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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원장 (예송음악학원) |
학원을 개업하고 1년 뒤 한 여자분이 오셨습니다. 살랑거리는 물결 파마에 작은 얼굴, 동그란 안경을 끼고 계셨습니다. 다소 머뭇거리며 수줍은 얼굴을 하고 계시기에 저는 미소를 띠며 반갑게 일어섰습니다. 줄곧 취미반은 남성분이었기에 저도 모르게 크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여린 느낌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릴 적 피아노를 치다가 다시 배우고 싶다고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바이엘부터 시작해야겠지요?” 계이름을 기억하시냐고 물었습니다. 잠시 침묵 후 알긴 하지만 더듬거리며 양손이 잘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쑥스러운 듯 처음으로 웃으셨습니다.
성인 레슨은 주 2회 30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40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계이름과 박자를 익히고 건반을 깊이 눌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잘못 배우면 습관이 굳어 중급이 되면 소리가 뭉개지고 얕은 소리가 나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강조했습니다. “어깨 힘을 빼고 손끝으로 건반 바닥까지 꼭 눌러야 합니다.” 음악은 또렷한 발음과 같았습니다. 그녀는 제 말을 이해한 듯, 손가락 하나하나 깊은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였습니다.
보통 성인분들은 길어야 1년을 채우고 그만두셨습니다. 직장 생활로 피곤해 저녁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습니다. 수술 후 회복 중에도 손가락이 굳을까 두려워 빠짐없이 연습하셨습니다.
중급이 되자 클래식과 찬송가 반주를 함께 배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소나티네, 체르니, 하농, 소곡, 그리고 찬송가 반주까지. 욕심이라기보다 성실함이었습니다. 거북이가 쉬지 않고 달리듯 끊임없이 발전해 가셨습니다.
찬송가 레슨 날, 플랫이 여러 개 나오자 피아노에 얼굴을 바짝 대고 안경을 만지며 원음과 플랫 사이를 오가셨습니다.
“참 어렵지요? 4성부를 동시에 눌러야 하고 왼손 옥타브가 넘어가면 오른손이 눌러줘야 하니까요.”
“네 선생님. 찬송가 참 어려워요.” 옅은 웃음을 띠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개척교회에 다니며 반주자가 없어 반주기를 틀어놓고 예배드린다고 하셨습니다. 내성적이고 수줍은 성격이셨기에 교회에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녀에게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 꾸준함, 성실한 연습이야말로 가장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하나님은 높은 자를 쓰는 분이 아니라 낮고 겸손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그녀의 겸손함과 성실함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교회 반주로 열매 맺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손끝에서 울려 나온 찬송가는 달랐습니다. 힘차고 웅장한 전주, 정확한 박자와 속도, 곡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낸 연주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습니다. “아…” 숨이 길게 흘러나왔습니다. 그녀는 선생님 덕분이라며 감사하다고 하셨지만, 저는 알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나를 사용해 하나님을 표현한 것이라는 사실을요.
학원 불을 끄며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씨앗은 작고 여리지만 열매를 맺고 또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갑니다. 그날 저는 작은 씨앗이었습니다. 비록 제 학원은 동네의 작은 피아노학원이고 조금은 낡은 상가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반주자를 길러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감동이자 감사였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술가로서, 예배를 이끄는 반주자로서 그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게 가장 큰 은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