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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유와 해방(2)

2026-04-29 17:45 | 입력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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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기 목사
홍석기 목사
범사회문제대책운동본부 사무총장
(상리교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죄와의 싸움과 갈등은 ‘내 노력, 내 의지, 내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내가 안고 있는 문제인데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거다. 바울은 갈등 속에서 방황하다가 결국은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자신의 힘으로는 죄 문제를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했던 고백이 있다. 이어지는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오호라~’ 하며 탄식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하고 있다. 엉엉 울던 애가 갑자기 ‘히죽히죽’ 웃는 것과 같다. ‘오호라’하고 탄식하던 사람이 어떻게 금방 ‘감사하리로다’하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24절과 25절을 보면, 중간에 접속사도 하나 없다. 갑자기 변하고 있다. 바울은 글을 쓸 때 상당히 논리적이다. 로마서는 다른 성경보다 더 논리적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급작스러운 전환이 이루어진 것일까? 여기에는 큰 진리가 숨어있다. 적어도 2가지 진리가 숨어있다.

첫째, 탄식의 자리에 오래 머물지 말라! 는 것이다. ‘오호라’하는 탄식하는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말라는 말이다. 진실한 성도일수록 자기의 모순을 보고 갈등하고 괴로워할 때가 많다. 죄 앞에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바울처럼 “아~ 나는 비참한 사람이다.”며 탄식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 탄식의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안 된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탄식의 자리에 ‘오래’ 머무는 것을 은혜로 알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하고 찬송을 부르면서 많이들 울었다. 눈물을 많이 흘려야 은혜를 많이 받은 줄 알았다. 물론 회개하는 것은 좋다. 진정한 회개와 영혼 깊이 우러나오는 회개는 영혼을 정화하며 순결하게 해준다. 그러나 날마다 울기만 한다면 그것은 비정상적인 신앙이다. ‘오호라’하는 탄식은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신호’이다. 그러나 ‘오호라’의 탄식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다. 아무리 탄식을 많이 해도 그 탄식이 우리를 구원하는 조건이 될 수 없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께로 부터 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호라’하고 탄식할 때는 재빨리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죄로 인해 탄식하면서도 곧바로 눈을 돌려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며 ‘할렐루야’를 외쳐야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우리의 상한 마음을 싸매고, 눈물을 씻겨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외에 누가 있나? 아무도 없다. 나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 외에는 없다. 우리가 어떤 죄를 범해도 용서받을 수 있도록 ‘의의 손’으로 감싸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시다. 지은 죄를 다시 범하는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시다. 예수님 외에 누가 있단 말인가? 오직 ‘예수님’뿐이시다. 그러므로 울다가도 즉각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 괴로워하는 자리에 오래 머물면 안 된다. 죄의 자리에서 탄식만 하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헛되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탄식의 자리에서 재빨리 ‘십자가의 주님, 부활의 예수님’께로 돌이켜야 한다. 그럴 때 은혜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오호라’의 탄식이 있나? 그렇다면 즉시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란다!

‘오호라~’ 하며 탄식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했던 두 번째 이유가 있다. 성도는 ‘정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교인들이 로마서 8장을 좋아한다. 필자도 그렇다. 롬 8장 말씀을 좋아한다. 독일 경건주의 창시자인 ‘필립 스페너’가 이렇게 말했다. “성경을 반지라고 한다면 로마서는 보석이요, 롬 8장은 그 보석 중에도 반짝이는 초점과 같다.” ‘로이드 존스’는 롬 8장을 강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몸의 지체 중 더 중요한 지체가 있다. 그렇듯이 성경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보석이요 보석 덩어리로 가득한 성경이 로마서 8장이다.” 롬 8장 중에도 1절이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러므로’라는 단어는 로마서 1장부터 7장까지의 모든 내용을 요약한 말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죄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예수님을 믿고도 죄에 대한 갈등이 존재한다. 이 갈등은 내 방법, 내 노력이나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롬 8장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이런 뜻이다. “죄의 세력은 내 방법, 내 노력이나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에 말씀드리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죄로부터 승리’할 수 있는 진리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게 무슨 뜻일까? 죄의 세력을 이기는 방법은 ‘예수 안에’거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나? 죄의 세력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의 세력에 맞서면 패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길 뿐이다. 그럴 때 모든 정죄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면 죄의 세력이 힘을 잃게 된다. 예수님이 흘리신 거룩한 보혈의 피에 ‘죄를 소멸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죄라도 예수님의 보혈 앞에서는 ‘해독’이 이루어진다. 내가 비록 죄의 세력에 패배한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빛’이 오면 어둠은 물러가게 되어 있다. 바로 이 원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방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확신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분들이 있다. 왜 그럴까? 머리로는 아는데 빛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령의 빛’이 우리의 영혼을 가득히 채우지 못해서 그렇다. 성령의 빛이 임하시면 어둠이 물러간다. 의심이 사라지고 죄에서의 자유와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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