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열 목사 (본지주필, 기독교한국신문논설위원 군남반석교회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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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얼굴에 따라서 말의 표정이 바꿔진다. 기쁠 때는 기쁜 말을 하고 슬프면 슬픈 말을 한다. 그런데 사람이 가장 범하기 쉬운 언어의 죄를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특히 남을 비방하는 일을 그리스도인들은 삼가야한다.
비방의 원어는 카탈레오인데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거나 해치는 것을 뜻한다. 바클레이 신학자는 비방이란 그 장소에 없기 때문에 변명할 수 없는 사람을 비판하고 욕하며 중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판단의 원어는 크리노인데 단지 평하는 것 이상에서 결정적으로 남의 가치를 규정짓는 것 불명예스럽게 단정하는 것을 뜻하고 있다.
남을 판단해야할 경우 우리는 인간의 가치기준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법을 따라야 한다. 야고보서 4장 11절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라고 말씀한다. 비방하고 판단함으로 하나님의 대권을 빼앗는 누를 범할 수가 있다. 야고보서 4장 12절에는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가 살다보면 실수는 예외가 없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지 않았던가? 요즘 정치인들이나 사회지도층에서 쏟아지는 막말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 아이들이 배울까봐 겁이 난다. 정제되지 않는 감정 섞인 말이나 폭력 집단에서 쓰는 용어를 거침없이 쓰고 있다. 또한 그것을 그대로 받아서 신문이나 방송이나 유튜브 등에 띄우는 것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예수는 사람을 살리려 이 세상에 오셨다. 그렇다면 특히 기독교 지도층의 사람들은 언어를 조심해야한다. 누군가 말하기를 거꾸로 가는 세상이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기에 실수하며 살아간다. 특별히 아픈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막말하는 무례를 범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일제의 만행에 고초당한 수많은 이들을 폄훼하는 언어들을 강단에서까지 하는 목회자가 있어서야 어디 되겠는가! 삭막한 세상에서 살면서 옛날에는 가난 때문에 빵을 먹기 위해 애를 태워왔다면 지금은 그리운 말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 애를 태우는 시대가 아닐까?
누군가의 가슴에 담아두면 보석같이 빛나는 말 한마디를 해보자. 그 말 한마디를 가져보자. 예수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우리가 아닌가? 예수의 은혜 때문에 살아온 우리가 아닌가?
예수의 심장을 가져보자. 지금은 믿음의 사람들이 다정한 말 한마디 그리운 말 한마디를 전해보자. 가슴속에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남다른 행복하나가 더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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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2021-10-08 13:52: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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