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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성숙 선생님을 기억하며

2026-05-14 09:49 | 입력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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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수 교수
최은수 교수
남장로교연구소 및 아르메니아 조지아 연구소 대표

미 남장로교 전라도 교회사는 처음부터 ‘행함과 진실함으로’라는 모토를 가지고 시작되었습니다. 미 남장로교 선교사 제위는 ‘때가 차매’ 하나님의 시간과 경륜에 따라서 부르심에 순종하며 미지의 땅으로 오게 되었다. 그들은 복음사역, 의료사역, 교육사역이라는 삼각편대를 조직적으로 운용하며 효과적인 선교의 결실을 맺었다.

미 남장로교 전라도교회사의 시작은 의료사역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복음의 길을 열었다. 최초의 서양 의사이자 최초의 남장로교 의료 선교사, 드류 유대모 박사와는 친형제 보다도 절친했던 오웬 의사 목사 선교사가 목포에서 영육을 치유하는 사역을 펼쳤다. 그 이후, 포사이드 선교사의 활약으로 목포 프렌치 병원이 설립되어 수많은 영혼들을 위로하며 치유하였다.

1949년 카딩턴 의사 선교사가 목포에 왔으나, 한국전쟁을 계기로 그가 광주로 배치되어 활동하게 됨으로, 사실상 마지막 의료 선교사가 되었다. 목포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던 카딩턴 선교사는 최선이 선생을 보내서 목포 사람들을 치유하는 사역을 이어가도록 하였다. 최선이 선생이 이민을 가게 됨으로, 그녀의 친구인 여성숙 선생을 목포로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최선이 선생과 여성숙 선생 모두 카딩턴 선교사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분들이었다.

여성숙 선생은 당시 결핵으로 사경을 헤메는 환우들을 살신성인하는 정신으로 돌보시며 헌신하셨다. 돈 안받거나, 돈을 적게 받는 기침 병원을 운영하면서, 영육간에 신음하던 목포권 사람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여성숙 선생은 결핵 환우들을 위해서 한산촌을 조성하셨고, 그런 맥락속에서 한국 개신교 최초의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가 탄생하여 목포권의 소중한 유산이 되었다.

여성숙 선생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그리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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