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龍)이 상상의 동물에 불과하였다면, 용은 십이지 동물의 하나가 되었는데, 상상의 동물인 봉황(鳳凰)이 십이지 동물에 끼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용(공룡)은 사람들이 실제로 보았지만, 봉황은 사람들이 본 적이 없는 순전한 가상(假想)의 동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십이지 동물을 통해서도 용(공룡)이 사람들과 같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신화와 전설에 담긴 역사
고대 그리스 신화에 트로이전쟁 이야기가 있다. 학원출판공사가 1993년에 출판한 <학원 세계대백과사전>에서 ‘트로이전쟁’을 인용하여 보자.
“트로이전쟁.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리스 트로이간의 전쟁, 전쟁의 원인은 영웅 아킬레우스의 부모인 펠레우스와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싸움의 여신 에리스를 초대하지 않은데서 비롯되었다. 에리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라는 글귀를 새긴 황금사과를 연회석상에 몰래 떨어뜨려 여신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켰다. 특히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 사랑과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크게 다투었는데 결국 인간인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겼다. 파리스는 그리스 제일의 미녀를 주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주고, 이 여신의 가호 아래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형인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을 총수로 추대하고 그리스의 여러 나라와 연합하여 트로이 원정길에 나섰다. 그러나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트로이는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전쟁이 10년째 접어들었을 때 아가멤논과 영웅 아킬레우스 사이에 불화가 생겨 그리스 군은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를 적의 손에 잃은 아킬레우스는 복수심에 불타 적장 헥토르를 처치하고 이어 자신도 전사하고 말았다. 이로써 트로이의 승리가 거의 확실해졌을 때, 마지막으로 이타케의 왕 오디세우스가 제안한 ‘목마의 전략’이 성공함으로써 그리스군은 역전승을 거두었다. 전쟁이 끝난 후 트로이의 패장 아이에네스는 시칠리야를 경유하여 무사히 이탈리아로 건너가 로마 건국의 전설을 남겼으나 아가멤논은 미케네에 도착한 그 날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에 의해 피살되었다. 이 전쟁을 소재로 한 영웅 서사시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데세이아’가 남아 있다.”
순수한 신화로 알고 있던 트로이전쟁이, 1871년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의 발굴로 트로이전쟁이 실제 있었던 전쟁임이 밝혀졌다. 그러니까 그리스 신화 트로이전쟁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한영우가 쓰고, 경세원에서 2004년에 출판한 <다시 찾는 우리 역사> 72쪽을 인용하여 보자.
“도깨비. 전설에 의하면, 중국인들은 지금의 진(秦), 한(漢)에 의해 중국이 통일되기 이전에는 동이족과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중국의 전설적 시조인 황제(黃帝; 軒轅氏)는 지금의 하북성 탁록야(啄鹿野)에서 동이족 장수인 치우씨(蚩尤氏)와 치열한 전투를 벌여 어렵게 승리를 거두었는데, 치우씨는 비와 구름을 부르는 신통력을 가졌으며, 죽은 뒤에는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다 한다. 후세인들은 그를 전쟁의 신으로 추앙하였으며 특히 한국인들은 그의 얼굴을 기와나 대문 문고리에 조각해 놓으면 악귀가 물러간다고 믿었다. 치우씨를 일명 <독아비>(纛아비; 군대의 깃발)로 불렀는데, 이것이 뒤에 <도깨비>로 불리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