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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일, 하나님의 - 이성재 목사


이성재 목사
(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J 형.
재작년 12월 9일 자 호남기독신문을 통해서 형에게 편지를 띄우고 두 번의 해가 바뀐 2022년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작년에도 형하고 소박한 일상 속에서 여행을 하면서 인생살이를 나누는 가운데 교회의 본질을 찾고 참 예배의 회복을 위해 고민하는 기회를 갖고 싶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팬데믹을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그리고 모더나가 정복할 줄 알았는데, 오미크론(Omicron) 변이 바이러스의 강타로 인하여 그 바람마저 접고 또 한 해를 맞이하는구려.

하지만 공짜는 없는 법일까? 재작년에 이어 작년 해도 존 파이퍼(Jhon Piper) 목사의 외침이었던 “말씀이 기도가 되게 하라. 이것이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고 기도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라는 그 도전에 계속 골방(서재)에서 예수님을 깊이 경험할 수 있게 하셨음이 은혜입니다.

형도 아시다시피 존 파이퍼 목사는 개혁주의 신학자이면서 기쁨의 신학자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많은 저술을 한 분이지요. 그의 저서 <존 파이퍼의 말씀과 기도 세트> 전 4권은 나에게 크나큰 감명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희미한 영혼을 한층 맑게 해 준 탁월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기 위해, 이웃과 세상을 바르게 섬기기 위해, “왜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강한 도전은 나의 영적 균형을 잡아 주는 천평(天枰)이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성과 감성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복음과 세상의 학문들을 열심히 생각하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사로잡아 그분을 진심으로 기뻐하도록 이끄시는 방향으로 경험하게 하여 기울어진 운동장을 반듯하게 잡아 주신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J 형.
1990년대부터 우리 나라의 화두는 단연 고도성장(高度成長) 였지요. 한국 교회도 예외 없이 교회 성장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사실 주님 없는 성장신학, 번영신학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와서 욕망의 바벨탑을 쌓음으로써 거짓 복음의 허상이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봅니다.

어느 해 봄인가 대전에서 열린 세미나에 초청받아 갔다가 아침 산책으로 대전천을 걷는 데 겨울 철새 두 마리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행한 분에 따르면 철새들의 몸이 비대해져서 날지 못해 시베리아로 날아갈 수 없어 저렇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몸집이 커지면 몸을 단련시켜 튼튼하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결과는 비극입니다. 날지 못하는 철새처럼 그냥 성인(成人)이 되었다는 것은 이 세상이 완전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성인이 된 세상은 전체가 왜곡되고 부패하며 자기만족에 취한 불완전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기독교는 인간이 만든 문명의 부족한 틈새를 찾아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문명 자체가 모래 위에 건설된 성(城, Castle)임을 밝히 보여주는 한편, 분명한 진리와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코로나19와 앞으로 변이될 바이러스를 통해서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이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점을 깊이 각인시켜주었고, 정복될 줄 알았던 전염병은 계속 변형된 모습으로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음을 오미크론(Omicron) 변이 바이러스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세상이 완벽한 것처럼 보였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음지에서 가난과 질병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음도 우리의 믿음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J 형.
이럴 때, 우리 그리스도인 그리고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으로 우리 교회가 직접 뛰어들어 민족사의 방향을 정립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등대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사는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고, 그들이 사는 세상의 문제를 이해하며, 이를 말씀으로 해석하기 위해 밤이 맞도록 몸부림치는 양치기가 되어야 우리도 살고, 교회도 살고, 세상도 희생할 것입니다. 

그만큼 나와 우리 교회에게 주어진 하늘의 사명이 막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에게 고난과 고통은 진실로 은총의 통로입니다. 고통을 통해 나 자신을 제대로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바꾸고 ‘위대한 전환점’ 앞에 설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겪으면서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망상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고난과 고통은 영적 성숙을 위한 필수 과정이라는 말을 새삼 절감하면서 이제는 고난과 고통을 통과하지 않고도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쓰임 받는 사람은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J 형.
우리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 권이라는데, 최근 한국경제인엽합회(전경련)가 발표한 OECD 가입 30개국 중 갈등지수가 멕시코, 이스라엘에 이어 3위라는 부끄러운 자료를 접했습니다. 빈부 갈등, 이념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 젠더 갈등, 정치적 갈등 등 그야말로 갈등 공화국입니다. 더욱이 갈등을 관리 조율할 수 있는 역량 또한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갈등관리 지수가 낮다는 것은 사회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초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며 이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고 조율할 책임이 바로 ‘나’의 몫이고 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문득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하늘은 절대적 세계, 바람은 현재의 시련, 별은 그가 추구하려는 이상적 삶, 그러니까 시(詩)가 ‘별을 노래하는’ 것은 이상적 세계를 드러내는 상징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나에게 들려주신 골방의 의미인 듯합니다.

무릇 교회가 살려면, 그리고 교회가 세상을 살리려면 교회가 교회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적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교회의 공공성(公共性)’ 내지는 ‘대의명분(大義名分)’을 회복하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까지 한국 교회가 자신의 존속을 목표 삼아 사회로부터 분리된 택함 받은 사람들만의 집단이었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세상 속으로 보내어진 공동체라는 본질을 추구하려는 ‘대전환(大轉換)’의 의식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나의 주장에는 동의하시지요?

J 형.
새해 인사 겸 문안편지치고는 무겁고 무책임한 허언인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체험입니다. 이 은혜 체험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더욱 빛날 것입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上)”. 
하나님은 늘 새 일을 행하십니다.

형과 나는 모세의 이 자세를 본받아 절망 가운데 주저앉아 있거나 현실을 냉소하지 않고, 오히려 절망하여 주저앉아 있는 동역자들의 손을 붙잡고 성경과 기도로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는 풍성한 자산으로 인도하라 하시는 주님의 명령에 응답할 책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쓰는 동안 내내 마음이 뜨거워지고 내 속에서 새로운 희망이 꿈틀거리는 감동을 느끼면서 펜을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대안은 다음 서신에서 담론하지요. 땅의 일을 넘어선 하늘의 일이 펼쳐지는 2022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건승하십시오. 근하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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