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은 전 세계 모든 개신교가 종교개혁 기념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그 이유는1517년 10월 31일에 종교 개혁자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당 정문에다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써 붙이고 종교개혁을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세계역사를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로 나누고 있는데 이것은 교회역사의 구분에 따르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주후 590년까지를 고대교회사라고 하고, 주후 590년~1517년까지를 중세교회사, 주후 1517년 이후 현대까지를 근세교회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중세교회사를 또 다른 말로 로마가톨릭 교회시대라고도 하는데, 이 1,000년의 중세사를 암흑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성경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루터는 신부요 수도사이자 비텐베르크 대학 신학과 교수였습니다.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강의하는 전문가였는데, 그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반박한 겁니다.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것이 종교개혁의 효시였습니다. 이것은 가톨릭교회의 아성에 선전포고를 한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1,000년 동안 가톨릭교회가 주도해 왔습니다. 루터가 내걸었던 조항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거기에 종교개혁의 원리와 정신이 다 집약되어 있습니다.
첫째, ‘오직 믿음으로’입니다. 가톨릭은 오직 행위입니다. 그래서 가톨릭은 선행을 강조합니다. 공덕 쌓는 것을 강조합니다. 한 마디로 율법을 지켜야 구원 받는다는 율법주의입니다. 선행을 쌓아야 비로소 구원받고 복을 받는다는 것이 가톨릭의 가르침에 반발한 겁니다.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루터가 로마 교황청을 방문했습니다. 다른 순례자들처럼 루터도 무릎으로 기어서 로마 교황청 뜰의 돌계단을 올라갔습니다. 그러다가 회의에 사로 잡혔습니다. 왜 이래야 구원 얻는가? 성경 어디에 이래야만 구원 얻는다는 게 나오는가? 이런 회의 이후 루터를 사로잡은 말씀이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겁니다. 행위나 고행이나 자선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가톨릭은 행위를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음을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루터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독일로 돌아옵니다. 이것은 사기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터진 사건이 면죄부 사건입니다. 교황 레오 10세가 지금 로마 교황청으로 사용하는 성 베드로 성당을 짓는 데 자금이 떨어져서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면죄부는 부적입니다. 그것을 사면 죄 사함 받고 천국에 간다고 했습니다. 특히 공덕이 모자라 천국에 못 가고 연옥에 대기 중인 부모나 선조들이 면죄부를 사고 돈을 헌금함에 넣는 순간 천국에 간다고 했고, 살아있는 사람은 연옥을 거치지 않고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가르쳤습니다(천국이면 천국, 지옥이면 지옥이지 딴 곳은 없습니다). 이 면죄부 사건에서 더 이상 루터가 견딜 수 없어 개혁의 깃발을 들게 된 겁니다. 이게 1517년 10월 31일 대자보 사건입니다. 조목조목 로마 가톨릭이 가르치는 거짓된 가르침에 반박했습니다. 특히 루터는 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루터는 성서에 해박했습니다. 성서에 비춰보니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이 다 거짓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믿음으로만 의로워지고, 천국갈 수 있다고 외친 겁니다. 율법이나 행위는 구약시대의 법이고, 율법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음을 하나님이 폐기하시고 복음 시대를 여신 겁니다. 십자가를 기점으로 그 전에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게 맞지만, 십자가 이후에는 아닙니다. 십자가를 믿는 사람이 구원을 얻습니다. 누구도 선행이나 고행으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가톨릭은 중세 천 년 동안 잘못된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오도했습니다.
종교개혁의 원리 두 번째는 ‘오직 성경으로’입니다. 가톨릭은 오직 성경이 아니었고, 교황의 권위와 교서, 교회의 전통과 제도가 성경보다 더 중시했습니다. 그 당시에 성경은 라틴어로 되어 있었으며 사제만이 가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제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당시 평신도(신도, 성도)는 항상 사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성경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제들이 엉터리로 설교해도 그게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교권을 지키기 위해 고의로 성경을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신자들이 성경에 무지하도록 만든 겁니다. 그들의 기득권을 사수하려고 악용한 겁니다. 그래서 루터는 종교개혁을 하며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이 성경번역입니다. 지금도 독일 사람들은 루터 번역을 가장 많이 인용하고 좋아합니다. 루터는 성경을 신도들의 손에 돌려준 겁니다. 로마 가톨릭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해박한 신자가 되면 자기들의 잘못된 점이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서방 사람들을 천 년 동안이나 지배한 겁니다. 로마 가톨릭이 저토록 부패하고 생명력을 상실케 된 데는 성경을 신도들로부터 격리시킨 부작용이라고 루터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 번역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성경을 신앙의 잣대로 삼아야 하며, 성경만이 신앙의 유일한 규범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는 ‘오직 은혜로만’입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겁니다. 가톨릭은 오직 은혜가 아니라 교황의 중보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사제의 중보 행위를 통해 간접적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친 겁니다. 교황이 교회가 우리의 구원을 중재하는 겁니다. 각자가 회개하는 게 아니고 사제가 우리의 회개도 중보를 하는 겁니다. 우리는 각자가 값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구원을 얻습니다. 어떤 중보자도 필요 없게 된 겁니다. 그래서 루터는 만인이 사제요 교황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신부라는 겁니다. 우리가 직접 하나님을 대면해서 구원을 받는 게 구원이고, 그래서 은혜라는 겁니다. 가톨릭은 참 중보가 많습니다. 교황이 중보고, 교황의 전권을 나누어 가진 사제도 있고, 마리아도, 성자도 중보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에게도 성자에게도 기도합니다. 그들이 중보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전달해 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루터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보았습니다. 각자가 대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직접 하나님을 대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4년 전에 루터가 제기한 종교개혁의 기본 원리는 이 시대에도 유효합니다. 개혁교회는 종교개혁으로 출범했습니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라 해서 반항자, 저항자라고 부릅니다. 이게 개신교의 교단명이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시도 이 세 가지 종교개혁의 기본원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세 가지 명제를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며, 이것을 기준이요 잣대로 삼아야 합니다. 이게 우리 믿음의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어긋나면 개혁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단히 새로워져야 하는 교회가 우리 개혁교회요 개혁교회 성도들입니다. 개신교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는 끊임없이 개혁하는 교회입니다. 왜냐면 교회는 사람이 모인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단히 개혁해야 새로움을 잃지 않고 본래의 동일성을 상실하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개혁교회의 본질입니다. 사랑하는 호남기독신문 애독자 여러분,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이것이 종교개혁의 3대 명제입니다. 우리 개신교회의 정신입니다. 이것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입니다.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자는 외침입니다. 오직 순수한 믿음을 회복하자는 외침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이제 504주년 종교개혁주일을 맞아 다시 그 정신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 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능력의 복음 전도자, 이 시대의 종교개혁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개혁교회는 계속 개혁되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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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2021-10-22 10:32: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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