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초라한 행색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옷은 누더기 모양 너덜너덜하여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얼굴, 손, 발, 해진 옷 사이로 보이는 속살 할 것 없이 시커먼 때가 마치 정성껏 페인트칠이라도 해 놓은 것 같았다. 나는 내심 공포감마저 느꼈다.
범치 형은 새로 들어온 고아들을 재빨리 운동장 가운데 집합시켜 구령을 불렀다.
“자, 말들 잘 들어라! 이제부터 옷을 벗는 거다. 다음은 옷을 양손으로 들어 터는 거다. 알겠나? 바로 이를 터는 작업이다. 자아, 시이작!”
펄럭펄럭….
흰 이가 검은 땅 위에 떨어졌다. 털어도 털어도 이는 한도 없이 떨어졌다.
범치 형은 근엄한 얼굴로 다시 한번 명령했다.
“좋아. 이제부터 옷 솔기에 숨어 있는 이를 30마리씩 잡아 제출할 것!”
진풍경이 벌어졌다. 추운 날이었다. 목포도 한겨울에는 영하 5도까지 내려간다. 게다가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해풍은 살을 에는 듯이 매섭다. 이 한겨울에 실시된 이 잡기 대회 덕분에 벌거숭이가 된 아이들은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러나 옷가지가 없는 공생원인지라 입고 온 옷을 그대로 주워입는 도리밖에 없었다.
범치 형은 그 후 아이들을 해변으로 데려가 몸을 씻도록 했다.
운동장에 돌아온 아이들은 강당 앞에서 한 사람씩 DDT 세례를 받고서야 겨우 앞으로 기거하게 될 강당으로 입장이 허락되었다.
그들은 비정한 어른 세계의 희생물로서 버림받은 채 떠돌다 공생원까지 온 것이었다. 생활 습관도, 풍습도, 환경도 전혀 다른 아이들. 그 아이들은 이 전쟁의 격랑으로 하루아침에 고아로 전락한 것이다. 그들은 저마다 강한 개성을 갖고 있어 통솔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들이 오고 나서 공생원에서는 매일같이 결투가 벌어졌다. 결투는 약육강식 세계에서 생존해 온 그들의 본능이자 지혜기도 했다. 조그마한 공생원이란 세계 속에서도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힘의 대결은 연일 벌어졌다.
나는 형들의 결투를 구경하기 위해 가슴을 두근거리며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결투 장소는 야산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해안이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겉보기에 제법 힘이 있어 뵈는 키 크고 건장한 형이 이기리라 예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결투에는 민첩함과 배짱, 그리고 빠른 두뇌 회전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결투는 분명 야만적이었으나 당시는 현재와 같이 생활 지도원이 없던 터라 결투의 승자가 연장자고, 힘센 자가 자연히 선생이 되었다. 승자가 결정되면 통솔은 간단했다. 일종의 질서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문제도 발생했다. 강자가 권력을 누리고 약자가 늘 불리한 입장을 맡는 것이었다. 개중에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방까지 식사를 나르게 함으로써 힘을 과시하는 자도 나타났다. 만일 식사 운반을 잊기라도 할라치면 야단법석이 났다. 한 사람당 한 그릇으로 정해져 있는 식사를 우겨서 두 그릇씩 먹는 녀석도 생겨났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자기 몫이 없는 녀석이 나오기 마련이다. 끼니를 찾아 먹는 일은 우리에게 있어서 중대사 중 하나였다.
그런 우리에게 식사 전의 기도 시간은 고역과도 같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고 시작되는 기도가 견딜 수 없이 원망스러웠다. 배가 고픈 나머지 기도 중에 반찬을 집어 먹는가 하면, 자기 것보다 수북한 밥공기로 잽싸게 바꿔치기하려는 녀석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밥공기를 눈 깜짝할 사이에 셔츠 밑에 감추고 능청을 떠는 녀석도 있었다. 내게는 기도가 도리어 문제를 유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원에서는 매사가 군대식으로 통솔되었다. 여차하면 비상종이 울렸다. 문자 그대로 긴급 사태에 대비한 종이었으나 연장자들은 일 분이라도 빨리 아이들을 집합시키기 위해 비상종을 울렸다. 비상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앞을 다퉈 운동장에 모였다. 고무신을 한 짝만 끌고 나온 아이가 있는가 하면 흘러내리는 바지를 혁대 대신 노끈으로 졸라매면서 뛰어나 오는 아이도 있었다. 모두가 필사적이었다. 늦으면 벌을 받기 때문이다. 변소 청소 아니면 산에 올라가 땔감을 주워와야 했다. 식사 당번은 서로 다뤄 맡으려 들었다. 몰래 집어 먹을 수가 있어서 대단한 매력이 아닐 수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