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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원장
(예송음악학원) |
한 달에 한 번, 고전 독서 모임에 나간다. 서른 중반의 나를 제외하면 모두 일흔이 훌쩍 넘기신 어르신들이다. 처음 모임에 참석하던 날, 나는 마른 기침이 계속 나왔다. 연배의 차이도 컸고, 혼자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도 부담이었다. 무겁고 진중한 공기 속에서 조심스레 인사를 드리고 앉았다. 그 자리에 나간 이유는 분명했다. 강력한 고전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유치원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오랫동안 문제 풀이와 암기에 익숙한 교육을 받아왔다. 그러나 고전은 인류의 사상과 지혜가 담겨있고 사람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고, 존재의 본질을 묻게 한다. 실제로 역사 속 위대한 사상가와 과학자들, 예술가들 가운데 고전을 가까이한 이들이 많았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고전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눈을 길러주는 것이다.
이번 모임의 주제는 《장자》 내편 양생주였다. ‘죽음’을 다루는 장을 삶의 마지막 길을 걷고 있는 분들과 함께 읽는다는 사실이 묘한 울림을 주었다. 가운데 앉으신 어르신이 원문 한자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셨고, 우리는 그 뜻을 풀어가며 각자의 생각을 나누었다. 한 어르신께서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죽음을 설명했다. “우리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죽음은 해체일 뿐, 완전한 소멸은 아닙니다.”
탄생과 해체 재결합. 입자와 파동을 설명하며 이중슬릿 실험, 관찰자 효과까지 이해하기 쉽게 말씀해주셨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분들은 정말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구나. 몇 년 동안 논어, 대학, 맹자 연구를 하셨다 들었는데 양자역학까지….’
나는 많은 젊은 사람들이 고전을 고리타분하고 비실용적이라 여기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분들은 존재의 본질을 철학을 넘어 물리학까지 탐구하고 계셨다. 그것도 물리학을 전공한 학생들조차 난해하게 여기는 양자역학을. 이렇게 지적인 토론은 참 오랜만이었다.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통찰은 고전이 결코 낡은 지혜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사회에는 ‘존엄한 죽음’이라는 문화가 널리 퍼지고 있다. 각자의 고통과 사연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생명이 과연 인간의 선택에 달린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께 속한 것일까?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으며, 그 시작과 끝 또한 그분의 주권 아래 있음을.
우리는 평소 죽음을 말하기를 꺼린다. 죽음은 어둡고 무겁고, 되도록 생각하지 않고 싶은 주제다. 그러나 죽음이 있기에 삶은 더욱 귀하다고 느껴진다. 끝이 있음을 아는 사람만이 오늘을 진지하게 살아낼 수 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겸손해진다. 우리의 힘과 소유, 계획은 죽음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더 선하게, 더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하루를 감사함으로 받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며, 용서할 수 있을 때 용서해야 한다.
2000년이 지난 고전을 읽으며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결코 우울한 사색이 아니다. 오히려 생명을 더욱 빛나게 하는 묵상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어진 삶을 경건히, 그리고 담대히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