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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Ph.D.), 버클리 연구교수, 남장로교 연구소와
아르메니아 조지아 연구소, '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 핸드북', '목포 기독교 근대 역사관의 배경',
'최초의 서양 의사 드류 유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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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목포사절단이 미국 남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스파르탄버그(Spartanburg) 제일장로교회에서 공식 초청 주일 예배를 현장에서 드린다. 대표단은 역사적인 메시지도 나누고, 감사와 우호를 표하는 기념물을 전달한다. 목포와 이 교회는 122년에 걸친 역사적 유대를 맺어 오고 있다. 스파르탄버그 제일장로교회는 1. 1903년에 존 페어맨 프레스톤(John Fairman Preston, 변요한) 선교사를 목포로 파송하였다. 2. 변요한 선교사의 적극적인 호소로 이 교회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1908년에 목포남학교(영홍학교)의 건물을 지어주었고, 지속적으로 후원하였다.
First Presbyterian Church of Spartanburg, South Carolina
미국 동부 현지시간 9월 7일 주일 오전 11시 3부 예배, 한국시간 9월 8일 월요일 자정 12시(한국이 13시간 빠름)
유튜브(Youtube)에서 영어로 교회이름을 검색하거나, 위의 링크를 클릭하면 생방송 예배에 동참할 수 있다.
필자가 이미 작고하신 미 남장로교 파송 전라도 선교사 제위의 유지를 받든 이후, 미 남장로교 선교역사 및 전라도 교회사와 연관된 각종 저술과 연구의 글들에서 해당 인물의 미국 배경이 모호하거나 빈약하여 아쉬움이 컸다. 심지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알려지고, 상상력에 의존하여 추측성 글을 무슨 소설처럼 쓰기도 한다. 더군다나 글을 쓰면서 출처나 근거를 밝히지 않음으로 전라도 교회사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라도 교회사는 사실(fact)에 근거하여,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과, 한국인들을 섬기기 위해서 이 좋은땅에 왔던 선교사 제위의 생각, 철학, 신념에 충실해야 한다. 필자가 개척한 ‘전라도사관’의 핵심이기도 하다.
최근에 스파르탄버그 제일장로교회의 교회자료 담당자로부터 희귀한 자료를 확보하였다. 지금까지 그 어떤 글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던 사실들이 담겨져 있어서 소개한다.
1. 이 문서는 제일장로교회와 목포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소상하게 말해 준다. 목사 안수를 받고 이 교회에 배속된 존 페어맨 프레스톤 목사가 당시 ‘전진운동’(Forward Movement)을 통해서 체계적인 선교를 구축하고 활성화 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당시 담임목사로 있던 존 심스 왓킨스(John Sims Watkins) 목사가 감명을 받았고, 온 성도들이 합심하여 한국선교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 중심에 이 교회에서 파송을 받은 프레스톤 목사가 있었다. 목포에 온 변요한 선교사는 폐쇄 위기에 직면해 있던 목포 선교 스테이션을 존속시키고 발전시키는데 있어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스파르탄버그 제일장로교회와 존 페어맨 프레스톤 선교사 부부가 아니었다면, 목포 선교 스테이션은 존속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2. 변요한(존 페어맨 프레스톤) 선교사가 목포남학교의 학교 건물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고, 라베넬(Mrs. H.E. Ravenel) 부인이 $2,000불을 기부하였다. 당시 스파르탄버그 제일장로교회는 화재로 교회당이 소실되어 건축을 하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교회와 라베넬 부인은 목포남학교를 위해서 기도하며 헌신하였던 것이다.
3. 대개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학교나 기관의 명칭을 사용하지만, 목포남학교는 ‘존 왓킨스 아카데미’로 명명되었다. 이는 본 교회의 존 심슨(Mrs. John Simpson) 부인이 존경하는 담임목사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고 제안하였고, 기부자나 교회가 이 제안이 합리적이라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존 심스 왓킨스 목사는 담임목사로 25년간 섬겼고, 교회역사상 최초로 원로목사가 되어 14년 동안 그 직을 유지하였다. 왓킨스 목사는 프레스톤 선교사를 ‘해외에 있는 우리 목사’라고 부르며 애정을 가지고 후원하였다.
4. 스파르탄 제일장로교회는 목포남학교, 즉 존 왓킨스 아카데미를 위해서 향후 장학금과 운영비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였다.
필자가 이 문서를 통해 그 교회 성도들의 기도, 헌신, 후원을 접하면서, 감동이 몰려왔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렇게 숨겨지고 세상에 드러나지 않아서 잊혀졌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오늘의 교훈과 미래를 향한 좌표로 삼아야 하겠다. 역사는 역사를 낳고, 생명은 생명을 낳은다. 기억하면 살고, 망각하면 죽는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이 역사적인 예배에 동참해 주기를 바라고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