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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식 목사 목포권기독교근대역사관 홍보이사 (성문교회) |
목포권기독교근대역사기념사업회(이사장 김주헌 목사) 임원단은 지난 10월 31일(금) 오전 10시, 전남 무안군 삼향읍 왕산리의 한산촌 디아코니아자매회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한국 개신교 근대사의 신앙적 유산을 탐방하고, 지역 복음화와 사회봉사의 현장을 되새기기 위한 취지로 이루어졌다.
한산촌은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여성숙(107세) 선생이 평생을 헌신한 자리다. 여성숙 선생은 1960년대부터 오갈 데 없는 폐결핵 환자들을 어머니처럼 돌보며, 그들의 생명과 존엄을 지켜온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988년 제1회 인도주의실천의사상과 오월어머니상을 수상했으며, 자신이 소유한 2만7천여 평의 땅과 병원시설을 사회복지법인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에 기증했다.
여선생은 반평생을 친구이자 동역자였던 미국 선교사 카딩턴 박사(광주기독병원 원장)와 함께 결핵 퇴치에 헌신했다. 이들의 헌신으로 인해 당시 사회로부터 외면받던 결핵 환자들은 한산촌을 ‘마지막 희망의 터전’으로 여기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카딩턴을 ‘결핵환자의 아버지’, 여성숙 선생을 ‘결핵환자의 어머니’라 불렀다.
여성숙 선생은 1961년 목포 시내에서 ‘목포의원’을 운영하던 중, 병이 심한 10대 소년이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은 채 떠도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방에서 돌본 것을 계기로 한산촌 사역을 시작했다. 당시 결핵은 공기로 전염된다는 이유로 가족들마저 외면하던 질병이었지만, 그는 두려움 없이 환자들의 곁을 지켰다.
1980년 한산촌에 간호사로 부임했던 이영숙 전 원장은 “여 선생님은 마스크도 쓰지 않고 환자들을 진료했으며,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셨다”고 회고했다. 또 1970년대 말 한산촌에 머물렀던 홍성담 화백은 “당시 산업화로 인해 청년들이 폐결핵에 걸려 들어왔고, 여 선생님은 그들을 어미닭처럼 품어주셨다”고 말했다.
디아코니아자매회는 개신교 여성 수도공동체로, 구성원들은 서로를 ‘언님’이라 부른다. 이는 ‘언니’의 높임말로, 독신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여성 봉사자들을 뜻한다.
여성숙 선생은 황해도 출신으로 소학교 중퇴 후 원산 마르다신학원과 일본여학교를 거쳐, 29세에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현 고려대 의대 전신)에 입학하여 1950년 졸업했다. 전주예수병원과 광주기독병원에서 결핵과장으로 일하며 전북 순창 ‘평심원’, 광주 무등산 ‘송등원’을 세워 무의탁 환자들을 돌보다, 1961년 한산촌을 세워 지금의 디아코니아 사역의 기초를 놓았다.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는 1980년 5월 1일 안병무 박사의 구상과 노력으로 창립되었다. 독일의 디아코니아 운동을 모델로 삼아 ‘독신 여성의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일하는 봉사공동체’, ‘함께 일하고 나누는 생활공동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사회 속에서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현재 한산촌에는 8명의 언님들이 함께 생활하며, 노년에도 여전히 지역사회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과거 이곳은 함석헌, 안병무, 김지하, 황석영 등 민주화와 신앙의 길을 걸은 지식인들이 자주 찾던 장소였고, 독재정권 시절에는 김남주, 윤한봉 등 사회운동가들이 몸을 숨긴 은신처이기도 했다.
목포권기독교근대역사기념사업회 임원단은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 개신교 신앙의 사회참여적 유산과 섬김의 정신을 재확인했다.
김주헌 이사장은 “여성숙 선생과 디아코니아자매회의 삶은 복음의 본질이 행동으로 구현된 신앙의 모범”이라며 “목포지역 교회들도 이 정신을 이어받아 노인돌봄, 주간보호센터, 방문요양, 1차의료기관 등 지역사회 돌봄 사역을 함께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방문은 단순한 역사 탐방을 넘어, 오늘의 교회가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귀한 시간이 됐다.
(정리: 권용식 목사 / 목포권기독교근대역사관 홍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