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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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리교회 범사회문제대책운동본부 사무총장
    상리교회,
    범사회문제대책운동본부 사무총장
    홍석기 목사


    ‘손자병법’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실은 ‘손자병법’에 나오지 않는다. 일단 전쟁에서 백 번 싸워서 백 번 모두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는 ‘이긴다’는 승(勝) 대신 ‘위태롭다’는 태(殆)를 선택했다.



    원문은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태(百戰百殆)이다.”로 되어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불태(不殆)’ 즉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적군의 허와 실을 알고, 나의 강함과 약함을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적과 백 번쯤 교전하여도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적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최소한 나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잘 알고 있다면 어떨까? 손무는 말하기를 “한번은 지고 한번은 이긴다.”고 했다. 적의 상황을 몰라도 아군의 전투력만 잘 파악하고 있어도 이길 가능성이 5할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적을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지 못하면 승리를 꿈꿀 수 없다는 거다. 손자병법의 원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다. 먼저 알아야 한다. 독자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나를 누구보다 아끼며 나를 돕는 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요 1:29에 보면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며,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의 기록이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요단강으로 가셨다. 그러자 요한이 예수님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이 말씀을 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지고 가는”이라는 말씀이다. ‘지고 가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이로’라고 한다.



    직역하면 ‘운반하다, 제거하다, 없이하다, 치워버리다.’는 뜻이다. 이 말의 의미를 풀이하면 이렇다. 예수님은 죄를 운반하는 어린양이다. 세상 죄를 자신에게 운반한 것이다. 그리고 죄를 ‘제거하며, 없이하고, 치워버리는’ 분이다. 구약 시대에 제사를 드릴 때 ‘어린양’의 역할이 그랬다. 이스라엘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은 유월절이다. 유월절에는 온 민족이 예루살렘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속죄’를 위한 제사를 드렸다. 이때 제사를 드리며 ‘어린양’을 잡았다. 유월절의 시작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였다. 출 12:21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출애굽을 할 때, 하나님께서 명하셨다.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라.”



    그러면 “그 집안의 모든 죄를 사하고, 죽음의 사자가 그 집을 지나가리라(pass over).”하셨다. 여기에서 (pass over, 유월절)이라는 말이 나왔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았을 때 했던 말은 ‘유월절의 어린양’을 염두에 두고 했던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죽음의 사자가 지나가도록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시 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라고 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과를 멀리 옮기셔서, 완전히 치워버리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어린양이 되어 십자가를 지셨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원죄와 자범죄’를 다 짊어지셨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다 깨끗하게 완전히 치워버리셨다. 쓰레기차가 오면 쓰레기를 싣고 가서 불에 태울 것은 채우고, 버릴 것은 버린다.



    그리고 오물이 있던 자리를 ‘깨끗이 완전히’ 다 치워버린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십자가의 보혈로 완전히 소멸시켜 버리셨다. 우리의 죄를 소멸시키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만이 우리의 죄를 소멸하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거저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어린양’이라는 말은 ‘희생제물’로 드려진 양이라는 뜻이다. 유월절의 어린양은 처참하게 죽어서 몸이 찢겨졌다. 그리고 그 피를 문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발랐다.



    문인방은 문의 위아래에 가로놓여 벽을 받쳐 주는 나무를 말한다. 문틀의 위아래를 문인방이라고 한다. 그리고 문설주는 문틀의 좌우를 말한다. 그러니 죽은 어린양의 피를 문틀의 ‘위, 아래, 좌, 우’로 둘러가며 바른 것이다. 그리고 남은 고기는 불에 구워서 다 먹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몸이 채찍에 맞아 만신창이가 되셨다.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양손과 발은 대못에 박히셨다.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셨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6시간이나 달리시며, 몸에 있는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필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십자가를 지실 때 하셨던 가상칠언 가운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는 말씀을 묵상해보았다.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으면 “나는 지금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고 있다.”는 절규를 하셨겠나? 사 53:5,6에 보면 왜 예수님께서 ‘어린양’이 되셨는지 말씀하고 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이 어린양이 되어 주심으로 우리의 ‘허물과 죄악’ 멀리 옮겨지고, 도말 되었다. 예수님이 대신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평화와 치유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이다.

     

    우리에게도 주님이 말씀하신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기 바란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맡겨드리는 일이다. 나의 ‘죄와 허물’ 그리고 내 인생의 ‘버거운 짐’도 모두 다 하나님의 어린양께 맡기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시며 무거운 짐을 대신 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의 은혜’가운데 사시기를 소원한다!

     





  • 글쓴날 : [26-01-27 10:16]
    • admin 기자[honamc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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