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듯이. 한 해가 가면 다시 새해가 올 것입니다. 시작이 좋아야 하지만 끝은 더 좋아야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아쉬움과 함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설렘이 교차하는 2021년 마지막 달입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1월 1일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시간의 빠름을 새삼 다시 느낍니다.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끝나지 못한 체 또,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코로나도 가는 해와 함께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은 언제나 귀하고 값이 있지만 일 년 중에서 이 시간은 더욱 뜻이 있고 귀한 시간입니다. 지금 이 시간은 일 년 365일 가운데서 맨 마지막 날, 이날이 지나면 2022년 새해가 시작됩니다. 부질없이 나이만 한 살 더 먹게 되고, 천국도 일 년 가까워졌습니다. 연초에 계획은 많았는데 해놓은 것은 없고 후회와 먹기 위해서 일한 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한 해였습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지구를 뒤흔들었습니다. 변종이 생겼다고 하니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정부 보건당국의 노력으로 백신 3차로 한 가닥 희망을 가져봅니다.
2022년엔 코로나19도 물러가고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길 기도하며 기대합니다. 믿음보다 진실한 빛이 없음을 가슴으로 새기고 새겼어도 불신의 늪으로 높은 울타리만 쌓았던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용서보다 아름다운 향기가 없음을 진실로 깨닫지 못하고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비우고 낮추라는 말이 정녕 옳은 줄은 알지만 부질없는 욕심의 씨앗만 키워왔던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변명으로 포장한 고집과 아집으로 고요한 자성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끝내 용서하지 못하고 끝내 홀로인 고독의 외딴방으로 어리석게도 스스로 자신을 가둬버린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나만 잘 살고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불치의 이기심을 버리지 못한 채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단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연결하는 시간의 연속이지만 사람들은 선을 긋고 한 해가 지나간다고 아쉬워합니다. 성경은 지나간 시간의 일은 잊어버리라고 권장합니다. 후회스러웠던 일, 실패한 일. 슬펐든 일, 실수했던 일. 안타까웠던 일. 손해 본 일.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지난 일들에 매달려 과거에 얽매여 있지 말고 털어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밝은 새해 새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가장 먼저 드는 것이 후회의 마음일 것입니다. 많이 섬기지 못하고 베풀지 못하고, 많이 봉사하지 못한 후회,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한 후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해버린 후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린 후회, 시간과 돈을 낭비한 후회, 게으름 핀 후회, 너무나 많은 후회의 일들이 지난 일 년의 시간 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라는 말은 시대를 관통하는 명언인 것 같습니다. 주님! 남은 생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붙잡아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 연습도 없고 다시 살아 볼 수도 없는 인생! 그러기에 너무 짧은 인생! 잠깐 있다가 내 본향으로 돌아가는 나그네 같은 인생! 날마다 결승전만 있는 피곤한 인생! 잘못 살았다고 무를 수도 없고 지우개로 지워 버릴 수도 없는 한 번 지나면 못 오는 인생이기에! 단 한 번인 이 인생 후해 없는 인생으로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합니다.
이성봉 목사님이 ‘작사’ ‘작곡한’ ‘임마누엘 성가, 중에 “허사가” 12장에 이렇게 노래합니다. “우리 희망 무엔가 뜬세상 영화 분토 같이 버리고 주님 따라가 천국 낙원 영광중 평화의 생에 영원무궁하도록 누리리로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끝이 나면 천국 낙원 영광중 평화의 세계에서 영원무궁하도록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던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백금, 황금, 순금보다 지금이 좋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합니다. 지금부터 잘 살아야 하고 지금 좋아야 하고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만사가 시작도 좋아야 하지만 끝은 더 좋아야 합니다. 우리의 말년이 더 좋아야 합니다. 우리의 말년을 사람답게 그리스도인답게 잘 살아야 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성탄절이 지나갔습니다. 처음과 나중 되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려고, 하늘 보좌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대신 죽으려고 오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돈으로 안 되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황금만능 시대 입니다. 하지만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돈 가지고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은 돈으로 구입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재산 다 정리해도 반나절의 생명도 살 수 없습니다.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만큼 생명의 가치는 귀합니다. 그래서 한 생명은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려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러 오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이 없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여진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입니다. 죽음은 두려운 것입니다. 인류의 최대의 적은 죽음입니다. 인류는 사망의 노예가 되어 살았습니다. 일평생 죽음을 두려워하다가 늙고 병들어 고통 하다가 결국은 죽음에 끌려가고 맙니다.
그래서 바울은 죽음에 빠진 자신의 처지를 탄식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누가 우리를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 수 있겠는가? 바울은 이어 벅찬 감격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러 오신 날이 바로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최고로 복된 날입니다. 성탄절은 인류에게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주신 날입니다. 죽음의 역사를 그치고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예수님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날 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생명의 가치는 천하를 구원하는 가치를 지녔습니다. 78억의 인류를 구원하고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예수님 믿지 않고 구원받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이름은 예수뿐입니다. 인생의 길은 여러 길이 있지만,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 최대의 성공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일생에서 예수님 믿는 일보다 더 잘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잘 믿는 일이 인생 최대의 성공이며, 축복이며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