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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완 총괄 본부장 |
지난달 군 동기생 모임 참석을 위해 이른 아침 기차에 몸을 실었다. 가족석인지 모르고 예약했는데 가족석이다. 텅 빈 객차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다 송정역에 도착했다. 몇 명의 승객이 올랐다. 안쪽에 앉아 있던 나에게 비어있는 창가쪽에 자리하게 될 한 중년 신사가 살짝 고개를 숙여 자신의 자리로 들어가겠다는 신호에 일어서 자리를 내줬다. 수분이 흐린뒤 앞 좌석에 자리한 숙녀가 손수 사탕 봉지를 꺼냈다. 그녀는 먼저 노신사에게 사탕을 건네니 노신사가 “과자를 주시나요?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우드득 소리와 함께 먹는다.
그 순간 나는 서운함을 느꼈다. ‘사탕 한 알에 왜 그렇게 옹색할까? 같이 나누어도 될 것을.. ’ 서운한 마음에 스마트폰 화면만 이리저리 넘긴다.
그 숙녀는 주변 다른이에게도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바로 앞인 나에게는 주지 않는 모습에 더욱 속상하다. 다른이에게는 줄 수 있지만 나에게는 건넬 수 없을 만큼 내게 혐오적인 요소가 있는지 마음이 매우 복잡해졌다.
민망함에 헛기침을 하며 가고 싶지도 않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는데 문제의 해답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뿔사. 기히 내 앞에도 사탕 한톨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 봉지를 보고서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는 기분을 느낀다. 괜한 오해로 사람을 섣불리 판단했던 무지 몽매한 어리석음, 사탕 하나도 받지 못할 만큼 바보같은 녀석으로 매도한 나의 편협함을 느끼는 순간, 나의 속 좁음을 인정하는 때, 봉지 속 달콤한 인삼 맛 사탕은 바보같은 생각을 하던 나를 비웃으며 살살 입속에서 녹는다.
여느때 그 어떤 과자보다 훨씬 더 맛이 좋다. 머리속에 맺힌 서운한 감정은 어느새 녹아내리고,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이 편견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경쟁과 불신이 팽배한 사회에서 우리는 타인의 호의를 ‘거짓된 의도’로 오해하거나, 배려조차 대가를 바라며 계산한다. 그러나 이 작은 경험은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의심으로 마음의 문을 닫을 것인가, 신뢰로 서로의 온정을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상생을 위한 서로의 진일보한 마음가짐을 잃지 말자. △비전과 희망을 선사하는 모든 이의 친구가 되자. △열린 마음의 소유자로 편견을 내려놓자. △감사함의 마음을 항상 실천하며 생활하는 사람이 되자.
낯선 이의 사탕 한 알, 편견 없이 여러사람에게 나눔을 실천했는데도 발견하지 못하고 심히 분개하는 생각, 이젠 마음 문 열고 연합하며 건전 사회를 건설하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될 때
건전사회 이뤄지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부디 오늘부터 어떠한 상황이 펼쳐 진데도 의심 대신 신뢰를 건네는 연습을 시작하자. 작은 과자 봉지 하나가 나에게 가르쳐준 부드러운 외침이요, 삶의 좌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