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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종교개혁의 3대 정신 - 김상열 장로




김상열 장로
(목포남부교회 원로)


금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 50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 개신교를 가리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부릅니다. ‘저항하는 자’, ‘항거하는 자’란 뜻입니다. 부패하고 불의한 중세 카톨릭의 강력한 권한에 종교개혁의 선봉자인 ‘마틴루터’가 그 부패와 불의에 항거하여 일어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중세 카톨릭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진리를 왜곡하여 극심한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면죄부강매, 교황무오 설, 성직매매 등). 불의와 부패에 항거하여 분연히 일어선 종교개혁의 정신을 되새기고 우리 신앙의 중심을 바로 잡아야 하겠습니다.


“종교개혁의 3대 정신”은 첫째, 오직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저자이며, 쓴 사람들은 기자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고 뼈대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성경이 경시되면 그 신앙은 근본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표준이라는 말합니다. 성경은 믿음과 생활의 가장 권위 있는 기준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교황의 권위를 성경보다 우위에 두는 비성경적인 사상을 가졌는데, 이에 반대하여 마틴루터는 ‘오직 성경’을 외쳤습니다. 그 후에 칼빈, 쯔빙글리, 멜랑흐톤 등 모든 종교 개혁가들이 오직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이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오직 성경’은 다음의 의미를 갖습니다.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된 성경만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성경이 옛날 선지자와 사도들에 의하여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된 것이며 그 시대의 사람뿐만 아니라 후대 사람, 즉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이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하여 성령의 완전한 영감으로 기록된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이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모든 일들과 이치들에 유일한 절대 심판률인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의 권위는 오직성경 자체에 있고, 성경의 해석도 성경 자체가 해석해 주고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언제나 진정한 말씀의 전파가 생명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세상의 그 어떤 학문도 성경과 동일하거나 우위에 있지 않음을 세상에 선포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의 최종 최고 결재자는 오로지 성경임을 견지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성경이 무시되고 도외시되고 성경을 떠나는 일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중세 카톨릭이 타락하여 생명력을 잃게 된 것은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성경만을 신앙과 행동의 유일한 기준과 규범으로 삼아야 합니다.


둘째, 오직 믿음입니다. 물질이 풍성한 사회나 개인은 어김없이 믿음이 식어갑니다. 종교도 권세화되고 물질에 오염되면 믿음이 생명력을 잃고 형식만 남게 됩니다. 가난할 때 뜨겁던 신앙인이 부해지고 편해지면 싸늘하게 식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의지하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종교개혁 당시 중세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당시 막강한 교회 권력으로 사람들을 지배했고 따라서 물질도 풍요로웠습니다. 신앙이 식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 타락의 본보기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돈을 내고 면죄부를 사면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가는 것도 보장 된다고 하면서, 면죄부가 천국 가는 티켓이라고 선전하였습니다. 그때 비텐부르크의 젊은 수사 마틴루터가 구원의 죄 사함은 면죄부가 주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고 힘 있게 외쳤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신앙의 출처가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며, 구원에 이르는 신앙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의 의되신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신앙의 내용은 오직 은혜이지 인간의 공로가 아닙니다. 우리가 꼭 이해를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공로나 자선이나 선행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덕목이지만, 그것이 구원의 조건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날 일부 종교에서는 선행과 자선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그렇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죄 사함이나 구원은 전적으로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정치가는 전략으로 살고, 상인은 이익으로 살고, 학자는 지식으로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으로 삽니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뿐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이것이 복음의 절대성입니다.


셋째, 오직 은혜로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 그 자체라고 주장하면서, 사제에게는 사죄권이 있으며 사제만이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한이 있고, 당시 평신도는(당시 사제 외는 평신도라고 했으나 종교개혁이후 개신교에는 신도, 성도입니다. 평신도는 없습니다. 지금도 어떤 목사님들은 목회자 외 직분자들을 평신도라고 하는 목사가 있습니다. 아직도 500년 전 중세교회 머물러 있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고해성사도, 사제에게 했고 당시 평신도는 성경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온갖 인간적인 장벽을 만들어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길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 하셨으며 그 때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이 무너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인간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마틴루터는 성경을 통해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직 은혜로!”를 외쳤습니다. 즉 인간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로 사제를 통하지 않고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리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근본 사상(만인 제사장주의)입니다. 수도원의 신부나 노동하는 일꾼이나 유식한 자나 무식한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을 권리는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누구의 특권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 땅의 누구에게나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다 은혜 안에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를 용서받기 위해 사제를 쫓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고해 성사’를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의지해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고백하면 다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 면죄부를 사거나 고행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하면 됩니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종교개혁의 3대 정신입니다.
“개혁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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