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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제1부 어머니는 바보야 40회

2026-06-10 11:25 | 입력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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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
윤기
전) 목포공생원 원장
공생복지재단 회장
- 1942년 목포 출생
- 중앙신학교(現 강남대학교) 사회사업학과를 졸
- 아동복지시설「목포공생원」의 원장
- 정신지체장애인시설「공생재활원」을 설립
-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회장(1987年~2001年)을 역임
- 1989년 일본 최초의 재일동포를 위한 노인복지시설「고향의 집」을 건립
- 1978년 제22회 소파상등 수상다수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이사장
- 저서는《김치와 우메보시》, 역서는《괴짜총리 고이즈미, 흔들리는 일본》 《고령사회 이렇게 살아보세》

공저자 윤문지
공저자 윤문지(타우치 후미애)
공생복지재단 이사장

-1949년 일본 오사카 출생
- 쿄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
- 1972년, 한국 목포로 건너와 목포공생원 생활지도원 역임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 이사, 사회복지법인 윤학
자공생재단 이사, 사회복지법인 공생복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제3회 여성휴먼다큐멘터리 대상에《양이 한 마리》로 입선
- 1982년《나도 고아였다》로 일본 크리스천신문 제5회 아카시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


일본으로 가다

광복절에 훈장을 받은 후 어머니는 일종의 흥분을 가눌 수 없었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 바야흐로 해빙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날이 오길 얼마나 고대했던가! 어머니 치즈코는 양국 간의 메신저로서 조국 일본을 방문할 결심을 굳혔다.
일본을 방문하기로 한 며칠 뒤, 어머니는 갑자기 가슴 근처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통증과 함께 호흡이 곤란할 지경의 이상도 수반됐다. 식욕이 떨어지고 손끝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처녀 시절 폐렴을 앓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핵이 재발한 건지도 몰랐다. 하필이면 이 중요한 시기에…. 어머니는 초조하고 불안했다. 자신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병세는 날로 악화하여 갔다. 얼굴도 눈에 떨 정도로 수척해졌다.
“어머니,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시죠.”
곁에서 보다 못한 범치 형이 진찰받을 것을 종용했다.
동산 외과를 찾은 어머니를 조 박사는 조심스레 진찰했다.
“옛날에 가슴을 앓은 적이 있습니까?”
어머니는 처녀 시절에 폐결핵으로 2년간 요양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
“그렇군요. 그 후로 공생원에서 원아들 뒷바라지하시느라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볼 여유가 없으셨겠군요. 그 일이 어디 보통 일입니까? 몸에 이상이 온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가슴에 염증이 나타나는데 옛날에 치료받으신 자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두고 경과를 살펴보도록 하죠. 약을 지어드릴 테니 복용해 보십시오. 지나치게 신경 쓰실 건 없습니다.”
조 박사의 진찰 결과를 받고 다소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폐결핵이 재발한 게 아닐까 하는 불길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공생원으로 돌아온 어머니에게는 여느 때와 변함없이 과다한 업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병세는 여전했다. 나을 기미라곤 보이지 않고 도리어 심한 두통이 시작되었다.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그럴 순 없었다. 정 총무가 일본 출국을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한시바삐 일본엔 가야겠는데 가슴의 통증과 두통은 가실 줄 몰랐다. 초조해졌다.
‘빨리 나아야 할 텐데…. 일본에 가면 더욱 바빠진다. 벅찬 업무가 잔뜩 기다리고 있는데 일본에까지 가서 병이 악화하는 날엔 정말 큰 일이다. 한국민의 우정과 진정을 전하는 임무와 아울러 공생원의 자립 기반을 조성하는 일, 이 중대한 임무만은 어떻게 해서든 완수하고 싶다.’
어머니는 조바심 나는 마음으로 건강이 회복되기만을 기도하며 쉴 새 없이 일을 진행했다.
“장모님! 비자가 나왔습니다. 이제 비행기만 예약하면 돼요.”
정 총무는 방일(訪日)에의 기대와 기쁨에 사로잡혀 흥분하고 있었다. 정 총무 그는 6·25 동란이 발발한 1950년, 열아홉의 나이로 고향 진남포에서 월남하여 친구들과 목포까지 피난해 온 청년이었다. 키가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반듯한 그는 나이에 비해 숙성해 보였다. 그에게는 일종의 정의감 같은 게 있어 매사에 그 기질이 나타났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편이었던 그는 어머니를 도와 일했으며. 어머니는 그에게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었다.
오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원의 운영난에 허덕이며 남몰래 고민하던 무렵 어머니는 가까이에서 의지하고 의논할 만한 상대가 없었다. 장남인 나는 나이가 너무 어렸다. 어머니에게는 마음을 털어놓고 의논할 사람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정의감이 강한 청년, 정 총무를 가족으로 맞이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장녀 청미를 그와 결혼시켰다. 누나 청미는 불과 열여덟 살의 나이로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고 밀고 나갈 수 있는 나이에 달해 있지 않았다. 그는 총무직을 맡아 원내 업무에 관여했다.
어머니는 조용하고 꼼꼼한 성격인 데 반해 정 총무는 활발하고 사교적이며 때로는 자기 본위로 사물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같은 성격의 사위, 정 총무를 곁에 두고 일을 하는 데 성격 차이는 있었지만 믿음직스러웠다.
정 총무는 장모 치즈코와의 일본 방문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의 지나친 기대가 불안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일본에 가는 일에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게 고아 사업이란 게 쉬운 일이 아닐세. 일조일석에 큰 변화나 진전을 바랄 수는 없네. 또 그것을 기대해서는 안 돼.”
어머니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 정 총무를 타일렀다.
모국 방문. 어머니로서는 문화 훈장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기쁨보다는 정신적인 부담감이 훨씬 무거웠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에 거류하는 일본 여성에게 문화 훈장을 주었고 매스컴은 이 사실을 대거 보도했으며 목포 시민과 이웃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 그들의 기대가 피부에 닿는 듯했다.
‘이번 일본 방문으로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한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했다.
“장모님! 이번엔 대대적으로 모금을 벌여 한국 제일의 고아원을 만듭시다. 일본 국민도 크게 협력해 줄 겁니다.”


(다음 41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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