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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제1부 어머니는 바보야 48회

2026-10-08 15:02 | 입력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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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
윤기
전) 목포공생원 원장
공생복지재단 회장
- 1942년 목포 출생
- 중앙신학교(現 강남대학교) 사회사업학과를 졸
- 아동복지시설「목포공생원」의 원장
- 정신지체장애인시설「공생재활원」을 설립
-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회장(1987年~2001年)을 역임
- 1989년 일본 최초의 재일동포를 위한 노인복지시설「고향의 집」을 건립
- 1978년 제22회 소파상등 수상다수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이사장
- 저서는《김치와 우메보시》, 역서는《괴짜총리 고이즈미, 흔들리는 일본》 《고령사회 이렇게 살아보세》


공저자 윤문지
공저자 윤문지(타우치 후미에)
-1949년 일본 오사카 출생
- 쿄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
- 1972년, 한국 목포로 건너와 목포공생원 생활지도원 역임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 이사, 사회복지법인 윤학
자공생재단 이사, 사회복지법인 공생복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제3회 여성휴먼다큐멘터리 대상에《양이 한 마리》로 입선
- 1982년《나도 고아였다》로 일본 크리스천신문 제5회 아카시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



두 사람은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어머니는 주로 듣는 쪽이었다.
식사를 끝낸 우리는 스이도바시(水道橋) 역 쪽으로 걸었다. 카마타 씨는 역 구내의 매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더니 지갑을 꺼냈다.
‘차표를 사려나?’ 하고 생각했다. 카마타 씨는 웬 카드 같은 종이 석 장을 사더니 어머니와 내게 건네주었다. 복권이었다. 당첨되면 5백만 엔의 상금이 나온다는 것이다.
“가난한 저로서는 이 정도밖에 사주지 못합니다”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어머니께 복권을 다 사주었을까?
“어머니, 당첨되면 좋겠어요.”
어머니의 사기를 북돋우고 싶어 입을 열었다.
“세금은 얼마나 떼지요?”
“글쎄….”
카마타 씨가 대답했다.
“복지 사업에는 세금이 면제될 거예요.”
나는 눈이 동그래지며 감탄했다. 어머니도 카마타 씨도 덩달아 웃었다.
도쿄에 온 지도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에 중앙 공동 모금회의 오노 상과 일본 클럽의 하나와 사부로 씨 등의 안내로 관방장관 하시모토(橋本 美三郞) 씨를 비롯하여 중의원의원 나다오 코오키치(灘尾弘吉), 노다 유이치(野田卯一), 다나카 타츠오(田中龍夫), 하라다 겐(原田憲) 등 일본의 유력 인사들을 순방했다.
그때마다 나는 어머니에게 실망했다. 어디를 가도 “오카게사메데(덕분에 잘 지냅니다)”였다. 지금 공생원은 무엇이 어렵고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날도 오노 씨와 우리는 경제 단체 연합회로 우에무라 씨를 만나러 갔다.
비서인 듯한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우에야마(植山) 씨가 먼저 대기실로 안내했다. 정중한 말씨로 우에무라 회장은 지금 소련에서 온 손님과 접견 중이라고 설명했다. 과연 일본 경제계의 총리다운 분위기구나 생각했다. 바쁘게 드나드는 그는 드나들 때마다 특히 나를 쳐다보는 눈초리가 보통이 아니었다. 비서를 오래 하다 보면 사람을 식별하게 되는가 보다 하고 기다리는 동안 멋대로 이런저런 상상을 하고 있었다. 한참 뒤 우리 세 사람은 회장실로 안내되었다.
칠순이 훨씬 넘어 뵈는 우에무라 씨는 문까지 나와 맞아주었다. 둥근 테이블에 앉은 나는 먼저 인사를 드렸다.
“건강이 좋아지셨군요. 걱정했습니다.”
우에무라 회장이 부드럽게 화제를 꺼냈다.
그에게는 재계 총리 같은 위업은 없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었다.
화제가 공생원의 원아들에게 미치자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 만면에 미소를 띠며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자랐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인간 우에무라, 아니 인자한 할아버지 앞에서 조용하고 차분히 듣고만 계셨다.
‘시간이 없는데, 빨리 용건을 마치지 않으면 다음 손님이 기다릴 텐데….’
어머니 치즈코의 입에서 무엇이고 한마디쯤 나올 줄 알았으나 시종 침묵만 지키고 계셨다. 덕분에 사업이 순조롭다는 태도였다.
나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일본에 한가하게 인사만 하러 온 게 아니지 않은가? 목포에서는 직원 모두 어머니의 귀국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텐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하다고 한마디쯤 하면 좋지 않은가?
그러나 그 상황에서 화를 낼 수는 없었다.
회장실을 나올 때 우에무라 씨는 문밖까지 나와서 어머니, 나, 오노 씨에게 일일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경제 단체 연합회 건물을 나와 오노 씨와 헤어지자 나는 더 참지 못해 입을 열었다.
“어째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셨어요?”
어머니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분은 우리가 고생하고 있는 줄 안다. 도와줄 생각이 있으면 말하지 않아도 도와준단다.”
“아이고 답답해라. 어머니, 우에무라 씨가 회장이 되었다고 일 년 열두 달 공생원만 생각하고 있을 줄 알아요? 세계를 상대하고 전국적으로 활약하는 그분은 어머니를 만나고 있는 그 시간만 어머니와 공생원 일을 기억하지 그 외 시간에는 후원회 회장이 아니란 말씀이에요.”
나는 어머니에게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폭발시켰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오노 씨도 있고 비서도 있잖니?”
모든 것을 그분들의 뜻에 맡긴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어머니, 당신은 어머니입니다. 그저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나 하는 한 지아비의 아녀잡니다.’
그 어머니가 격에 맞지 않는 십자가를 지고 고생하고 있는 것이 내 눈에는 안타깝게만 보였다.
이리하여 도쿄에서의 일차 인사가 모두 끝난 셈이었다. 우리들의 한 달간의 활동은 문자 그대로 인사치레로 끝난 것이다.

(다음 49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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