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 단신] 어머니의 그 사랑, 여전히 그 자리에 피어납니다
  • 박정완 총괄 본부장


    금년에도 어김없이 어버이 주일을 맞이했다. 나의 부모님이 우리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나는 고아가 됐다. 일상을 살아가며 문득문득 ‘사랑의 보살핌’이라는 말이 마음을 짓누를 때가 많습니다. 그 무게는 종종 행복보다 더 크게 다가오곤 합니다.

     

    거실 창가 한켠, 선물 받아 키우던 열 그루의 난초들이 오랜 시간 푸르름의 생명력을 선사하며 함께했습니다. 계절이 바뀌어도 묵묵히 푸른 잎을 내밀며 조용히 자리를 지키던 그 식물은, 마치 생전의 부모님 같았습니다. 늘 그 자리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조건 없이 품어주던 그 사랑처럼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난초의 잎이 희어지기 시작하더니 생기를 잃고 말았습니다. 제대로 돌보지 못한 저의 무심함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더는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화분에서 꺼내어 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난초를 들고 아파트 화단을 지나던 중, 문득 흙에 심으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햇살이 잘 들고 바람이 스치는 자리를 골라 맨손으로 흙을 파고 정성껏 난초를 심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흙을 덮으며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다시 피어나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날 이후, 그곳을 지날 때마다 살펴보았습니다. 십수 일이 흐른 어느 날, 기적처럼 잎끝에 푸른 기운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시든 줄만 알았던 잎들이 되살아났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제 안에 묻혀 있던 기억과 사랑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어머니가 정성으로 자식을 위해 쏟아내셨던 사랑, 아버지의 한없는 보살핌, 말없이 자식을 바라보시던 눈빛이 떠올랐습니다. 바쁜 삶 속에서 다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의 무게가 가슴에 되살아났습니다.

     

    그 난초는 매일 아침 저에게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생명의 회복은 난초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 안의 무기력과 외로움도 함께 치유되고 있었습니다. 다시 품에 안을 날을 기대하며, 언젠가 화분으로 옮겨오리라 마음먹고 있던 어느 날, 그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잃은 듯 허전함이 컸습니다. 그러나 곧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난초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더 세심하게 돌볼 수 있는 이가 데려갔을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또, 그 난초를 통해 다른 누군가가 위로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도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생명은 이렇게 이어지고, 사랑은 그렇게 전해지는 것이니까요.

     

    부모님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비록 지금은 곁에 계시지 않지만, 그 사랑은 여전히 제 삶의 자리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말씀 한마디, 손길 하나, 다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까지도 여전히 제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가정의 달 5월, 어버이 주일을 맞으며 고백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자리에서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오늘도 내 삶의 깊은 뿌리가 되어 나를 세워주고 있습니다.

  • 글쓴날 : [25-05-15 15:14]
    • 박정완(총괄본부장) 기자[pjo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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