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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헌 목사 (북교동교회) |
환경이 무너지면 우리가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이 찬송입니다. 입은 불평으로 채워지고 마음은 원망으로 굳어집니다.
1873년 11월, 대서양 한가운데서 큰 여객선 한 척이 다른 배와 충돌해 가라앉았습니다. 그 배에는 미국 시카고의 한 변호사 호레이쇼 스패포드(H.G. Spafford, 1828-1888)의 아내와 네 딸이 타고 있었습니다. 스패포드는 당시 성공한 법률가로, 1873년 부인의 건강을 위해 가족들과 유럽 여행을 하려고 부인과 딸을 먼저 보냈는데, 해상 사고로 배는 침몰하고 부인만 표류 중에 구조되었습니다. 며칠 뒤 남편에게 전보 한 장이 도착했습니다. 살아남은 아내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단 두 마디가 적혀 있었습니다. “나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네 딸을 모두 잃은 것입니다.
스패포드는 아내를 만나러 같은 바닷길을 건넜습니다. 배가 바로 그 딸들이 잠든 바다 위를 지날 때, 그는 그 캄캄한 슬픔의 한복판에서 펜을 들어 한 편의 노래를 써 내려갔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내 평생에 가는 길」 413장(통 470)이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가장 깊은 슬픔의 한가운데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까. 형편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마음이 남달리 강해서도 아닙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노래는 이미 2천 년 전 어느 감옥의 한밤중에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행 16:16-26).
깊은 옥이 있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서도 가장 안쪽,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방입니다. 그 어둠 속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등은 채찍에 찢겨 피가 말라붙었고, 발은 차꼬에 단단히 채워져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시간은 한밤중입니다. 하루 중 가장 깊고, 가장 외롭고, 가장 절망에 가까운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깊은 옥, 그 한밤중에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같은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들이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신음이 아니라 찬송이었습니다. 그들이 한밤중에도 노래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가장 깊은 어둠을 통과하신 그리스도를 신뢰하기 때문이며, 그 노래를 통해 옥문을 여시는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호남기독신문 애독자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깊고 캄캄한 자리에 내몰렸을 때, 내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소리는 무엇이었습니까. 불평입니까, 원망입니까, 아니면 노래입니까. 한밤중에도 노래할 수 있었던 두 사람처럼 주님께 받은 큰 은혜 생각하며 주님의 능력으로 찬송하므로 단단히 닫혀있던 심령들의 옥문을 열고 한 사람의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한 주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