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제1부 어머니는 바보야 30회

  • 공저자 윤기
    공저자 윤 기

    전) 목포공생원 원장

    공생복지재단 회장 

    - 1942년 목포 출생

    - 중앙신학교(現 강남대학교) 사회사업학과를 졸

    - 아동복지시설「목포공생원」의 원장

    - 정신지체장애인시설「공생재활원」을 설립

    -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회장(1987年~2001年)을 역임

    - 1989년 일본 최초의 재일동포를 위한 노인복지시설「고향의 집」을 건립

    - 1978년 제22회 소파상등 수상다수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이사장

    - 저서는《김치와 우메보시》, 역서는《괴짜총리 고이즈미, 흔들리는 일본》 《고령사회 이렇게 살아보세》가 있다.



    공저자 윤문지(타우치 후미애)

    공생복지재단 이사장

     

    -1949년 일본 오사카 출생

    - 쿄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

    - 1972년, 한국 목포로 건너와 목포공생원 생활지도원 역임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 이사, 사회복지법인 윤학

    자공생재단 이사, 사회복지법인 공생복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제3회 여성휴먼다큐멘터리 대상에《양이 한 마리》로 입선

    - 1982년《나도 고아였다》로 일본 크리스천신문 제5회 아카시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




    “위험하다고 했는데도 듣지 않으니까 당신들을 위해 장대를 사용한 건데, 손윗사람에게 손찌검하다니 너무하지 않소!”

    “당신은 또 뭐야!”

    그들은 정 총무에게 달려들었다.

    “바다에서 놀려면 배가 후진할 때 물을 빨아들인다는 사실 정도는 상식으로 아셔야지요.”

    “이 자식. 어디서 설교야!”

    정 총무는 덤벼드는 청년의 팔을 한 손으로 비틀고 상대방의 머리를 박았다. 그것이 싸움의 시초가 되었다. 순식간에 원아들은 ‘와-’ 하고 네 명의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싸움에 자신 있는 그들이었지만 집단으로 달려드는 원아들의 기세에 크게 당황하여 허겁지겁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들이 줄행랑친 방향은 공생원 쪽이었다.

    공생원에서는 어느 틈에 이 사실을 알고 후원하기 위해 원아들이 바닷가로 달려오던 참이었다. 바다와 산 양편에서 포위당한 청년들은 허둥지둥 도망쳤다.

    이 큰 싸움의 와중에서 청년 하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두고 보자! 내 똑똑히 기억해 둘 테다. 고아 주제에 사람에게 주먹을 휘두르다니. 전부 처넣어버릴 거다.”

    이 말에 가뜩이나 흥분해 있던 원아들은 죽일 듯한 기세로 덤벼들었다. 어머니가 부두로 달려 나오셨으나 싸움은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으로 번져 있었다.

    어머니는 모리 씨에게 사죄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면목 없게 됐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이신 모리 씨에게 무리한 부탁을 한 것이 그만….”

    모리 씨도 사건이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되자 망연해했다.

    어느 사이엔가 원에서 달려 나온 아이들이 부두에 모였다.

    “우와, 우와.”

    아이들의 흥분한 목소리는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그들은 도로변에 주차해 놓은 검은 색 지프 차를 바다로 떨어뜨리려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원장님 좀 말려주세요.”

    쉰이 넘어 뵈는 남자가 자동차를 밀어 대고 있는 아이들을 말릴 엄두도 못 낸 채 어머니에게 사정해 왔다.

    “이 차는 검찰청 찹니다. 저는 운전사고요. 청년 넷은 거기 근무하는 서기들입니다.”

    ‘이거 큰일이구나.’

    어머니는 바다에 떨어질 듯 말 듯한 지프 차에 순간적으로 올라탔다. 이 차가 바다에 빠지는 날엔 엄청난 대가가 돌아온다. 분명히 희생자가 나올 것이다. 지프 차를 떨어뜨려선 안 된다. 어머니는 이 차를 빠뜨릴 양이면 나도 함께 떨어뜨리라고 외쳤다.

    “어머니, 내리세요. 이 차를 타고 온 녀석들이 ‘고아들 주제에’를 운운하며 우리를 업신여겼어요. 어서 내리세요.”

    아이들의 흥분은 극에 달해 있었다. 그들을 진정시키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으나 어머니와 보모들의 필사적인 설득으로 소요는 가까스로 진정되었다.

    차는 무사했지만 결국 윤 선생님과 연장아 두 명은 경찰에 체포되었다. 다행히 어머니가 가장 염려하던 모리 씨에게는 아무 탈이 없었다. 어머니는 사건 당일 밤 경찰에 출두하여 밤늦게까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윤 선생님과 원아들의 석방을 간청했다. 시(市)의 유력 인사 집을 직접 방문하여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

    두 명의 원아가 석방되어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서였다.

     

    동장 선거에 범치가 출마하다

     

    힘겨운 고난이 끊일 새 없던 1950년대가 지났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함께 맞이한 60년대는 대한민국에 새로운 전기를 갖다 주었다. 돌풍이 몰아치고 격변하는 정세에 나는 신선한 매력과 야릇한 흥분을 느꼈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시장이며 동장까지 주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했다.

    공생원이 위치한 대반동에도 어김없이 선거 열풍이 몰아쳤다.

    우리들의 호프인 범치 형이 동장에 입후보했다. 그는 공생원 초창기부터 아버지를 심기면서 자연스럽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체득한 것이다. 마을에서 석재상을 하는 그는 인덕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동장 후보로 범치 형을 추천했다.

    “윤치호를 생각해서라도 꼭 범치를 당선시켜야 한다.”

    “범치는 바로 윤치호의 분신이다.”

    “당연하지. 20년이나 함께 살아왔으니.”

    마을 어른들은 범치 형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나 선거일이 다가옴에 따라 상황은 점차 불리해져 갔다. 허풍세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한 것이다. 그는 고등 교육을 받은 40대의 인텔리였다. 대반동의 바로 옆 동네인 소반동(小盤洞)에 사는 갑부 최 씨를 등에 업고 반격을 가해 왔다.

    “아무리 이 마을에 인재가 없기로서니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도 모르는 고아를 동장으로 뽑다니 말이 되나? 이 마을의 수치다.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학교 문전에도 가본 적 없는 녀석을 어디 동장이라 부르겠나?”

    허 후보는 처음부터 범치 형에게 인신공격을 가해 왔다. 하나의 도전이기도 했다.

    그러나 범치 형은 동요하지 않고 상대가 악랄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진실하게 대응했다.

     

    (다음 31회에 계속)

  • 글쓴날 : [25-12-26 11:36]
    • admin 기자[honamc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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