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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제1부 어머니는 바보야 44회

2026-08-05 16:38 | 입력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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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
윤기
전) 목포공생원 원장
공생복지재단 회장
- 1942년 목포 출생
- 중앙신학교(現 강남대학교) 사회사업학과를 졸
- 아동복지시설「목포공생원」의 원장
- 정신지체장애인시설「공생재활원」을 설립
-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회장(1987年~2001年)을 역임
- 1989년 일본 최초의 재일동포를 위한 노인복지시설「고향의 집」을 건립
- 1978년 제22회 소파상등 수상다수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이사장
- 저서는《김치와 우메보시》, 역서는《괴짜총리 고이즈미, 흔들리는 일본》 《고령사회 이렇게 살아보세》


윤문지
공저자 윤문지(타우치 후미애)
공생복지재단 이사장

-1949년 일본 오사카 출생
- 쿄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
- 1972년, 한국 목포로 건너와 목포공생원 생활지도원 역임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 이사, 사회복지법인 윤학
자공생재단 이사, 사회복지법인 공생복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제3회 여성휴먼다큐멘터리 대상에《양이 한 마리》로 입선
- 1982년《나도 고아였다》로 일본 크리스천신문 제5회 아카시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


김포 공항에 전송나온 강 교수, 누이 내외, 친구 승범 등의 전송을 받으며 어머니와 나는 여행자 전용문으로 향했다. 세관을 통과하고 법무부의 출입국 심사대 앞에 섰다.
“한국에는 언제 오셨습니까?”
일본 여권을 소지한 나에게 질문이 날아왔다. 직원은 일본어로 묻고 있었다. 나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리둥절했다.
“뭐라고 하셨죠?”
한국말로 답하는 나에게 출국 심사관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다우치 씨는 한국인인 저보다 더 한국어가 능숙하시군요.”
“뭐, 뭘요.”
“아닙니다. 저는 김포 공항에서 오래 근무했지만 다우치 씨만큼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일본인은 처음입니다.”
일본인 다우치 모토이가 출국 시점에서 칭찬을 받았다. 나는 복잡한 심경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비행기는 불과 두 시간도 못 되어 하네다(羽田)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일본의 관문이었다. 어머니와 떨어질세라 곁에 바싹 붙어 걸었다. 마치 미아가 될까 겁내고 있는 초등학생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왼손은 어머니의 가방을 꽉 쥐고 있었다.
어머니 꽁무니를 졸졸 따라가던 나는 입국 심사에 걸리고 말았다.
“도쿄에서는 어디서 묵으실 겁니까?”
뜻은 대충 알아들었지만, 답변이 잘되지 않았다. 이곳은 하네다니 한국어로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입국 심사관의 얼굴을 멀뚱히 보고 있었다. 재차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여전히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나를 벙어리로 단정한 모양이었다.
“어디서 묵을 거죠?”
급기야는 종이에 글자를 써서 보여 준다.
출국 전, YMCA 호텔은 세계 어느 국가에 가도 있다고 한 강 교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재빨리 ‘도쿄 YMCA’라고 썼다.
가까스로 통과되었다. 앞서 통과한 어머니는 내 일이 걱정됐던지 도와주러 오셨다. 나는 무의식중에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어머니 저 사람이 뭐라고 하는 거죠?”
입국 심사관은 농아로 믿고 있던 내가 입을 열자 아연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일본인이면서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 데 격분했던지 어머니를 나무랐다.
“외국에서 사는 것은 자유입니다만 자기 나라말을 모르는 건 곤란하지 않습니까?”
아마도 그런 뜻인 듯했다.
어머니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일본어를 가르치지 않은 건 어머니였다. 나를 한국인으로 키워오신 것이다. 어머니는 항상 내가 한국인으로 성장하길 염원하셨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은 일본어라고는 한마디도 못 하는 아들이 안타까워 견딜 수 없었다.
한때 공생원의 보모로 근무하다 일본에 귀국한 H 씨의 집으로 향했다. H 씨는 자녀 셋과 함께 방 두 개와 작은 부엌, 화장실이 딸린 도영 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그다지 넓진 않지만 아카바네(赤羽) 자리하고 있어 그런대로 편리했다. 나는 안심했다. 수중에 돈이 넉넉지 못한 우리로서는 돈에 맞춰 묵을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큰 다행이었다. H 씨의 가족이 모두 한국어를 일본어보다 훨씬 능숙하게 할 줄 아는 것도 다행스러웠다.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도쿄에서의 첫날 밤을 H 씨의 집에서 보낸 어머니와 나는 이튿날 새벽 5시에 일어나 NHK에서 보내준 자동차를 타고 NHK 스튜디오로 향했다. 차창 밖은 아직 어둠에 잠든 듯한 풍경이었으나 NHK 홀 안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열기로 이미 한창이었다.
어머니 치즈코가 출연할 프로는 ‘스튜디오 102’라고 했다.
나는 ‘스튜디오 102라, 별난 프로도 다 있네’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께서 아나운서, 프로듀서와 대담하고 토론하는 장면을 보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방송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침착했다. 흰 치마저고리가 아들인 내 눈에도 눈부시게 보였다. 남편 나라의 의복을 입고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어머니는 누가 봐도 한국의 어머니임이 틀림없었다. 사진을 곁들여 십여 분간 공생원이 소개되었다.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어떤 내용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다음 4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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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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