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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기 목사 범사회문제대책운동본부 사무총장 |
미국 대학 농구 역사상 최고의 코치라 불리는 ‘존 우든’의 이야기이다. 그는 1948년~1975년까지 27년간 UCLA 팀을 이끌었다. 그가 세운 620승147패 대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우든은 자신의 성공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선수들과 처음 만날 때마다 신발과 양말을 제대로 신으라고 가르칩니다. 경기를 준비할 때 가장 기초적인 일이 신발과 양말을 제대로 신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초를 튼튼히 하라.”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다.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기초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기초보다는 ‘방법’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신앙도 그렇다.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그렇다면 신앙의 기초는 무엇일까? 두말할 것 없이 ‘믿음’이다. ‘믿음’이야 말로 신앙에 가장 중요한 기초인 것이다. 그러면 믿음이 무엇일까? 믿음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믿음은 신뢰하는 것이다. 믿음은 의지하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보는 것이다. 믿음은 순종하는 것이다. 믿음은 따라가는 것이다. 믿음은 맡기는 것이다. 종합해볼 때 믿음은 ‘신뢰하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고, 맡기는 모든 것’이다. 예수님은 “믿음대로 될지어다”하셨다. 이 말씀에 비추어볼 때, 믿음은 성취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믿음대로 행하라”하셨다. 이 말씀에 비추어보면 믿음은 행하는 것이다.
롬 4장에는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은 구약을 대표하는 ‘믿음의 사람’이다. 롬 4:3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한다. 믿음의 클라이맥스는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잘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왜 종교적인 열심 자체가 무의미할까? 흰두교나 불교같은 종교는 ‘고행’(苦行)을 통해 구원에 이르고자 한다. 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들을 하며 ‘수행’을 쌓고 그렇게 할 때 해탈하며 구원받는 경지에 이른다고 믿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앉은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한 달이 넘게 참선을 한다. 어떤 사람은 한 달이 넘게 금식하며 몸을 괴롭힌다. 자기 몸에 상처를 내며 학대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하여 ‘신의 경지’에 이르며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종교적인 열심은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것이다. 왜 그럴까? 구원의 주체가 되시는 절대자 하나님께서는 ‘고행’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만족을 위해 고행하는 것뿐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의 방법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한마디로 ‘헛다리 집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방법은 따로 있다. ‘믿음’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하신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기신 근거도 그렇다.
하나님은 그의 순종하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보셨다. 롬 4:9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하였다. 아브라함의 무엇이 의로 여겨졌다고 했나?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로마서 4장은 믿음과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믿음으로 상속자가 된다!”는 것이다. 상속자도 그냥 상속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복을 상속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누구든지 믿음만 있다면 아브라함의 축복을 계승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았다. 하나님께 속한 복이 아브라함에게 상속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5가지의 복을 받았다. 1) 믿음의 복이다. 믿음의 복은 모든 축복의 원천적인 복이다. 2) 자녀의 복이다. 아브라함의 자녀를 통해 현재 이스라엘과 중동 지역의 나라들이 세워졌다. 아브라함은 자녀의 복을 크게 받았다. 3) 물질의 복이다. 아브라함은 홀홀단신으로 고향을 떠나 ‘가나안’이라는 타지로 갔다. 그러나 가나안에서 손에 꼽는 거부가 되었다. 아브라함은 물질의 복을 크게 받았다. 4) 명성의 복이다. 아브라함의 명성이 가나안은 물론 국경을 넘어 타국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명성의 복을 받았다. 5) 건강의 복이다.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무병장수하며 살았다. 아브라함은 건강의 복을 받았다. 이 5가지를 종합해볼 때 아브라함은 영과 육이 잘 되고 강건하며 형통한 복을 받았다. 하나님의 상속자가 받아 누리는 복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의 축복이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도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믿음은 하나의 ‘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과 성도를 연결하는 줄이 믿음인 것이다. 그래서 그 믿음의 줄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이 전달되고 ‘말씀’이 전달되고 ‘축복’이 전달된다.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유산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거미줄’의 고강도 단백질 성분을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거미줄의 단백질은 강철보다 강하다고 한다. 구조가 누에고치가 만드는 실크와 비슷해 ‘거미 실크 단백질’로 불린다. 카이스트 ‘이상엽’ 교수팀이 밝힌 사실이 있다. “거미줄은 방탄복에 사용되는 고강력 합성섬유인 케블라에 견줄 정도의 강도를 갖고 있다.”는 거다. 이 발명이 국내 연구진을 통해 이루어졌다. 거미는 거미줄에 의해 살아가는 곤충이다. 거미에게 거미줄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거미줄은 아주 가늘어서 사람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자신을 보호하고 살려주는 ‘생명줄’이다. 그런데 ‘믿음의 줄’이 그렇다.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다. 하지만 이 위험한 세상을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생명줄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산다. 위험한 일을 당할 때, 믿음을 붙잡아야 한다. 믿음의 줄을 타고 갈 때 가장 안전한 곳으로 가게 된다. 바로 ‘하나님’께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보화’를 받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그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었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이다. 바랄 수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귀에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믿는 것이 믿음이다. 18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보시면 아브라함이 어떤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했나?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 도저히 불가능한 가운데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것이다. 아들 ‘이삭의 출생’이 그렇다. 이삭이 태어날 때, 아버지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였고, 어머니 사라의 나이는 90세였다. 이때는 요즘보다 수명이 좀 더 길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남자 나이 100세, 여자 나이 90세는 자녀 출산이 불가능한 나이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소리를 들을 때이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아들’이 태어났다. 기적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하여 가능했다고 말씀하나?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히 11:1)라고 했다. 우리의 바라는 것들이 ‘믿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합리적으로 바랄 수 있는 중에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이 믿음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이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믿음의 끈을 굳게 붙잡았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축복, 상속자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독자 여러분도 믿음의 끈을 굳게 붙잡고 ‘아브라함의 축복, 상속자의 축복’을 누리며 사시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