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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제1부 어머니는 바보야 33회

2026-02-19 18:01 | 입력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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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자 윤기
공저자 윤 기

목포공생원 원장

공생복지재단 회장 

- 1942년 목포 출생

중앙신학교(現 강남대학교사회사업학과를 졸

아동복지시설목포공생원의 원장

정신지체장애인시설공생재활원을 설립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회장(1987~2001)을 역임

- 1989년 일본 최초의 재일동포를 위한 노인복지시설고향의 집을 건립

- 1978년 제22회 소파상등 수상다수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이사장

저서는김치와 우메보시역서는괴짜총리 고이즈미흔들리는 일본》 《고령사회 이렇게 살아보세가 있다.



공저자 윤문지(타우치 후미애)

공생복지재단 이사장

 

-1949년 일본 오사카 출생

쿄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

- 1972한국 목포로 건너와 목포공생원 생활지도원 역임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 이사사회복지법인 윤학

자공생재단 이사사회복지법인 공생복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3회 여성휴먼다큐멘터리 대상에양이 한 마리로 입선

- 1982나도 고아였다로 일본 크리스천신문 제5회 아카시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






 
어머니도 학생회의 제안에 찬성하셨다.
그러나 나는 다른 고아원 일이 마음에 걸렸다. 모두 참가하면 좋겠는데. 한 곳이라도 불참하면 의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아원 쪽에는 가능한 한 폐를 끼치지 않게 하려고 시장을 비롯하여 은행 지점장, 학교장 등을 방문하여 처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또 목포시 체육회에는 그날의 진행을 의뢰했다. 예상외로 모두가 협력해 주었다. 어머니와 보모들은 사흘씩이나 걸려 도시락 천 개를 만들어 주었다.
그날의 시설별 숙소도 배정하고 각각의 담당자도 정했다. 상품 중에는 돼지도 두 마리 끼어 있어 운동장에서 시종 꽥꽥 울어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종목은 배구, 축구, 탁구였다. 공생원을 포함해 8개의 고아원이 참가한 성대한 운동회였다.
어머니가 만든 도시락은 참가자에게 대단한 인기였다. 목포 시민과 다른 고아원으로부터 사랑과 정감을 느끼게끔 하는 공생원으로 바뀌어 갔다.
친선 체육 대회가 끝나자 나는 운동보다 독서 쪽에 심취했다. 유달영의 새로운 역사를 위하여, 유토피아 원시림, 이광수의, 심훈의 상록수등 닥치는 대로 읽었다.
 
 
매사에 적극적이 되어가다
 
교회 봉사도 밤늦게까지 도맡아 했다. 화장실, 창고, 곳간, 쓰레기 청소에서 화단이며 도로 정리까지 모두가 꺼리는 궂은일도 자진해서 했다. 엄청난 변화였다. 윤 선생님이 눈이 휘둥그레져 놀라는 일이 많았다.
고등학교 3학년으로 진급했다. 수시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과연 희망대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까? 의사 아들 김동선은 의과 대학에 진학해 슈바이처가 되겠다고 한다. 임동신은 서울대 조선 공학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길만이 자립의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나는 방황했다 어느 대학에도 농촌을 향한 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학과가 없었다. 축산과, 수의과 같은 곳은 내가 추구하고 있는 바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5·16 군사 정부는 국가 재건을 부르짖으며 농촌 부흥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한창 혈기 왕성한 나에게 그 외침은 솔깃했다. 가난과 싸운다, 빈곤을 물리친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민적 화합을 이룩하자는 시대적 대세는 나의 젊은 피를 끓게 했다. 아니 그 뜨거운 마음은 일곱 명의 거지들과 더불어 공생원을 시작한 아버지 윤치호의 피를 이어받은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비로소 눈이 뜨이고 어른이 된 듯했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분명 농촌에 대한 내 꿈을 칭찬해 주셨을 텐데.
나는 아버지와 절친했던 목사님과 의논해 보았다. 다들 신학교에 가라고 했다. 사실 나는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목사님을 신뢰하지 않았다. 어쩐지 위선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인에게 겸손하라, 솔직하라,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라고 설교하면서 정작 자신은 솔직하지도 벌거숭이가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공생원의 옛 직원이었고 이제 막 신학교를 졸업한 이정규 목사님을 찾아뵈었다.
목사님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놀라셨다.
, 그 옛날의 개구쟁이가 이렇게 의젓해지다니, 이거 믿기지 않는데. 믿음직스럽구나!”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말씀을 이으셨다.
좋은 곳이 있긴 한데. 그만한 정열이라면신학교에도 사회사업과가 있으니 잘하면 네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순간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 번째 만난 사람마저도 같은 조언만 되풀이하는 게 아닌가?
이 목사님은 말씀을 계속하셨다.
네 아버지는 정말 훌륭하셨다. 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었지. 요즘처럼 하나님을 내세워 허튼일을 벌이는 무리와는 근본적으로 달랐어.”
이 목사님은 공생원 재직 당시 원이 두 차례나 남의 손에 넘어갈 뻔했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다음 3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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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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