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칼럼] 추수감사 주일의 유래와 의의

  • 김상열 장로 목포남부교회 원로
    김상열 장로
    목포남부교회 원로


    11월 셋째 주일은 개신교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날입니다. 그런가하면 오늘날 우리들이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역사적 유래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1534년 영국에서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으나 엘리자벳 1세 때 성공회가 국교로 정해지자 청교도들이 영국교회의 권위주의와 불신앙적인 정책과 형식적인 예배 행위에 반대하여 영국교회에 반기를 들어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이들은 1606년에 네덜란드로 망명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되자, 1620년 9월16일 102명의 청교도들이 180톤급의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미. 대륙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에 49명이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항해하는 배 안에서 당했습니다.



    그리고 1620년 12월 21일 미국 ‘플리머드’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설상가상으로 본토 인디언들의 위협이 늘 따라 다녔습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이들은 절망치 않고 제일 먼저 교회당을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인디언들의 추장과 화친조약을 맺고 이들의 호의로 옥수수, 감자, 호박, 채소 등의 씨앗을 얻어 씨를 뿌려 땀을 흘려 가꾸었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그해 가을 농작물을 거둬들여 지난날의 어려움 속에서 지키시고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에 감격하여 추수한 곡식으로 음식을 장만하고 칠면조를 잡아서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고 잔치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추수감사절의 정신은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지켜오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불문하고 각기 약간의 성질과 이름의 차이는 있지만 그해의 풍작을 감사하여 추수직후에 감사 절기를 지켜왔습니다.



    우리 민족도 일찍이 부여에서 부족들의 제천행사로 추수를 끝낸 후 섣달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감사하는 가무와 영고(迎鼓)가 있었고, 고구려 시대에서도 매년 10월에 백성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밤낮으로. 노래와 춤을 즐기는 동맹이라는 추수감사제가 있었으며, 마한에서도 농사를 마치고 10월에 높은 산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즐기는 무천이라는 추수감사의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추수에 대한 감사는 무속신앙과 풍습에 따라 제사와 축제로 드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조상들은 지난날에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여 그릇된 감사절의 절기를 지켰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게 된 지금 참된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어떻게 감사절을 지켜야 할까요? 그것은 지난날에 우리가 멸망 받을 사람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이 되었기에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며 영적인 추수에 감격하는 마음으로 감사절을 지켜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일꾼의 사명을 맡기시고 이 일을 잘 감당하도록 우리들의 가정과 자녀와 산업인 일상적인 생활과 믿음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심과 복 주신 은혜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추수감사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들은 먼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을 인하여 최선을 다하여 최상의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감사함으로 참여합시다. 인색한 감사가 아니라 풍성한 감사를 합시다. 기쁨을 함께 나누는 감사절이 됩시다. 감사치 않으면 감사의 조건들이 메마르게 됩니다. 그러나 감사하면 감사는 풍성한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하는 삶은 하나님의 뜻이요,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근본적인 마음입니다. 감사는 고난 중에도 드리는 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추수감사 주일은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 사람인가를 한번 점검해 본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뜻이 있는 절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지수가 얼마나 높은 사람인가 하는 것을 한번 살펴보는 것입니다. 감사지수는 높을수록 좋습니다. 감사지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이 말씀을 읽으면 제일 먼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범사에"라는 말과 "항상"이라는 말입니다. 감사하라고 하는 말에 "범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으면 우리는 왠지 모르게 부 담을 느낍니다. 감사하라는 말 앞에 "항상"이라는 수식어가 있으면 기가 죽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범사"라는 말은 어떤 형편에 있든 지, 어떤 일을 당하든지 무조건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항상"이라는 말은 시종일관, 어떤 상황을 만나도 변함없이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강도 높은 의미를 가진 말씀을 읽으면서 가책 받지 아니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 그 가운데는 장로인 저 자신이 가장 많은 가책을 받을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를 못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감사 하려고 무척 노력을 하고 또 감사도 많이 하지만 이 본문 말씀이 요구하는 선에는 아직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저 자신이 숨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담을 느낍니다. 미국은 청교도 정신, 기독교 정신으로, 신앙으로 세운나라이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감사하는 삶은 하나님의 뜻이요,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근본적인 마음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며. 불평하는 사람은 마귀에 마음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과 기독교인의 다른 점은 기독교인은 기뻐하지 못 할일에도 기뻐하고. 감사하지 못할 일에도 감사 하는 것이 다릅니다. 죽으면 이 세상 끝이 아니라 천국에서 영생의 삶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찬송하며 갈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계신 그 성전 문을 통과하게 됩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전에 들어가서 그 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 지어다.” 감사는 하나님께 대한 진심의 찬양을 올리게 합니다. 감사한 마음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이 우러러 나옵니다.  감사는 기도의 응답을 받게 합니다.“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는 큰 일, 작은 일, 힘든 일, 큰 문제, 어려운 일에 대하여 기도할 때에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를 많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는 감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감사지수가 높으면 ‘행복지수가 높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우리 몸의 건강에 유익합니다.“감사하면 건강해 집니다. 존 헤리라는 분은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감사 없는 행복 없습니다. 항상 감사로, 항상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 한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래서 감사는 기적을 낳게 합니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말씀이 우리를통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도전하시기 바랍니다.“내 영혼아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 글쓴날 : [23-11-10 17:21]
    • admin 기자[honamc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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