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딩턴 선교사 자녀와 후손들 20여명이 지난 22일 목포에 방문했다. 양동제일교회 수요예배를 시작으로 카딩턴 선교사의 의료 선교 현장과 역사를 체험했다. 본지는 CBS와 카딩턴 선교사의 장남인 허버트 카딩턴 목사와 차남인 루이스 카딩턴 선교사의 인터뷰를 재구성했다. - 편집자주 -
Q1. 75년 만에 목포를 다시 찾으셨는데, 목포 도착 소감은?
"목포에 도착하는 것은 성지에 서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곳이 75년 전 저의 부친, 모친께서 처음으로 한국에 부임하신 곳이기 때문에 목포는 굉장히 성지와 같은 느낌입니다. 목포에 대해서는 평생 듣기만 했어도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어제 목포 땅을 밟았을 때 굉장히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Q2.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카딩턴 선교사님 부부가 목포에 처음 오셨고 한국전쟁 이후에 광주로 이주하셨거든요. 그래서 광주 기독병원에서 이번에 카딩턴 라파 기념 병동을 오픈하게 되었고, 그 병원에서 기념식을 하는데 가족들을 초청하게 되어서 오게 되었습니다."
Q3. 한국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나 애착은?
"저는 항상 계란과 같이 나를 생각하는데, 이 계란이 겉은 하얗고 속은 노란색이듯이 전라도 광주가 저의 고향이고 저는 거기서 태어났고 거기서 자랐어요. 그래서 겉은 하얀색이지만 속은 노란색이듯이 저는 전라도 사람, 한국 사람이거든요."
Q4. 두 분 다 한국 이름이 있으시다고 들었는데요?
"(허버트 카딩턴 목사) 한국 이름은 고허비이고, 루이스 카딩턴 선교사의 한국 이름은 고루이스입니다."
Q5. 미국에서도 자주 만나는가?
"저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살고 루이스는 테네시주에 살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자주 만날 기회가 없어요. 주가 다르기 때문에 워낙 큰 나라라서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계기를 통해서 동생을 만나고 또 가족들이 함께 하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굉장히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6. 양동제일교회에서 설교를 했는데 감회가 어땠나?
"굉장히 축복된 순간이었다고 생각하고, 설교하는 내내 어머니가 내 어깨에 계신 것처럼, 등 뒤에서 계신 것처럼 아주 생생한 느낌을 받으면서 설교했습니다."
Q7. 설교의 주요 메시지는 무엇인가?
"올해가 508주년 종교개혁 기념해이고 이번 주가 종교개혁 기념 주간이라서 종교개혁적인 기본 원칙들에 대해서 나누었고, 특별히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에서 기도하는 교회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한국적인 기도에 대해서 아주 심도 깊게 나누었고, 한국적인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핵심 포인트를 7가지로 나누어서 설교했습니다."
Q8. 어린 시절과 비교해서 지금의 한국을 본 감정은?
"저(루이스 카딩턴)는 1974년에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불교 사찰이 굉장히 많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었거든요. 요즘 느끼는 생각이 불교 사찰보다 교회가 훨씬 더 많아졌고, 경제적인 성장도 괄목할 만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어서 굉장히 놀라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광주에서 자랄 때 친구들과 흙길로 된 거리로 나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먹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졌죠. 한국의 발전은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Q9.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신앙적 유산이 있다면 무엇인가?
"저도 부모님으로부터 기독교 신앙 교육을 받았고,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행함과 진실함으로 그저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삶과 우리의 현장에서 실천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다음 세대도 부모님들처럼 자기 평생을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헌신하는 그런 세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루이스 카딩턴)는 사사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라고 하는 굉장히 슬픈 구절이 있잖아요. 그것은 현 세대가 또는 부모 세대가 그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제대로 전수하지 못해서 빚어진 비극적인 일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도 다음 세대에게 꼭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수했으면 좋겠습니다."
Q10.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하신 세대로서, 북방선교와 통일에 대한 메시지가 있다면?
"전쟁은 정말 비극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이고, 그 전쟁의 영향은 전 사회 곳곳에 엄청난 비극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제가 전쟁이 끝나고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볼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한국은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를 통해 놀라운 방식으로 재건되었습니다."
"저(루이스 카딩턴)는 북방선교를 위해서 특별히 중국에서 수년 동안 사역했고, 그 이후에는 북한 탈북자들을 위한 사역을 계속 해오고 있거든요.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와서 적응하기가 참 쉽지 않은데, 기독교적인 사랑과 포용심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한국 땅에 온 이런 사람들을 좀 더 포용적으로 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Q11. 마지막으로 극동방송 청취자들에게 한 말씀 한다면?.
"정말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렇게 한국분들, 특별히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우리 부모로부터 우리까지 이렇게 뜨거운 마음으로 환영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극동방송 청취자 여러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루이스 카딩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정말 놀라는 것이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주님의 마음으로 이렇게 열렬히 뜨거운 마음으로 진심으로 환영해 주셔서 감사하고, 극동방송이 지금까지 해온 대로 북방 공산권, 특별히 우리 북한의 형제들을 위한 사역을 계속 이어가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