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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 다음 시대] 내 자녀의 영적훈련 ⑥ 호흡의 영성

2026-09-21 15:44 | 입력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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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인 목사
박정인 목사
(압해수련침례교회)

요즘 명상이나 요가, 선(禪), 도(道)를 비롯한 여러 종교 활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 가운데 하나가 ‘호흡’이다. 그런데 호흡이 언제부터 그들의 것이었나. 호흡은 원래 하나님의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우리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가락을 요상하게 비틀어 단전(어딘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위에 얹고 호흡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처음부터 그렇게 만드셨다는 이야기다.
호흡에는 단순한 두 가지 움직임이 있다. 들이마시는 들숨과 내뱉는 날숨이다. 산소를 품은 공기를 받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며 다시 새로운 공기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이 두 가지를 쉴 새 없이 반복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창조의 모습이다. 우리는 철저하게 호흡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로 지음받았다.
그런데 이 호흡을 통해 아주 깊은 신앙적 통찰을 얻고, 하루 종일 창조주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다면 어떨까?
요즘 정말 깊이 호흡해 본 적이 있는가?
가슴만 들썩이지 말고 배가 불룩해질 때까지 천천히, 깊게 코로 숨을 마셔 본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길게 입으로 후—하고 내뱉어 본다.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잠시 ‘나는 지금 호흡하고 있다’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막상 해 보면 의외로 낯설다. 우리는 매일 숨을 쉬면서도 제대로 숨 쉬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다.
나는 평소 현대인들의 호흡을 ‘개호흡’이라고 부른다. 안 죽을 만큼만 깔짝 마시고, 또 안 죽을 만큼만 깔짝 내뱉는다. 들숨도 깔딱, 날숨도 깔딱. 왜 그러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나를 포함해서 참 열심히도 그 얕은 호흡을 고집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의 호흡을 돌아보게 하셨다.
가만히 내 들숨을 들여다보니 그 속에서 내 심령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나님 없어도 난 혼자서 할 수 있어.” 깔딱, 들숨!
그리고 날숨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거 내 거야. 난 안 내놓을 거야.” 깔딱, 날숨!
그 순간 참 부끄러웠다. 호흡 하나에도 내 욕심과 교만이 잔뜩 묻어 있는 것 같았다.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제대로 내놓지도 못한다. 하나님께 받아야 산다는 것도 인정하기 싫고,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기도 싫다. 그렇게 평생 깔딱거리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늘 호흡법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다. 복식호흡이 어떻고 단전호흡이 어떻고 하는 것은 솔직히 잘 모른다. 내가 집중하는 것은 그저 하나님께서 주신 ‘질 좋은 깊은 호흡’이다. 그리고 그 호흡을 바라보며 두 가지를 묵상한다.
첫째, 하나님은 왜 우리를 숨 쉬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을까?
생각해 보면 인간은 참 ‘자원 없는 존재’다. 내 몸 안에 생명의 원천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공기가 끊어지면 내가 가진 돈도, 지식도, 능력도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밖으로부터 공급받아야 산다.
나는 이것이 참 좋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내 몸이 말한다.
“너는 혼자 살 수 없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받아야만 살 수 있도록 지으셨다. 우리는 독립된 생명의 소유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생명을 공급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호흡은 그것을 매 순간 몸으로 기억하게 한다.
둘째, 그래서 나는 호흡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묵상과 기도로 연결한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고백한다.
“주님, 주님 없이는 저는 살 수 없습니다.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공기를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다시 내쉴 때에는 내가 잠시 가지고 있던 것조차 내 것이라고 움켜쥐지 않고 툭 놓아 버린다.
“하나님, 나는 주인이 아닙니다. 내 인생은 빈손입니다. 내려놓습니다. 다시 주님으로 나를 채워 주십시오.”
참 신기하다. 호흡은 받아들이는 것과 내어놓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받아들이기만 할 수도 없고, 내어놓지 않고 계속 움켜쥘 수도 없다. 내어놓아야 다시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선한 것을 받아들인다.
이것을 하기 위해 조용한 산속에 들어갈 필요도 없고, 가부좌를 틀 필요도 없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도, 출근하며 오늘 하루 스케줄의 압박에 짓눌릴 때도,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도 가능하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도 한 번 깊이 숨을 마시며 생각하는 것이다.
“아, 그렇지.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지. 하나님 없이는 나 못 살지.”
그 순간 무심코 하던 호흡이 기도가 된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다. 성경에 ‘기도는 호흡이다’라는 문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말씀을 이렇게 살아내 보고 싶다. 숨 쉬는 것처럼 하나님을 의식하고, 숨 쉬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께 연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 자녀에게 전수해 보자.
“아들아, 딸아. 우린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단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어. 그러니까 숨을 들이마시면서 감사하는 거야. 하나님이 또 주셨구나. 그리고 내쉬면서 내려놓는 거야. 이거 내 거라고 움켜쥐지 않는 거야. 그래야 또 하나님이 주시는 신선한 것으로 나를 채울 수 있단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받아 누리는 법을 배우고,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또 포기하고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 배움을 우리는 24시간 할 수 있다. 24시간 숨을 쉬기 때문이다.
나도 내 호흡에 묻어 있던 교만과 어리석음을 발견한 뒤로 열심히 호흡으로 하나님 앞에 나를 세우려고 한다. 열심히라고 해 봐야 하루에 몇 번, 몇 분이 고작이다. 그래도 호흡은 깊어졌고 몸도 여러 유익을 얻었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비염도 많이 좋아졌다. 놀랍게도 살도 좀 빠졌다. 어디가? 하고 묻지는 마시길. 그렇다고….
그러나 몸의 변화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
호흡을 정돈하고 깊이 받아들이는 순간 내 심령도 함께 하나님 앞에 정돈된다. 숨을 깊이 마시는 그 짧은 순간에 기도한다. 그리고 내쉬며 또 내려놓는다. 그렇게 기도가 나의 호흡이 되고, 호흡이 다시 나를 기도의 자리로 데려간다.
그래서 요즘 나는 내 자녀와 성도들에게 신비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를 열심히 전한다. 특별한 무엇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내 몸 안에 심어 놓으신 창조의 원리를 발견하고, 틀어진 것을 다시 바로잡으며, 내 삶의 순간순간을 하나님께 연결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기도의 가장 작은 단위일지도 모른다.
들숨에 하나님의 공급을 받아들이고, 날숨에 나를 내려놓으며 그렇게 하나님으로 산다.
우리 자녀들이 다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실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훈련시켜 보자.
우리 아이들, 이제 제대로 숨 좀 쉬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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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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