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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기 목사 상리교회 범사회문제대책운동본부 사무총장 |
안산제일교회 ‘고훈’ 원로 목사님의 설교 중에 어느 김 집사님의 간증이 나온다. 그분은 딸 셋을 남기고 천국에 간 남편으로 인해 31살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살아야겠다는 믿음과 의지로 농사일이며, 갯벌 일이며, 노점이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한다. 자녀들이 다 잘 되었다. 큰딸은 음악을 전공해 음악학원을 경영하고, 둘째 딸은 초등학교 교사에 임용돼 아이들을 가르치고, 막내는 음악을 전공해 교회 반주자로 봉사하고 있다. 김 집사님은 권사가 되어 교회의 어머니가 되고 딸들 모두 고향교회를 돕고 있단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다. 특히 집에서 기르던 ‘진돗개의 충성’이 대단했단다. 새벽기도에 갈 때는 진돗개가 항상 앞장서 동행해주었다. 새벽기도가 끝나면 기다렸다가, 집에까지 호위해주었다. 밤이면 잠들지 않고 대를 이어 가며, 15년이란 세월을 한결같이 지켜주었단다. 또 철마다 새끼를 낳아, 아이들 학비를 보태고 교회에 헌금도 하게 했다. 교인들이 모두 진돗개를 보고 “사람보다 더 많이 헌금하는 개”라고 불렀단다. 진돗개의 충성스러움이 31살의 청상과부를 지켜주었고, 가정을 온전히 세워주었다는 이야기이다. 김 집사님의 신앙과 진돗개의 이야기를 글로 읽으며 필자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진돗개가 참 충성스럽다. 나도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 25:13 말씀은 ‘충성스러운 사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충성스러운 사자는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한다. 그것도 그냥 시원하게 하는 게 아니라 ‘얼음냉수’와 같이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요즘 우리는 아주 좋은 날씨에 살고 있다. 새벽에는 조금 쌀쌀하지만 좋은 기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름철에는 날씨가 얼마나 더운가? 어떤 때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필자는 땀이 많아서 그런지 조금만 다녀도 땀에 흠뻑 젖어 든다. 그럴 때는 마른 목을 축여줄 ‘시원한 물’이 그리워진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무더위에 목이 마를 때, 아이스크림이 떠오르시나? 아니면 사이다나 콜라가 떠오르시나? 아니면 시원한 수박이 떠오르시나? 갈증이 날 때 가장 좋은 것은 ‘냉수 한 그릇’일 것이다. 냉수도 그냥 냉수가 아니라 얼음을 동동 띄운 ‘얼음냉수’가 최고다. 얼음냉수 한 사발 쭉 들이키면 갈증이 싹~ 해소된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이 바로 이 ‘얼음냉수’와 같다고 말씀하신다. 교회에는 ‘얼음냉수’와 같은 성도이 있는가 하면 ‘뜨뜻미지근한 물’과 같은 교인이 있다. ‘얼음냉수’와 같이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성도에게는 2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변함이 없다.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것은 충성이 아니다. 충성을 헬라어로는 ‘피스토스’(Πιστός)라고 한다. 피스토스는 ‘변함이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가 다른 곳에서는 ‘신실, 또는 성실’이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다. 성경에서 ‘충성’이라는 말은 ‘변함이 없는 신실함’이란 뜻이 담겨있다. 하나님 앞에 얼음냉수와 같은 성도의 특징은 충성스럽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변함이 없는 신실함’으로 살아간다.
지난해에 성지순례를 하며 고대 로마의 유적지인 ‘폼페이’를 다녀왔다. 주후 79년에 이탈리아 폼페이 근처에서 화산이 크게 폭발했다. 이로 인해서 ‘폼페이’ 전체가 완전히 폐허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1700년대 중반부터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가봤는데 발굴된 유물들을 보면 당시 폼페이가 얼마나 화려하고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당시에 이미 공중화장실과 공중목욕탕이 있었다. 목욕탕의 수준이 현대 시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포장된 도로와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최고 수준의 문화예술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공연했던 화려한 극장도 있었다. ‘베이커리와 카페, 병원’도 있었다. 2,000년 전이라고는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발달 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폼페이의 유물 가운데 발굴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 하나 발굴되었다. 그것은 폼페이 성문을 지키던 ‘보초병’이었다. 지금은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의 모습을 보면, 성문 앞에서 무기를 손에 들고 부동자세를 한 채로 서 있다. 눈을 부릅뜨고 용암을 뒤집어썼는데 그 모습 그대로 화석이 되어 있다. 영국 런던에 있는 미술관에 가면 이 군인을 모델로 해서 그려놓은 그림이 있다. 작가는 그 그림 아래에 ‘충성’이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 이 병사가 보여주는 ‘충성’이 무엇인가? 그것은 ‘변함이 없는 신실함’이다. 이때는 화산이 폭발하여 모든 사람들이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목숨을 위하여, 피하거나 달아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적군이 쳐들어올 것도 아닌데 꼼짝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았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변함없이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그를 ‘충성의 표본’으로 삼았던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 바로 이렇게 ‘변함없이 충성하는 사람’이다. 충성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어떻든지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또 남들이 나를 알아주든지 몰라 주든지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묵묵히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킨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낸다. 그런 사람을 성경은 ‘충성된 사람’이라고 한다.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가 바로 주님께서 찾으시는 얼음냉수와 같은 성도인 것이다.
엡 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여기에서 ‘변함없이’라는 말씀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와 축복은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는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며 교회를 섬기는 분들이 많이 잇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무리 춥고 또 아무리 더워도 새벽이면 예배가 시작되기 한참 전에 교회에 일찍 오시는 분들이 있다.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분들이 있다.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려워도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변함없이 기쁨으로 봉사하며 교회를 섬기는 분들이 있다. 노방전도 현장에서 식당에서 낙도선교 현장에서 에덴원과 동명요양원에서 충성을 다한다. 목자로 목원으로 교사로 성가대원으로 레비빔찬양단으로 변함없이 사역을 감당한다. 주차장에서 교회당에서 안내위원으로 재정부에서 각 위원회에서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충성을 다하고 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중에 충성을 다하기에 귀하고 값진 것이다. 남들이 알아주면 그것으로 이미 상급을 다 받은 것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기에 하나님께서 충성스럽다고 인정하신다. 충성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쉽게 변하는 사람은 충성된 사람이 아니다. 호남기독신문 독자들은 변함없는 신실함으로 일평생 주님을 따르시기 바란다! 그럴 때 우리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시원케 되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변함없는 은혜와 축복을 넘치도록 부어 주실 것이다. 변함없는 충성을 통하여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얼음냉수’와 같이 살아가시기를 소원한다!
얼음냉수와 같이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성도는 누구보다 ‘예수님’께 충성을 다한다. 우리가 충성을 다한다고 할 때 ‘누구를 위해 충성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충성을 대해야 하는 대상은 ‘오직 예수님’이시다. 예수님 사랑과 세상 사랑은 반비례한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세상을 사랑하는 하는 마음이 줄어든다. 반대로 세상을 사랑하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줄어든다. 예수님께 생명이 있다. 예수님께 구원이 있고 풍성한 축복이 있다. 예수님께 치료하는 능력이 있고 어둠의 세력을 이기는 권세가 있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 충성을 다하는 독자들이 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