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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수 교수 남장로교 및 아르메니아 조지아 연구소 대 |
스트레퍼 선교사, 한국명으로는 서부인으로 불리던 분은 미 남장로교 파송 전라도 선교사로 부임하였다. 스트레퍼 선교사는 원래 군산으로 임지가 정해져 있었으나, 목포 선교부가 개설됨으로 삼각편대의 일환인 교육, 여성, 어린이 분야를 담당하게 되었다. 스트레퍼 선교사는 미국에서 면려회 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활동하던 분이었다. 전라도 선교에 대한 사명을 받아서 파송교회의 약정된 재정지원으로 전라도에 오게 되었던 것이다.
목포 선교 스테이션이 개설됨으로 목회 분야, 의료 분야, 교육 분야의 적임자가 필요하였다. 유지벨 선교사 가족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목포는 곧이어 합류한 의사요 목사인 오웬(오목사, 오기원) 박사의 합류로 활기를 띄게 되었다. 이어서 스트레퍼 즉 서부인 선교사가 부임함으로 명실공히 삼각편대의 진용이 든든히 확립되었다.
스트레퍼 선교사는 목포 여학교를 중심으로 교육 사역에 집중하였다. 아울러 광주 선교 스테이션이 세워짐과 동시에 광주 여학교를 위한 사역도 자신의 약정된 선교기간만큼 봉사하며 섬겼다.
스트레퍼 선교사가 파송교회와 약정된 기간이 만료됨과 동시에 미국으로 귀임하여 ‘아르메니아 대학살 피해자들’의 가족을 돕는 일에 매진하였다. 특히 1,500,000만명 이상이 학살당한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최대 피해자인 그 가족들, 특히 어린 자녀들을 돌보는데 헌신하였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피해자는 최소 6,000,000만명 이상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스트레퍼 선교사의 사역을 통하여, 미 남장로교 전라도선교, 목포 선교, 광주 선교 등이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그 역사적 의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