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는 거룩한 두려움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것은 아주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즉 경건을 말합니다. 이것은 죄를 두려워한다던가, 형벌을 두려워한다던가, 저주를 두려워한다던가 하는 두려움이 아닙니다. 이것은 믿음 안에 있는 신령한 두려움을 말합니다. 특별히 사도들의 영적 권세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모름지기 교회에 들어올 때는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함부로 드나들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 네 발을 삼갈지어다(전 5:1)”. 그렇습니다. 발 한번 딛는 것도 삼가는 두려움을 가지고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경건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의식(臨在意識)이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사람들 모두에게는 저마다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사실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앞에서 어떻게 두려운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저들에게는 신을 두려워하는(God- fearing) 마음이 있었습니다. 요즘 교회들을 보면, 예배시간이나 찬송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또 너무 산만해 보입니다. 어떤 때는 교회인지 유흥장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소란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좀 더 경건한 교회, 좀 더 경건한 신앙, 좀 더 두려움이 있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또 초대교회는 표적이 나타나는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43절에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초대교회는 기사와 표적이 있는 교회였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권능이 있었기에 표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모든 병을 치유해서 더는 병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귀신을 쫓아내서 더는 귀신들린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듯 초대교회는 기사와 표적이 무성한 교회였습니다.
여러분, 귀신들린 사람이 함부로 나다니는 교회라면 권세 있는 교회와는 거리가 멉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고쳐야, 그 귀신을 쫓아내야 교회의 권세가 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교회 될 수 없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호남기독신문 애독자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말로는 하늘의 별도 따 올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주역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