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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수 교수
미장로교 및 아르메니아 조지아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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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고향과도 같은 영국 스코틀랜드는 장로교의 본산이자, 전라도를 섬긴 미 남장로교의 뿌리이다. 한국에 온 장로교 선교회 중에서 미 남장로교는 본산 장로교의 정신과 이상을 가장 훌륭하게 계승하여 발전시킨 총회다.
1560년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을 이룩한 존 낙스의 고향이 하딩턴이다. 이곳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기포드 라는 마을이 있다. 기포드의 목사관에서 태어난 인물이 존 위더스푼 목사였다.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신앙적인 이유로 투옥되기도 하였고, 미국으로 이민간 후,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단 한명의 현직 목사였다. 존 위더스푼 목사는 미국에서 조직된 최초의 장로교 총회에서 초대 총회장으로 섬기기도 하였고, 장로교 학교인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목포와 연관된 위더스푼 가문이기도 하고, 기포드 라는 마을 자체가 오래된 전통을 머금고 있는 포근한 분위기여서 시간이 될 때마다 방문도 하고 때로는 기포도에서 가장 오래된 숙소에서 유숙하기도 한다. 스코틀랜드 태생이며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존 위더스푼 목사의 직계가 목포로 왔으니 신묘막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로티 잉그램 위더스푼 벨 사모 선교사가 유진 벨 선교사와 결혼하여 목포로 왔고 슬하에 남매를 두었다. 로티 위더스푼 선교사는 버지니아주 스톤튼에 위치한 메리 볼드윈 대학 출신이었다. 이 대학 부설로 미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버지니아 여자 사관학교’가 있어서 매우 특별한 전통을 가지고 있고, 필자의 셋째 자녀인 딸이 이 사관학교 졸업생이라서 더욱 애착이 간다. 존 위더스푼의 직계로서 명문가 출신인 로티 위더스푼이 전라도 선교사로 파송받아서 목포로 와서 헌신하였다. 전라도로 온 거의 모든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고 높이며 존중하였고 진심으로 섬겼다.
목포로 온 로티 잉그램 위더스푼 벨 선교사는 한국에 도착한 이후 수많은 편지들을 미국의 부모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보냄으로 당시의 한국상황과 선교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기여를 하였다. 남편 선교사와 함께 사역도 하고 출산하여 자녀를 돌보는 일을 겸하였던 사모 선교사들에게 편지는 일종의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편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사의 개인적인 편지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목포 땅에 사는 것 자체가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로티 잉그램 위더스푼 벨 사모 선교사는 지병이 악화되어 남편과 어린 남매를 뒤로하고 훌쩍 떠나갔던 것이다.
목포의 눈물. 그것은 위더스푼 가문의 눈물이었음이다. 로티 위더스푼 벨 선교사의 임종을 지킨 오웬 의사 선교사와 휘팅 의사 선교사 부부의 의학적인 한계, 인간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눈물이기도 하였다. 장로교 본산인 스코틀랜드의 작은 마을, 기포드와 이곳 출신인 존 위더스푼, 그리고 목포에서 하늘로 간 로티 벨 위더스푼 벨을 기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