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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숨결] 7장 “교회안의 작은교회”에 나타난 선교사상과 적용

2026-09-21 09:28 | 입력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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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작은 교회’에 나타난 영성 훈련의 선교적 의미

이재완 목사영암벧엘교회 한국신학목포분교 교수
이재완 목사
(영암벧엘교회, 한국신학목포분교 교수)

웨슬리는 기도의 필요성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하나님과의 교통과 신앙의 성장, 그리고 은사와 보다 깊은 영성을 얻기 위하여 반드시 기도생활을 권면하였다.
그 자신이 새벽 4시면 일어나서 새벽 기도하는 생활을 습관화하였다. 그가 15년 이상을 살았던 집에 있는 웨슬리 예배당에 그가 매일 기도하던 방이 있다. 이 방을 ‘능력의 방’이라고 부른다.
그의 기도의 능력으로 세계적인 감리교회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가 이렇게 4시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수산나의 철저한 교육 때문이다. 어머니는 매일 밤 8시면 자고 오전 4시면 일어나는 훈련을 시켰다. 특히 수산나는 잠을 잘 때와 잠에서 깨어날 때에 주기도문을 외우게 하였고 좀 더 성장한 후에는 짧은 기도문을 외우게 하였고, 어머니는 자녀를 위하여 매일 안수기도 하였고 자녀들에게는 어머니를 위하여 기도하게 하였다.
그리고 옥스퍼드대학교의 신성클럽 시절에는 매시간 캠퍼스 종을 칠때마다 기도하고 시편을 묵상하였다. 또한 클레이톤의 제안에 따라 금식을 일주일에 두 번씩 수요일과 금요일에 실천하였다. 그리고 감리교도들에게도 금식의 날을 지키도록 요구하였고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금식하지 못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또한 철야기도를 중요한 은총의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1742년 3월 12일 금요일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웨슬리는 밤 8시에서 이튿날 오전 8시까지 설교하였는데, 성령이 임하여서 자정이 넘기까지 약 100여 명이 기도와 찬양을 계속하였다.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기도와 찬양을 계속하였다. 그래서 이것이 계기가 되어 매월 1회 정기적으로 런던과 브리스톨과 뉴케슬에서 철야기도회를 하게 되었다.
새해 이브에 철야 기도회도 갖게 되었고 이것이 새해 첫 주일에 계약갱신예배로 정착되어 실천하게 되었다.
웨슬리의 기도신학의 중심은 욕망의 성취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성화를 이룩하려는데 있었다. 즉 웨슬리의 기도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성화를 이룩하려는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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