인복지시설「고향의 집」을 건립
- 1978년 제22회 소파상등 수상다수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이사장
- 저서는《김치와 우메보시》, 역서는《괴짜총리 고이즈미, 흔들리는 일본》 《고령사회 이렇게 살아보세》가 있다

윤문지
공저자 윤문지(타우치 후미애)
공생복지재단 이사장

-1949년 일본 오사카 출생
- 쿄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
- 1972년, 한국 목포로 건너와 목포공생원 생활지도원 역임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 이사, 사회복지법인 윤학
자공생재단 이사, 사회복지법인 공생복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제3회 여성휴먼다큐멘터리 대상에《양이 한 마리》로 입선
- 1982년《나도 고아였다》로 일본 크리스천신문 제5회 아카시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



“기야, 오늘은 네 방에서 묵었다 가고 싶구나.”
“그렇게 하세요.”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날 밤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누웠다.
“기야.”
어머니가 나지막이 부르셨다.
“네?”
“나 말이다. 네가 어른이 된 것 같아 기쁘다.”
나는 별소리도 다 하시는구나 싶었다.
“너는 나보다 훨씬 강해 보여. 마치 네 아버지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숨을 죽이고 어머니의 다음 말씀을 기다렸다.
“내가 네 나이만 했을 때 생각이 나는구나. 얘기한 적이 없지? 그러니까 내가 여학교 시절, 그땐 정말 행복했었지. 먹을 것, 입을 것,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생활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는 조용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것은 어머니 치즈코의 반생(半生)을 회고하는 이야기였다.

치즈코는 여학교 시절부터 허약한 체질이었다. 아버지가 조선 총독부 관리로 있었기 때문에 유복한 생활을 했다. 그러다 치즈코가 스무 살 되던 해 아버지가 급환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 하루(春)는 남편이 죽은 후 조산사로 일하면서 치즈코와 살아갔다.
치즈코는 여학교를 졸업한 후 3년 동안 오르간을 익혔다. 은사인 다카오(高尾) 선생의 부인이 음악 선생이었다. 두 분 다 크리스천이며 사제 간으로 인간으로서 서로 깊이 신뢰하며 지냈다. 크나큰 행운이었다. 다카오 선생은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유학하셨으며 무척 통이 큰 분으로 폭넓은 대인 관계를 맺고 계셨다.
그런 다카오 선생이 어느 날 치즈코를 불렀다.
“치즈코 양, 보람 있는 일 해 보지 않을 텐가?”
그리고는 말씀을 계속하셨다.
“이 지방에 공생원이라고 하는 고아원이 있지. 그곳 원장은 크리스천으로 교회 모임에 자주 얼굴을 보이시는 분이다. 이 사람은 다리 밑에서 떨고 있는 일곱 명의 거지와 생활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수십 명의 가족으로 컸어. 헌신적인 사랑으로 돌보고 있지만, 왠지 아이들의 얼굴엔 좀처럼 웃음이 없다는구나.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을 되찾아주고 싶다면서 원장이 나를 찾아왔었지.”
치즈코는 은사님이 무슨 말을 꺼내시려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치즈코 양을 믿기에 하는 말이네만, 공생원에 가서 아이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주는 일을 해 보지 않을 텐가?”
치즈코는 망설였다.
“분명히 알아둘 일이 있어. 그 웃음을 잃은 아이들은 전부가 고아거나 버려진 아이야. 부모 없고 버려진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많은가 하는 건데, 모두가 우리 일본이 만들어낸 과오지. 우리 일본인이 이 한반도에 침입해 들어와 조선 총독부를 세우고 악랄하게 토지를 수탈하여 무고한 농민이 고향을 등지고 떠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 것 아닌가? 그런 만행을 저지른 사람은 권력층이므로 우리는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우리는 크리스천이 아닌가? 버림받은 아이, 사고무친 한 아이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같은 인간, 한 형제들이지 않은가? 그러니 가서 일해 주길 바라네. 치즈코 양이 가서 음악이든 무용이든 무엇이든 좋으니까 아이들 얼굴에 다시 웃음이 돌게끔 노력해 주길 바라네. 그것이 나의 간곡한 부탁이야.”
스물여섯의 치즈코에게 있어 이 이야기는 대단히 충격적이었고 동시에 감동적이었다.
치즈코는 어머니 하루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음, 다카오 선생님의 말씀이라면 틀림없을 게다. 하지만….”
어머니의 동의는 치즈코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다음 주 일요일 치즈코는 공생원을 방문했다. 윤 원장은 진심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하지만 치즈코 씨처럼 고생 모르고 자란 분이 이곳 생활을 견딜 수 있을는지요. 보시다시피 먹을 것도 제대로 없는 형편이고, 저 또한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미 각오는 한 바였지만 공생원은 그야말로 초라한 시설로(사실 시설이란 이름도 거창하다) 벽도 칸막이도 없는 10평 정도의 방 하나가 전부였다.
치즈코는 그 허술한 곳에 있기로 했다. 그날부터 음악 지도는 차치하고 아이들의 시중이 시작되었다. 4~50명의 고아들에 원장 한 사람이 매달려 돌보고 있었다. 원장은 까까머리에 밀짚모자를 쓰고, 남들은 다 구두를 신고 다니는 시대에 유독 짚신을 신고 다녔다.
그러나 그의 눈은 얼마나 맑고 깨끗했는지 한눈에 신념이 강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첫 대면에서 치즈코는 이 청년에게 마음이 끌렸다.

(다음 3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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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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