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랑으로 삽니다. 성경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동물이 아닙니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사는 동물입니다. 나를 사랑해 주는 자가 필요한 동시에 내가 사랑할 생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생은 결코 행복한 생이 아닙니다. 사랑은 행복의 열쇠입니다. 사랑하는 기쁨과 사랑을 받는 보람을 가질 때 우리는 지상에 인간으로서 태어난 것을 감사하고 싶고 축복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세계적 문호 톨스토이가 답하는 인생의 지혜가 담긴 단편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를 알려고 하는 것은 이성적인 사고능력으로도 당연하지만 살아가는 목적으로 사람은 인생살이로 그 삶에 성장성숙해지는 것을 알게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히 눈에 보이는 세상만으로 그 전부라 생각하고 삽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어떤 변화법칙과 이치 속에서 변해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산다는 것은 우주 삼라만상과 자연의 섭리에 따라 순응하면서 '나'와 우주 대자연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단순히 심장이 뛰고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대방과 어울리며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여 인간 존엄을 중요시 하는데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을 때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통한 존재의 의미와 삶을 알게 합니다. 존재의 의미 ‘사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어떻게 살다가 가는가?’하는 문제는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야 함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인가?’하는 문제는 이 땅에서 사는 생물과 더불어 사는 입장을 알게 합니다. 이는 자연의 환경과도 중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 우주가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서도 이를 알게 하고 또한 산다는 것은 생장염장(生長殮葬)으로 그 뜻은 낳고 자라고 성숙하여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는 4계절의 주기 속에서 계속 흘러가는 세월도 알게 합니다. 이는 창세로부터 생명체들이 태어나 생태로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러한 우주의 근원과 일치되는 완전한 조화로 성장성숙하면서 여기에 따르는 시련과 고통으로 인생살이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매슬로우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방편으로 기본적인 소유적 욕구나 안전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면 사랑과 소속감에 대한 욕구가 발달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사회는 소유욕으로 바벨탑을 쌓고 탑이 높아질수록 반면에 인간은 불안과 초조와 갈등만이 유발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불신과 미움으로 세상은 요지경 속에 삶의 본래적인 자세는 상실하고 반목질시하고 있는 것을 보게 합니다. 옛 성서에 바벨론에 살던 노아의 자손들이 홍수를 겪은 뒤 하늘에 이를 수 있는 인간의 높은 탑을 쌓기 시작하였으나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서로 말(방언)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어 공사를 마치지 못하고 말았다는 것을 인간 한계로 알게 합니다. 욕구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기대하고 있는 것과의 차이가 있습니다. 욕구는 왜 생기는가? 현실과 이상의 차이 때문에 생깁니다. 그러므로 욕구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을 동물이라 합니다. 불쾌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의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은 동물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영묘한 힘을 가장 많이 가졌다고 해서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합니다. 창세기에 나온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본능적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 존재는 생각하고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동물이지만 그 안에는 순수한 본능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삶은 살아가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목적과 생각 없이 사는 삶은 헛된 삶입니다. ‘무엇을 위해 삶을 사는가?’하는 물음은 삶을 산다는 것의 중요한 물음입니다. 인생의 삶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나그네로서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는 인생의 삶은 이 세상에서의 나그네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왔다가 가는 것의 여정을 안고 삶을 살아갑니다. 인생의 한 삶을 뒤돌아보면 그 발자취는 후회로 회한합니다. 살아온 삶에서 길을 잃었을 때 삶은 더 서둘러 달려왔고 그 종착에서 목적을 잃은 인생의 미아로 남아 길이나 집을 잃고 헤매는 아이의 신세와 같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선택을 요구하는 삶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택의 범위와 다양성이 예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많아졌습니다. 잘못된 방향을 가면 평생토록 후회하는 일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가치관 선택도 한 생명의 태어나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왜냐하면 가치관은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치관이란 가치를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 하는 점에 이르게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리고 당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기에 그리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귀한 존재로서 물질이나 구조나 제도보다 인간이 우선하는 것을 알게 합니다. 이것은 사람은 그 고유성과 본질적 가치를 존경하고 사랑해야 함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 본질적 목표는 변화입니다. 시간과 장소, 양과 질이 변하는 것입니다. 시간은 항상 변하며 주위의 환경도 변한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목표는 서로 의존하는 관계에 있음을 이해하고 목표들은 항상 서로 떠받히고 있어야 합니다. 사물은 끊임없이 변하고 나도 변하고 다른 사람도 변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황도 변합니다. 그리하여 목표설정은 일시적인 작업이 아니라 끊임없이 수정하고 조정해 나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여기서 인간은 창조적인 존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기능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인간에게 부과된 과제입니다. 창의성은 현상유지가 아니고 일에 변화를 주고 효율을 높이고 세상의 이익을 높이며 구조를 변화 발전케 합니다. 변화는 기회입니다. 변화는 성장, 성숙의 계기가 됩니다. 변화는 삶에 활력을 줍니다. 변화는 비전을 항상 새롭게 함으로 비전과 꿈을 가지고 삶을 살게 합니다. 사람이 삶을 사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인간은 사랑의 힘에 의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찬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그 사람 속에 계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 안에 내가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서에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이 말씀에서는 어떤 조건도 이유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가는 속죄의 본질이나 속죄의 결과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고로 사람은 사랑을 하고 받고 사는 삶에서 인간 노릇을 한다는 것입니다. 들에 핀 한 포기 풀과 나무가 땅에서 자라 성장하고 따스한 하늘의 햇볕을 받아 열매로 성숙하게 변화하는 과정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으로 알게 하고 이는 결국 ‘길’을 찾게 하고 ‘진리’를 터득하게 하고 '생명'을 알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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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2021-07-08 15:50: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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