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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본부장 박정완 장로
(목포중부교회) |
설 명절 오후, 온 가족이 둘러앉은 거실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집안 공기를 따뜻하게 덥혔다. 여섯 살, 일곱 살 손녀와 네 살 손자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명절의 기쁨은 아이들 덕분에 더욱 깊어졌다.
발단은 ‘베개 밀치기’ 놀이였다. 두 사람이 한 편이 되어 상대를 밀어 제압하면 이기는 단순한 게임이다. 나와 아들이 한편, 두 손녀가 한편이 되었다. 어른의 힘으로야 질 리 없었지만, 예쁜 손녀들을 이길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슬며시 밀리며 져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른의 계산이었을 뿐,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엄연한 승부였다.
승리한 여섯 살 손녀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진 사람은 엉덩이로 자기 이름 쓰기!” 벌칙 수행이 뒤따랐다. 대충 흉내만 내자 곧바로 판결이 내려졌다. “성의 없으니 감옥!” 항변의 여지도 없었다. 나는 작은방으로 끌려갔다. 이름하여 ‘감옥’이었다. 설 명절의 가장이 하루아침에 수형자가 된 셈이다.
감옥에도 수칙은 엄격했다. “누워 있으면 안 된다. 풀어주기 전까지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 잠시 자세를 바꾸었다가 10분 추가형을 받았다. 신문을 가져다주며 보고 있으라기에 허리가 불편해 누워 봤더니 또다시 추가 10분이 더해졌다. 형량은 점점 늘어났다. 일곱 살 언니에게 중재를 요청했지만 “동생의 판결”이라며 선을 그었다. 아이들 세계에도 역할과 권한, 질서가 분명히 존재했다.
탈출을 시도해 다른 방으로 몸을 옮겼다가 네 살 손자에게 들켰다. “누나, 할아버지 나간다!” 순식간에 상황은 긴박해졌고, 나는 문 뒤에 몸을 숨겼다. 아이들은 출입문을 열고 나갔을 것이라 짐작하며 부산을 떨었다. 그 순수한 소동에 결국 웃음이 터졌고, 감옥 사건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작은방에 홀로 앉아 있는 동안 여러 생각이 스쳤다. 밖에서 들려오는 가족들의 웃음소리와 손주들의 재잘거림은 감옥 안의 고요함과 대조를 이루었다. 아이들의 판결은 단순명료했다. 약속을 어기면 벌을 받고,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타협도, 봐주기도 없었다. 어린아이들 눈에도 옳고 그름은 분명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숙연해졌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 말하면서도 과연 얼마나 정직하게 원칙을 지키고 있는가.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기준을 달리하지는 않는가. 아이들에게 규칙은 곧 정의였고, 정의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는 말씀을 떠올렸다. 계산 없는 순전함,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단호함.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의 본모습이 아닐까.
설날의 ‘감옥형’은 내게 부끄러움과 함께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웃음으로 시작된 명절의 소동은 믿음과 공동체를 돌아보게 한 은혜의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의 천진한 판결 앞에서, 나는 다시 신앙의 초심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