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칼럼]기독교 문화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 Ⅱ - 김상열 장로



  • 김상열 장로
    (목포남부교회 원로)



    기독교가 한국 근대사에 미친 영향은 큽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 근대사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하여 우리 기독교인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은 큰 관심을 가지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복음이 들어와서 허물어져버린 한국(조선)사람들을 세우고 무너진 문화를 일으키며 민족정신을 심어주어 오늘날 이만큼 나라가 섰는데도 지금 우리 2세 기독교인들까지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고, 비 기독교인들은 아예 역사 속에서 취급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이 사실을 우리 대한민국, 우리 사회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합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한국교회는 하늘을 향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 울며불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기독교의 한반도 유입은 단순한 종교의 유입이 아니라 서양 문화 그 자체가 한반도 한국 사회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들어왔을 때 한국 사회는 천 수백 년 전에 불교가 들어왔을 때와 비슷한 일을 겪게 됩니다. 불교가 수입될 때도 단순히 종교 하나가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인도로부터 중국까지 펼쳐져 있는 전 대륙의 문화가 유입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유입만큼 커다란 생활양식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의 유입은 한반도 사람들의 전반적인 의식주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인 정체성을 확립한 시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일상생활의 모습을 크게 바꾼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 문화가 들어오면서 의복과 사는 집 그리고 먹는 음식도 크게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수천 년 변화의 크기를 뛰어넘는 실로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한국의 서구화는 기독교의 유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생활문화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가 한국에 선교할 때 가장 큰 역점을 두었던 ‘교육’과 ‘의료’의 성과는 실로 괄목할 만합니다. 지금의 연세대학교, 이화여자 대학교, 서강대학교가 모두 기독교 계통의 사립학교들입니다. 한국 최초의 양 병원인 광혜원은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의 전신입니다.


    또한 한국 교육의 마스터플랜(Master plan)도 미국을 모델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을 시행한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유학한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자국 문화보다 미국 문화에 익숙해지는 친미적인 교육을 어릴 적부터 받아왔습니다. 자신들의 전통에 대해서는 타자의 것처럼 느끼게 되고 오히려 미국적인 요소들에서는 커다란 친밀감을 느꼈습니다. 미국적인 요소는 이렇게 한국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일상생활 전 분야에 걸쳐 점점 파고들어갔습니다. 교육 자체가 미국식으로 짜여 있으니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미국적인 생각과 가치관을 주입받게 되고 모든 것들을 미국적인 시각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미국적인 것이 한국적인 것에 비해 우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국에 안착한 개신교는 1970년대에 400% 이상의 폭발적인 성장을 거두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정권에 의한 결과로 보는 시각도 많습니다.


    암튼 한국인들이 이렇게 기독교에 우호적인 태도를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이것이 지배자들의 종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일본의 국교가 기독교였다면 한국인들은 기독교를 이토록 열렬히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기독교는 지배자의 종교가 아니라 한국의 입장에선 해방을 선사한 해방자의 종교로 인식되었습니다. 이것은 일본에 대항하는 한 방법이었고 서양이라는 우산 속으로 들어가 서구와 연대하는 방법을 가능케 한 아주 유용한 선택이었습니다. 일제 시대 전후에 한국인의 지식인 중에는 기독교 신자가 유독 많았습니다. 한국인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미국과 기독교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해방 후 군정도 미국에 의해 통치되었고 그 이후 초대 대통령도 기독교 신자 이승만 장로님이었습니다. 함태영 목사님은 부통령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2대 대통령 윤보선과 장면 총리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새 나라가 들어서서 기독교세가 계속 신장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배경에 1970년대 이후 기독교 신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개신교는 대부분 미국에서 들어온 교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신교는 사실 유럽에도 많은 교파들이 있는데 한국의 경우 유럽 교파는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한국이 이처럼 미국과 같은 특정 국가에 강하고도 급격하게 쏠림 현상이 있는 것은 한국사 전체로 보면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기독교는 서양문화와 정신의 핵심입니다. 서양정신의 두 축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그리스, 로마의 철학은 자연스럽게 기독교 교리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서양 정신의 두 축은 때론 통합되고 반목하면서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왔다는 것은 서양의 모든 것이 들어왔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기독교는 불교와 같이 종교 문화적인 큰 족적을 현재까지 남기고 있진 못합니다. 그리고 유교와 같이 사람들의 의식구조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도 아닙니다. 그러기엔 한국의 기독교 역사가 너무 짧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사랑과 정의라는 고차원적인 종교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의 무차별적 사랑은 유교의 분별적 사랑에 함몰되어있던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또한 유교의 배타적인 가족주의(집단주의)는 소외되고 눌린 약자에 대해서 그동안 적절한 배려가 없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약자들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이 최초로 마련되는 것은 기독교 교단에 의해서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공헌한 가치는 바로 정의입니다. 이것은 예언자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는 끊임없이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예언자가 등장하여 기존의 정치세력들을 비판했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독재정치 시절에 학생들의 데모나 야당들의 저항이 무기력할 때 기독교의 사회 고발정신으로 발현되었습니다. 이들은 어떤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광야에서 외치던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의 뒤를 따라 정권을 향해 비수를 던진 것입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기독교가 사회 저항세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외국 세력과의 연대가 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이렇게 한국 사람들에게 사랑과 정의라는 이념을 강도 높게 제시함으로써 긍정적인 영향을 준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단편적인 시각에서 기독교인의 일부 잘못된 것만 지적하지 마시고, 이처럼 한국의기독교가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모든 방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대한민국 국민과 지금의 한국사회는 알아야하고 감사해야합니다.

  • 글쓴날 : [21-04-01 10:46]
    • 김주안 기자[honamc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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