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반도의 관문이자 수려한 해안선, 그리고 황토밭의 생명력을 품은 해남군 화원면. 서해의 맑은 바람과 들녘의 풍요로움이 어우러진 이곳 화원면의 작은 미술관에서 지역 사회를 따뜻하게 물들이는 특별한 예술적 울림이 시작되었다. 해남목장교회를 함께 섬기며 흙을 일구고 농촌의 일상을 지켜온 명천식 장로, 송해석 안수집사, 주지탁 명예안수집사 3인의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농촌의 삶 속에서 피어난 글과 그림, 자연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 지역 주민들과 관람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지난 10월 17일부터 30일까지 2주간 화원미술관에서 펼쳐진 이번 전시에는 땀 흘려 이웃을 섬겨온 묵묵한 삶의 지혜와 붓끝에 담긴 뜨거운 예술 혼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화폭을 채운 먹의 농담과 섬세한 색채, 손끝을 휘감으며 지어진 무언의 대화는 평범했던 농촌의 풍경을 감성의 색채로 묵직하게 물들였다. 고된 일상 속에서도 희망을 노젓는 이들의 작품은 농촌의 삶과 예술,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고백이 삼위일체를 이루며 지역 사회에 정겨운 온기를 더하고 있다. 붓끝으로 피워낸 삶의 향기와 감동의 서사를 한가득 안겨준 세 작가를 직접 만나 그들의 특별한 삶과 신앙, 그리고 예술 여정을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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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청룡마을 주지탁 명예안수집사(77)_서각, 서예 금평마을 명천식 장로(62)_현대 서예 학상마을 송해석 안수집사(57)_그림 |
Ⅰ. 공통 인터뷰, 한 교회에서 피어난 세 가지 빛깔의 예술과 동행
Q1.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모두 화원면 출신이자 해남목장교회를 함께 섬기시는 세 분께서 지난 10월 17일부터 30일까지 2주간 화원미술관에서 ‘주민 3인 전시회’를 개최하셨습니다. 교회에서의 직분과 성도님들께 나누고 싶으신 본인의 분야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명천식 장로: 안녕하십니까. 저는 청룡마을에 살며 해남목장교회에서 시무장로 직분을 맡아 교회를 섬기고 있는 명천식입니다. 대학에서는 농학을 전공하였고, 졸업 후 촌농종묘 등에서 근무하다 화원면에서 농약사를 오래 운영하였습니다. 현재는 기아자동차 영업을 맡아 일하고 있습니다. 예술 분야에서는 대학 시절 붓을 잡은 이래 40여 년간 서예를 정진해 왔습니다. 먹의 농담과 획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하는 현대 서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송해석 안수집사: 저는 금평마을에 거주하고 있으며, 해남목장교회에서 안수집사로 섬기며 교회 성가대원과 시설관리 봉사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장은 현대삼호중공업에 재직 중입니다. 장로님·집사님처럼 서예나 서각을 전문적으로 오래 수련한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 취미로 그림을 시작하여 8년째 화폭에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꽃, 그리고 신앙적 메시지를 담아오고 있습니다.
·주지탁 명예안수집사: 학상마을에 사는 주지탁입니다. 나이가 많아 교회에서는 명예안수집사로 있으며 특별한 직책보다는 교회를 뒷받침하는 기도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평생 건설업 현장에서 일하며 전국을 다녔지만, 젊은 시절부터 붓을 들고 서예와 서각에 매진해 왔습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과 전남미술대전 특선 등을 거치며 평생을 글씨와 붓끝의 정성으로 살아왔습니다.
Q2. 화원이라는 작고 소박한 농촌 마을에서 예술 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과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 명천식 장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누구나 삶의 피곤함을 극복할 수 있는 건전한 취미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젊었을 때는 운동도 좋지만, 나이가 먹어서도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최상의 취미는 글과 그림, 그리고 음악입니다. 그중에서도 서예는 혼자서도 깊이 있게 몰입할 수 있는 훌륭한 길입니다. 저는 이 화원미술관이 거창한 예술의전당이기보다, 지나가던 지역 주민들이 언제든 편하게 들어와 따뜻한 차 한 잔 나누고, 벽에 걸린 글과 그림을 보며 마음의 쉼을 얻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나아가 1년에 한 번쯤은 우리 동네 주민들과 지역의 소박한 음악인들을 모셔 음주가무 대신 따뜻한 음료와 차를 나누며 어울리는 ‘마을 소잔치’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지역에 건강한 문화의 활력을 불어넣고 싶습니다.
·송해석 안수집사: 화원면이라는 작고 정겨운 동네의 일원으로서, 이번 전시회처럼 소박하지만 따뜻한 예술 활동을 통해 이웃들이 서로 모여 소통하고 화합하는 기회를 꾸준히 만들고 싶습니다. 시골에 살다 보면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가 드문데, 제가 가진 작은 달란트를 활용해 재능 기부와 봉사 활동으로 마을에 활력을 더하고 싶습니다. 주민들이 멀리 나가지 않고도 일상 가까이에서 문화와 예술을 즐기며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따뜻한 지역 사회를 만드는 데 작은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주지탁 명예안수집사: 시골 농촌에서 평생 농사와 고된 노동에 쪼들리며 살아가는 주민들에게는 예술이라는 것이 멀게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지역 사회에 엄청나게 큰 기여를 할 만한 위치는 아니지만, 이렇게 동네 한복판에서 전시회를 열어둠으로써 평소 관심이 없던 분들도 지나가다 들러 “아, 시골에서도 이런 글씨와 그림을 감상할 수 있구나” 하며 마음을 씻어내는 ‘힐링’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일 년에 한 번이든 여건이 되는 대로 수시로 이런 자리가 만들어져 농촌 일상에 여유와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3.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과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마음속에 남아 있는 특별한 미담이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명천식 장로: 저에게 서예는 단순한 기술이나 여가 활동이 아니라, 제 삶을 지탱해 준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었던 IMF 시절에도 붓을 잡고 먹을 갈며 그 모진 시련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은혜는 방치되어 있던 농협 창고 건물이 많은 분들의 수고를 거쳐 미술관으로 변모하고, 유휴 기간을 거쳐 결국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 공간의 운영을 맡겨주신 과정 전체입니다. 태초부터 저를 계획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송해석 안수집사: 저는 두 분 장로님처럼 전문 작가가 아닌 취미로 시작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붓을 들고 연습하여 실력을 더 키우고, 더 깊이 있는 풍경과 신앙 고백이 담긴 작품들을 완성해 가고 싶습니다. 살면서 기억에 남는 미담 중 가장 가슴 깊이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번 전시를 함께 준비해 주신 명천식 장로님과의 첫 만남입니다. 제가 해남목장교회에 처음 등록했던 날, 장로님께서는 저를 잘 알지도 못하심에도 저희 부부를 댁으로 초대해 따뜻한 홍차를 대접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성경 말씀을 친필로 정성껏 써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액자는 지금도 저희 집 가장 귀한 곳에 걸려 있으며, 낯선 시골 마을에 정착하는 저희 부부에게 커다란 사랑과 신앙적 위로가 되었습니다.
·주지탁 명예안수집사: 저는 젊은 시절 직장 문제로 전국 현장을 전전하며 여러 서예 선생님들께 글씨를 배웠습니다. 스승님들마다 필법과 취향이 달라 고충도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다양한 비법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해남에 와서 만난 백련 백재혁 선생님의 가르침과 중후한 필법은 제 서예 인생에 가장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고 대수술을 몇 차례 받다 보니 옛날처럼 대작을 쓰거나 현장 휘호를 하기는 힘이 듭니다. 하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거창한 욕심을 버리고 정갈한 마음으로 성경 구절을 사경하는 일에 집중하며 소일거리이자 영적 수양으로서 붓을 놓지 않을 생각입니다.
Ⅱ. 개별 심층 인터뷰
- 청룡마을 명천식 장로 “농촌의 삶과 먹향 속에서 피어난 하나님을 향한 고백”
Q1. 2020년 개관 후 한동안 방치되었던 농협 창고를 맡아 화원미술관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이 공간이 지역 주민들에게 어떤 가치와 의미를 전달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십니까?
·명천식 장로: 성경 말씀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이기도 한 한글 '선(善)' 자는 자세히 보면 한 사람은 무릎을 꿇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손을 잡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선'입니다.
화원미술관은 거창하고 문턱 높은 미술관이 아닙니다. 지나가는 주민 누구라도 쉽게 들러 차 한 잔 마시고, 벽에 걸린 글씨와 그림을 보며 “아, 이런 글씨도 있네, 이런 그림도 있구나” 하고 쉽게 문화와 신앙을 접하는 공간입니다. 특히 미술관 내에 많은 책을 가져다 놓은 이유는, 요즘 아이들이 모이면 각자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데, 이곳에서만큼은 단 30분이라도 휴대폰을 내려놓고 책을 읽으며 정서를 함양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차를 마시고, 독서를 하고, 이웃과 대화를 나누는 지역민의 따뜻한 쉼터이자 ‘선을 만들어가는 공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Q2. 서예를 시작하신 지 어느덧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처음에 붓을 잡게 된 특별한 동기와 스승님들과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 명천식 장로: 순천대학교 재학 시절, 기숙사로 오가는 길목에 동아리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거기에 1년 선배가 '연묵회'라는 서예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 선배가 제 인생의 아주 결정적인 길잡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당시 제가 학업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는데, 그 선배가 공부하는 법과 연구실 들어가는 노하우를 정성껏 가르쳐 주었습니다. 덕분에 지도교수님 연구실에 들어가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학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고마운 선배가 제게 “글씨를 써보라”며 권유하여 붓을 잡게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대한민국 최고의 서예 대가이신 목인 전종주 선생님과 무연 양흥식 선생님 두 분으로부터 글씨를 배웠습니다. 목인 선생님께는 현대 서예의 파격과 창의성을 배웠고, 무연 선생님께는 정통 서예의 곧고 아름다운 한문·한글 기틀을 배웠습니다. 이후 목포의 해연 박영명 선생님, 최근에는 문인화를 가르쳐주신 창산 배성한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스승님들을 만나 서예를 통해 인간이 살아가는 지혜와 예술의 참된 경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Q3. 개인전 4회 개최 및 각종 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하시면서, 전통 서예와는 다른 '현대 서예'의 길을 걷고 계십니다. 장로님의 예술적 지향점은 무엇입니까?
· 명천식 장로: 저는 정형화된 궁체나 틀에 박힌 한문 해서보다는 먹의 농담을 조율하고 획의 굵기와 글자의 크기를 자유롭게 조화시키는 '현대 서예' 작업을 주로 합니다. 처음 보는 분들은 글씨의 형태가 깨져 있거나 틀어져 있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굳이 제가 일일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관람객들은 저마다의 삶의 경험을 투영하여 작품을 깊이 있게 해석해 냅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듯, 관람객 스스로가 화폭 속에서 위로와 메시지를 읽어내는 과정이 참으로 흥미롭고 보람됩니다.
무엇보다 저는 제 작품의 명제와 주제를 세상의 글귀보다는 성경 말씀, 즉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데 두고 있습니다. 무작정 “교회 나오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글씨로 걸려 있는 말씀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사명입니다. 해외 교류전이나 미국 등 국외 관람객들에게 한글 말씀 서예를 선보였을 때 커다란 찬사와 감동을 나누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먹향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영혼의 위로와 희망의 울림을 전하고 싶습니다.
금평마을 송해석 안수집사 “붓끝으로 담아낸 창조 세계의 소박한 아름다움”
Q1. 조선소(현대삼호중공업)라는 힘든 산업 현장에서 근무하시면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으신가요?
· 송해석 안수집사: 아파트에 살던 시절, 퇴근 후 집에 오면 일주일 내내 출퇴근만 반복하는 시계추 같은 삶이 계속되었습니다. TV를 오래 보는 편도 아니고 저녁 시간에 가만히 누워 있자니 삶이 팍팍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딸아이가 “아빠, 가만히 계시지 말고 손으로 예쁜 그림이라도 하나씩 그려보세요” 하고 권유를 해주었습니다.
회사에서 무거운 철판을 다루고 고된 작업을 마친 뒤, 집에 돌아와 조용히 캔버스 앞에 앉아 붓을 잡으면 신기하게도 하루의 모든 피로와 스트레스가 씻은 듯이 풀렸습니다. 그림에 몰입하는 동안 고도의 집중력이 생기고, 작품을 하나씩 완성할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힐링'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취미가 어느덧 8년이라는 세월을 지나 이번 전시회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Q2. 지금까지 그리신 많은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대표작과 주로 어떤 소재를 즐겨 그리시는지 궁금합니다.
· 송해석 안수집사: 모든 작품이 자식같이 소중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캔버스에 처음으로 완성했던 ‘시원한 계곡’이라는 풍경화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하얀 화폭에 물길과 바위, 푸른 나무가 채워지던 그 첫 감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과 양의 휴식’이라는 신앙적 작품입니다. 푸른 초장에 양들을 누이시고 쉼을 주시는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표현할 때 마음속에 커다란 은혜가 흘러넘쳤습니다.
저는 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과 들에 피어난 소박한 꽃들을 주제로 즐겨 그립니다.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변함없이 아름다움을 피워내는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을 고백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Q3. 이번 3인 전시회를 마치며 느끼신 소회와 앞으로 새로 도전하고 싶은 예술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 송해석 안수집사: 내로라하는 대가들의 거창한 미술전도 좋지만, 저처럼 시골에서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이웃이 꾸준한 취미로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여는 모습을 보며, 마을 이웃들이 “나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소박한 도전과 희망을 얻기를 바랍니다. 그림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소통의 도구입니다.
지금까지는 아파트나 일반 가정집에 걸기 좋은 40호, 50호 남짓의 작은 사이즈 그림을 위주로 그려왔지만, 앞으로는 기량을 더 닦아서 넓은 들녘과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웅장하게 담아낼 수 있는 커다란 대형 화폭 작품에 꼭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학상마을 주지탁 명예안수집사: “초등학교 시절 스승의 칭찬 한마디가 평생의 붓길로”
Q1.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과 전남미술대전 특선 등 서예가로서 오랜 세월 기량을 인정받아 오셨습니다. 서예에 입문하게 된 아주 오래된 인연의 사연이 궁금합니다.
· 주지탁 명예안수집사: 참 신기하게도 사람의 일생은 어릴 적 스승님의 칭찬 한마디에 결정되곤 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시골 초등학교를 다닐 적에 일주일에 한 시간씩 먹을 갈아 글씨를 쓰는 ‘습자(習字)’ 시간이 있었습니다.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 제 글씨를 보시더니 “지탁이는 어린놈이 글씨를 참 이쁘고 바르게 잘 쓴다!” 하고 온 학급 아이들 앞에서 크게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 칭찬이 너무 우쭐하고 기분이 좋아서, 집에 돌아오면 공책 숙제는 안 하고 하루 종일 벼루에 먹을 갈아 글씨 연습만 했다. 군대에 가기 전 마을 분교의 졸업식 때는 교장 선생님의 부탁으로 수십 명의 졸업장과 상장을 제 손글씨로 직접 다 써 주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 스승님의 정겨운 칭찬 한마디와 동네 어르신들의 인정을 받았던 경험이 제 평생을 서예의 길로 이끈 가장 큰 동력이었습니다.
Q2. 평생을 건설 현장에서 보내며 바쁜 삶을 사셨는데, 서예라는 예술이 집사님의 삶과 인품에 어떠한 변화를 안겨주었습니까?
· 주지탁 명예안수집사: 건설 현장의 현장 소장이나 감리 업무를 맡다 보면 거친 현장 분위기상 저녁마다 술을 마시고 소란스럽게 노는 문화가 팽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퇴근 후 숙소에 돌아와 먹을 갈고 붓을 잡아야 했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음주 문화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현장 소장이 술을 안 먹고 글씨를 쓰니, 밑의 직원들이나 현장 관계자들이 함부로 술판을 벌이지 못했고, 결국 제가 맡은 현장마다 건전하고 차분한 일터 문화가 정착되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제 원래 성격이 굉장히 급한 편입니다. 볼펜을 잡으면 글씨를 날려 쓰곤 하지요. 하지만 벼루에 정성껏 먹을 갈고 붓끝에 신경을 모으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평안해지고 차분해집니다. 서예는 제 급한 성격을 개조해 주고, 어떤 시련 앞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정신 수양'의 가장 귀한 도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Q3. 오랜 시간 붓을 잡아오신 대선배로서, 서예를 배우고자 하는 후배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입니까?
· 주지탁 명예안수집사: 요즘 사람들은 너무 조급합니다. 서예 학원에 들어오자마자 선배들이 멋지게 쓰는 병풍이나 대작을 보고 “나는 언제 저렇게 쓰나” 하고 조급해합니다. 하지만 서예는 조급함과의 싸움이며,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제가 처음 서예에 입문했을 때는 단 한 일(一) 자 획 하나를 익히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획 하나만 그렸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루에 필법을 두 개 이상 절대 가르쳐주지 않으셨습니다. 요행이나 조급함을 버리고, 기초 획 하나부터 묵묵히 붓끝을 다져나갈 때 비로소 자기만의 깊이 있는 글씨가 완성됩니다. 서예는 한 번에 많이 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바른 자세로 꾸준히 오랫동안 묵향을 가까이하는 것이 참된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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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중인 왼쪽부터 주지탁 집사, 박정완 장로, 송해석 집사, 명천식 장로 |
Ⅲ. 마무리 인사: 호남기독신문 애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 명천식 장로: 호남기독신문을 애독하시는 모든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시는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지는 못할지언정, 우리의 언행과 삶의 모습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서로 손잡고 일으켜 세워주는 ‘선(善)’의 마음으로 이웃을 섬길 때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할 것입니다. 이번 화원미술관 3인 전시회는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계획하시고 인도하신 성길입니다. 시골의 작고 소박한 미술관이지만 이곳에 방문하시어 하나님 백성들이 피워낸 묵향과 그림 속에서 작으나마 깊은 영적 위로와 감동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송해석 안수집사: 호남기독신문 애독자 여러분, 늘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성도님들의 가정과 섬기시는 교회 위에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세상살이가 고되고 힘들지라도,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 안에서 서로 격려하고 따뜻하게 손잡아주며 아름다운 신앙의 길을 함께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저희들이 준비한 소박한 화폭들이 여러분의 삶에 작으나마 활력과 기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지탁 명예안수집사: 일상이 바쁘고 피곤하시더라도 화원미술관 같은 시골의 작고 정겨운 전시장을 가끔 찾으셔서 작품들을 감상해 보십시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이의 정성 어린 글과 그림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폭이 넓어지고 영적·정서적 수양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늘 건강하시고 마음의 여유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취재 후기]
황토밭 들녘 넘어 서해의 노을이 뉘엿뉘엿 물드는 화원미술관 뜨락. 오랜 세월 흙을 일구고 직장을 지키며, 한편으로는 벼루에 먹을 갈고 화폭에 물감을 칠해온 세 성도의 얼굴에는 세파를 이겨낸 성숙함과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미소가 공존하고 있었다.
거창한 예술적 명예보다 이웃에게 차 한 잔의 여유를 나누고, 글씨 한 획에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내려는 이들의 소박한 소명. 붓끝에서 피어난 이들의 정겨운 예술 향기는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신앙의 깊은 울림을 전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대담 박정완 사장, 정리 김성우 취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