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화론이라는 사상체계가 세상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진화론을 사상체계라고 말한 것은 진화론이 과학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며,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종의 변화를 입증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요즈음에도 여러 학자들이 서로 다른 진화론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직도 진화론은 증명된 적이 없다는 증거이다.
종교(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가 1670년에 <신학-정치론>을 출간함으로써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부정하는) 성경비평학을 공식적으로 시작하였다. 1830-33년에는 찰스 라이엘이 <지질학 원리>를 출간하여 노아 홍수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철학자들과 슐라이어마허(1768-1834)를 포함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성경의 신적기원(神的起源)을 부정하는 분위기에서 1859년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하였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하여 진화론을 발표하기 전인, 1958년 어느 날 앨프레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라는 아마추어 박물학자가 다윈에게 20쪽에 달하는 논문을 포함한 서신을 보내왔는데, 그 논문은 다윈의 진화론 사상과 다르지 않았다.
학문적인 위기감으로 당황하고 있던 다윈은, 학문적 교분을 나누며 친밀하게 지내던 찰스 라이엘(1797-1875)과 조지프 후커(Joshep Dalton Hooker; 1817-1911)의 조언을 받아들여 자신의 글들과 월리스의 논문을 묶어서 런던에서 열린 린네 학회에서 공동으로 발표하였다.
진화론은 다윈이 없었다면 월리스에 의해, 월리스도 없었다면 다른 누군가에 의해 공표되고, 사람들이 추종하였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진리보다는 진리가 아닌 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디모데전서 4장 1~4절(개역개정)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한 최초의 사람은 아니다.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인 이래즈머스 다윈(Erasmus Darwin; 1731-1802)은 자신의 저서 <식물정원>, <자연의 신전>, <주노미아>, <식물의 경제> 등을 통해 진화론적 사상을 피력했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 개정판을 6판까지 내었는데, 3판부터는 진화론적 사상을 피력한 30여명 이상의 학자들을 열거하고 그들의 견해와 주장들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다윈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제외하고) 프랑스 사람인 뷔퐁(Buffon; 1707-1788)이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에 대하여, 과학의 정신으로(in a scientific spirit) 언급한 첫 번째 학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윈은 뷔퐁의 견해가 시기에 따라 크게 변화(變化)하고 변이(變異)의 이유와 방법에 대하여 논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는 않는다.
찰스 다윈은, 1801년에 장바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 1744-1829)가 발표한 종의 기원에 대한 견해와 주장들을 언급하면서, 라마르크를 종의 기원에 대한 견해로 주목을 받은 첫 번째 학자로 평가한다.
라마르크는 (획득형질이 후손들에게 유전된다는) 용불용설(用不用說)의 주창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획득형질(獲得形質; acquired character)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져, 용불용설은 폐기된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