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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헌 목사
(북교동교회) |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는 죄와 사망이다. 2천 년 전에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님이 이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예수님은 인생의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는가?
성경은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고 하셨다. 피를 흘리지 않으면 죄 사함을 얻지 못한다. 레위기 17장 11절에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했다.
피는 생명이다. 죄를 사하는 데는 반드시 피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죄는 생명을 앗아가고 사망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죄 때문에 영원한 사망이 왕 노릇 했다. 사망을 쫓고 생명이 오기 위해서는 생명과 같은 대가인 피가 그것도 죄가 없는 피가 희생되어야 한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고귀한 희생의 피를 흘려주셨다.
피를 흘려야 죄 사함을 얻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공식이다. 피는 생명이다. 죄는 생명에서 사람들을 끊어지게 했다. 영적으로 죽게 했고, 육체의 죽음을 가져왔고, 영원한 죽음을 가져왔다. 대등한 가치를 지불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다. 짐승으로는 불완전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인류의 죄를 씻기로 하나님은 작정하신 것이다.
죄인의 피는 아무 소용이 없다. 죄 없는 의인만이 죄인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말할 때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면 안 된다. 사람으로서의 예수님을 부정하면 이단 중의 이단이다.
예수님이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십자가를 놓고 쇼를 통해 인간을 우롱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진실한 죽음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게 하신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만반의 준비를 다 하셨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마귀가 죄의 항목을 하나님 앞에 열거하며 낭독해도 “내가 그 모든 죄를 다 용서했다”고 하실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나의 모든 죄를 씻고도 남음이 있는 보혈의 피이다. 어떤 죄도 용서하실 수 있다. 아무리 많은 죄도 용서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근거 없이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라면 하나님 스스로 모순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 있게 나의 죄를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과 그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연후에도 경건의 진통은 있을 수 있다. 내 안에, 내 옆에, 내 위에, 내 아래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더 큰 은혜와 감격 속에 안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과정이다. 이래야 십자가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날마다 새롭게 체험해야 한다. 죄에 대한 자책을 느낄 때마다 ‘너 십자가를 다시 쳐다보아라!’ 말씀하신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불안, 초조, 불평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 앞에 나아가라. 지금도 예수님은 당신을 부르고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으로 사망을 감당하셨다. 십자가는 지옥의 축소판이었다. 지옥의 영원한 삶을 6시간 속에 축소 시킨 것이다. 인간이 저지른 죄의 저주를 예수님이 감당하신 것이다.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끔찍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잔인하셔서 잔인한 죽음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다. 그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죽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인간의 죄가 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