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황혼기, 은퇴 후 찾아오는 적적함과 육체의 질병, 그리고 소외감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거는 어르신들이 많다. 그러나 목포 이랜드노인복지관의 한 강의실에서는 매주 두 번씩 거짓말 같은 기적이 일어난다. 청아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가진 흙피리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소년·소녀 같은 미소가 피어난다. 누군가는 잊고 지냈던 삶의 의욕을 되찾고, 또 누군가는 음악을 통해 새로운 친구와 공동체를 만나며 하루하루를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본지는 지난 5월 22일(금) 목포 지역 사회와 교계에 잔잔하지만 깊은 영적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이랜드노인복지관 오카리나 반(초급·중급·고급반 및 ‘소리여행’ 동아리)을 찾았다. 이날도 봉사활동(노인요양전문 백합원)을 통해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음악을 통해 삶의 기쁨과 공동체의 온기를 다시 회복해가는 현장이었다. 불교 신자였음에도 아침마다 찬송가를 불게 되었다는 고백부터, 목회의 권위를 다 내려놓고 ‘오카리나 교회의 사찰 집사’를 자처한 금년말 은퇴를 앞둔 목사님의 섬김,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며 작은 무대 하나에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어르신들의 순수한 모습을, 작은 흙피리 하나가 만들어낸 놀라운 변화와 잔잔한 감동의 이야기를 대원들로부터 들어봤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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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먼저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카리나라는 악기가 생소한 독자들도 있을 텐데요, 어떤 악기인지와 더불어 오카리나 팀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기혜현 지도강사(목포진광교회 지휘자) : 반갑습니다. 오카리나는 19세기 이탈리아의 ‘주세페 도나티’라는 빵을 만들던 청년이 밀가루 반죽을 만지며 놀다가 착안해 만든 ‘흙으로 만든 피리’입니다. 진흙으로 모양을 빚어 구멍을 뚫고 구워내어 연주하던 중, 악기를 뒤집어 놓은 모양이 꼭 뒤뜰의 아기 거위 얼굴을 닮았다고 하여 이탈리아어로 작은 거위라는 뜻의 ‘오카리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88년 올림픽 무렵 매스컴을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졌는데, 유일하게 숨과 흙으로만 자연의 소리를 내는 신비로운 악기입니다. 우리 이랜드노인복지관에는 초급, 중급, 고급반이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대원들의 열정으로 ‘소리여행’ 반보고 라는 멋진 동아리 팀까지 결성되어 약 80여 명의 어르신이 함께 동행하고 있습니다.
박일진 회장 : 저는 우리 ‘물소리 오카리나’ 팀의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 역시 오카리나를 잡은 지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우리 기혜현 선생님이 매주 두 번씩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찾아오셔서 정성으로 가르쳐 주신 덕분입니다. 노년에 이 작은 악기 하나를 붙잡고 대원들과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세월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자 보람입니다.
Q2. 평생 악기 한번 제대로 만져보지 못했던 어르신들이 대다수라고 들었습니다. 오카리나를 배우면서 개인의 삶이나 가정에 어떤 실제적인 변화와 치유가 일어났는지 궁금합니다.
김행자 대원 (83세, 최고령) :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 내가 나이도 가장 많고, 고급반에서도 제일 오래된 멤버일 겁니다. 10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오카리나를 불어왔어요. 혼자 집에 적적하게 있으면 나이 탓인지 마음의 병도 오고 우울해지기 십상인데, 오카리나를 불기 시작하면 신기하게 온갖 시름이 다 사라집니다.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 같은 데로 공연 봉사를 다녀오면, 오히려 내 자신이 위로를 받고 힐링이 되는 걸 느껴요. 오카리나를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축복입니다.
김정숙 대원 : 저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퇴직한 은퇴 교사입니다. 교직에 43년이나 있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다른 건 다 잘하는데 음악성은 전혀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소위 '박치', '음치'여서 처음에는 주변에서 구박도 참 많이 받았지요(웃음). 그런 내가 포기하지 않고 버틴 세월이 벌써 13~14년입니다. 이제는 음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어요. 요즘은 대전에 사는 자식들에게 전화해서 내가 연주하는 오카리나 소리를 들려주곤 합니다. 자식들이 ‘엄마, 노인들이 어떻게 이렇게 맑고 고운 소리를 내?’라며 신기해해요. ‘엄마 오늘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행복하게 깨어 있다’는 걸 음악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부모로서 참 뿌듯합니다. 손가락을 맨날 움직이니 허리 아픈 줄도 모르고, 치매 걱정은 남의 집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여순님 중급반 반장 : 저는 평생 살면서 어디 가서 장(長) 자 한 번 못 달아본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이랜드복지관 중급반에 와서 내 인생 처음으로 ‘반장’이라는 직함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요즘 제 직업이 무엇이냐고 누가 물으면 저는 당당하게 ‘봉사자’라고 답합니다. 일주일에 몇 번씩 소외된 요양시설을 찾아가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동요와 시를 들려드리면 박수를 치며 눈물을 흘리시는데, 그 교감의 순간을 맛보면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봉사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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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여행’&‘반보고(반갑고,보고싶고,고맙고)’의
눈물과 웃음속에 우울증이 사라지고,
기혜현 지도강사와 김명남 목사의 영적
섬김속에 희망이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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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대원분들 중에는 기독교 신자가 아닌 분들도 꽤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연스럽게 찬송가를 연주하고 영적인 유대감을 쌓게 되셨는지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여순님 중급반 반장 : 사실 고백할 게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와 동생들은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실 때 제게 성경책 한 권을 선물로 남겨주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단칼에 거절하며 안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에 서울에 사셨던 어머니가 목포에서 서울까지 먼 거리를 갔는데 오직 교회 가시겠다는 이유로 자식들만 덜렁 남겨두고 가버리셨거든요.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식사까지 다 하고 저녁 늦게나 오시던 그 기억이 자식 입장에서는 너무나 서운하고 싫어서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뼛속까지 박혀 있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학창 시절에 절에 다니며 불교 학생회 부회장까지 지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오카리나 반에 들어와 보니 신기하게도 제 주변에 온통 좋은 교회 다니는 선배님들만 가득했습니다. 그분들이 베풀어주는 사랑과 배려에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던 차에, 기혜현 선생님이 악보도 보지 말고 무조건 머릿속으로 외우라며 강제로 주신 곡이 있었습니다. 바로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나 같은 죄인 살리신)’와 ‘순례자의 길’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게 찬송가인지도 모르고 그저 숙제니까 밤낮으로 불었지요. 그런데 이게 참 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지금은 3년째 아침에 눈만 뜨면 저도 모르게 오카리나를 입에 물고 찬송가 멜로디를 온 집안에 퍼뜨리고 있습니다. 불교 신자였던 내가 찬송가를 연주하며 하루를 시작하다니, 사람이 이렇게 무섭고도 아름답게 바뀔 수 있구나 싶어 소름이 돋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엄마가 오카리나를 통해 나를 움직이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Q4. 기혜현 강사님, 대원들의 이러한 영적 변화의 배후에는 강사님만의 특별한 기도와 교육 철학이 숨어있을 것 같습니다. 강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기혜현 지도강사 : 사실 저는 목포 진광교회에서 성가대 지휘자로, 또 예전도회 총무로 교회를 섬기는 이 땅의 작은 예배자입니다. 2007년 이랜드복지관이 개관하기 전부터 이미 외부에서 오카리나 지도를 하고 있었는데, 2011년 이 복지관에 처음 강사로 발을 디디며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줄 믿습니다. 제게 맡겨주신 어르신들을 음악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으로 품게 하소서.’
저는 복지관 수업 시간에 절대로 대놓고 ‘교회 나오라’는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종교적 강요는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닫게 하니까요. 대신 저는 영적인 전략을 세웠습니다. 악보를 전혀 보지 못하는 어르신이라도 평생 영혼에 새겨 암보로 연주할 수 있는 곡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순례자의 길’을 선정해 지난 10여 년 동안 매 수업 시간마다 반복하여 가르쳤습니다. 이제 우리 대원들은 눈을 감고도 이 곡들을 연주합니다. 제가 대원들에게 늘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육신이 약해져 병상에 눕고, 마지막 임종을 앞두고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때 관 속에 가져갈 수 있는 노래 딱 하나만 가슴에 남겨놓으십시오. 도-파-라-파-라… 마음속으로 이 음을 짚으며 눈을 감고 그대로 하늘나라로 이사를 가시면 됩니다.’ 그 찬양 가사 속에 담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라는 신앙의 고백을 어르신들의 영혼에 깊이 새겨드리는 것, 이것이 제가 악기를 통해 실천하는 보이지 않는 선교 방식입니다.
Q5. 김명남 목사님께서는 호남교회에서 오랜 시간 목회를 해오시다가 은퇴를 앞두고 이 팀에 합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목사라는 직분의 권위를 내려놓고 가장 낮은 곳에서 대원들을 섬기게 된 계기와 심정이 어떠신지요?
김명남 목사(호남교회) : 평생 목사들만 만나며 대접받는 목회, 어찌 보면 나도 모르게 권위적인 모습이 몸에 배어 있던 삶이었습니다. 그러다 은퇴를 불과 몇 개월 앞두고 복지관에서 이 오카리나 팀을 만났습니다. 저는 이분들을 내 인생의 마지막 삶의 자락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누님들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최고령이신 행자 누님, 정순 누님을 친누님처럼 극진히 마음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저는 복지관의 이 오카리나 반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또 하나의 작은 ‘교회’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속으로 기혜현 강사님을 우리 오카리나 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 모시고, 반장님과 총무님은 ‘전도사님’,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대원들은 ‘장로님’으로 극진히 섬깁니다. 그럼 목사였던 저는 무엇을 하느냐? 저는 기꺼이 이 교회의 ‘사찰 집사’가 되기로 자처했습니다. 대원들이 어디론가 소풍을 가거나 시골 교회, 요양원으로 버스킹을 가자고 하면 제 면허증을 내던지고 25인승 버스 운전대를 잡아 기사 역할을 도맡습니다. 밥 살 일 있으면 기쁘게 밥을 사고, 회비 낼 일 있으면 돈을 냅니다. 아침저녁으로 혼자 계시는 누님 대원들에게 안부 전화를 돌리는데, 혹여나 전화를 안 받으시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제 휴대폰 단축번호 3번에 등록해 두고 우렁각시처럼 살핍니다. 제가 몸으로 낮아지고 섬기는 모습을 통해, 비록 예수를 믿지 않는 불자 대원들이라 할지라도 ‘아,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사랑과 교회라는 곳이 바로 이런 따뜻한 곳이구나’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고 싶을 뿐입니다.
김화숙 중급반 총무 : 목사님이 처음 오셨을 때는 솔직히 목회자라는 직함 때문에 거리감이 있고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오시고 나서 우리 팀 분위기가 정말 천국처럼 안정되고 화기애애해졌습니다. 목사라는 타이틀을 완전히 내려놓으시고 가장 밑바닥에서 저희를 챙겨주시니, 이제는 모든 대원이 진심으로 목사님을 의지하고 가족처럼 사랑합니다.
Q6. 최근 있었던 스승의 날 행사가 대원들뿐만 아니라 강사님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눈물의 감동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여순님 중급반 반장 : 우리 기혜현 선생님의 평생 꿈이 ‘제자 100명을 한 무대에 세워놓고 대규모 합동 연주를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번 스승의 날을 맞아 초급, 중급, 고급 세 반이 힘을 합쳐 사상 최초로 대규모 연합 감사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연세도 다르고 소속된 반도 다르다 보니 준비하는 과정에서 밤마다 참 많은 갈등과 의견 다툼이 있었습니다. 젊은 축에 속하는 중급반과 어르신들이 모인 고급반 사이의 경계를 조율하는 게 정말 지난한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심에 계신 기 선생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 하나로 결국 뭉쳤지요. 중간에서 김명남 목사님이 이 방 저 방 오가며 지혜롭게 갈등을 중화시켜 주신 덕분이기도 합니다.
행사 당일, 1절은 오카리나 연주로, 2절은 목소리 높여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는데 온 강의실이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사회를 보시던 기 선생님이 마이크를 들고 앞으로 나오시더니, 연세 많으신 어르신 대원들 한 분 한 분의 손을 맞잡고 눈을 맞추며 눈물로 노래를 불러주셨어요. 그 훌륭한 인성과 깊은 사랑 앞에 모두가 울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몸은 참석하지 못하고 멀리서 사진으로만 소식을 들은 대원들까지 눈물을 흘렸을 정도니, 우리 평생에 가장 뜻깊은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김정숙 대원 : 제가 학교에서 43년을 교직에 몸담으며 수많은 스승의 날을 보냈지만, 그날 펑펑 울면서 뼈저리게 반성했습니다. ‘나는 평생 저렇게 진심 어린 존경과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나는 진짜 선생이 아니었구나.’ 기 선생님이 대원들을 가르칠 때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어머 선생님, 이 어려운 높은 시(C)코드를 어쩜 이렇게 예쁘게 소리 내세요? 너무 예뻐요’라며 단 한 부분의 장점만 찾아 칭찬해 주시는 그 위대한 지도력이 80여 명의 마음을 하나로 움직인 것입니다. 기 선생님이야말로 하나님이 이 복지관에 보내주신 참스승입니다.
Q7. 오카리나 팀의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더불어, 노년의 허무함과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지요?
박일진 회장 / 기혜현 강사 : 우리 팀의 꿈은 이제 복지관 강의실을 넘어 더 넓은 세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9월에는 목포 시내 장로님들이 모인 ‘장로찬양단’ 정기 연주회에 초청받아 찬조 출연을 앞두고 있으며, 극동방송과의 연계 활동 및 간증 프로그램도 준비 중입니다. 또한 구미에서 목포로 내려오시는 은퇴 목사님들 모임의 주일 예배에서 특송을 맡게 되었습니다. 절에 다니시는 불자 대원분들도 흔쾌히 ‘가슴이 뜨거워지는 곳이 진짜 신이 계신 곳’이라며 기쁜 마음으로 교회 강단에 서서 찬양하기로 하셨습니다. 가을에는 그동안 반별로 소규모로 치러왔던 종강 발표회를 넘어, 목포문화예술회관 대강당을 대관해 80여 명의 대원들이 한 무대에 서는 거대한 연합 오케스트라 발표회를 개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여순임 중급반 반장 : 우스갯소리로 시작했던 꿈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필리핀이나 해외로 날아가 길거리 버스킹 투어를 전개할 계획입니다. 이 나이 많은 노인들이 해외 무대에 서서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지요. 여행사도 아직 선정 안 됐는데 벌써 대원 23명이 매달 10만 원씩 회비를 모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연습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악기 소리에 맞춰 젬베를 치고 드럼 리듬을 맞추며 온 몸으로 음악을 즐기고 있습니다.
대원 일동 : 나이가 들수록 건강을 지키기 위해 육체적 운동만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뇌를 깨우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정적인 음악 활동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악보를 볼 줄 모르는 사람, 소위 ‘콩나물 대가리’를 전혀 모르는 음악 까막눈이라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기혜현 선생님 밑에만 오면 누구나 천상의 연주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외롭고 우울하신 분들, 인생의 제2막을 행복으로 가득 채우고 싶으신 분들은 주저하지 말고 이랜드 오카리나 반으로 오십시오. 오카리나는 곧 ‘행복’ 그 자체입니다!
[복지관 오카리나반 교육 수강 및 소외계층 버스킹 공연 문의] : 지도강사 기혜현 (☎ 010-3505-7203)
[취재 및 정리: 박정완,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