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머리 위에서 빛나고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잔잔한 파도, 간간이 오가는 배에서 손을 흔드는 어부들의 모습. 나는 기쁨에 들떠 손을 높이 들어 답례했다. 목적지인 육도에 다다르자 바닷물이 빠지고 파도 위에는 따가운 태양만이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그늘을 찾아 점심 준비에 들어갔다. 짓궂은 철이 형이 명령했다.
“기야, 네 몫은 없어. 넌 마을에 가서 물이나 길어와.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600m는 족히 되는 거리를 단박에 달려가 물을 길어오니 주먹밥 두 덩어리가 남겨져 있었다. 더할 수 없는 꿀맛이었다.
드디어 물고기잡이가 시작되었다. 형들은 그물을 치기 위해 한 줄로 늘어섰다. 폭 1m, 길이 20m의 그물 상하를 일제히 두 손으로 거머쥐고 반원형을 그리듯이 바닷속으로 던져넣으니 그물이 서서히 잠겨 들어가는 광경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을 뛰게 했다. 반원형이 되면 이번엔 그물을 중앙으로 모으듯이 하여 선체에 갖다 붙인다.
환성이 터졌다. 그물에 잡힌 물고기가 이쪽저쪽에서 펄떡거렸다. 개중에는 몸통을 1m나 튕겨 달아나는 녀석도 있었다. 갑판에 올려진 고기는 비늘을 번뜩이며 몸부림쳤다. 내 임무는 그 고기를 양동이에 퍼담는 일이었다.
게, 뱀장어, 넙치… 이름도 모르는 희귀한 물고기도 숱했다. 신이 나서 정신없이 그물을 던지다 보니 어느새 해가 서편으로 기울어 노을이 물든 하늘에서 바다 저편으로 잠기어갔다.
“내일은 물고기 파티가 열리겠구나.”
철이 형의 말을 받아 윤식 형이 말했다.
“자식, 빠르긴. 벌써 먹을 궁리부터 하다니.”
이렇게 하여 우리는 자연 속에서 간식을 해결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멀쩡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급기야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이 내려치는 것이 아닌가!
“야단났다. 비가 올 모양이다. 빨리 돌아가자.”
농담을 주고받던 형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윤식 형과 태환 형이 노를 잡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소나기가 주루룩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람도 한층 강해졌다. 파도는 점점 높고 거칠어져 우리의 작은 나룻배를 당장에라도 삼킬 기세였다. 7m 선체에 산더미만 한 파도가 밀어닥치니 배 안은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정신이 아찔했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바닷물을 퍼냈다. 더 빨리 더 많이 퍼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다. 주위는 점점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오고, 둘이 젓던 노를 서너 사람이 매달려 저어도 배는 좀처럼 전진할 줄 몰랐다. 그저 파도에 떠밀려갈 뿐이었다.
이윽고 철이 형이 외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건 단념하고 일단 근처 섬에 대도록 하자.”
“바보 같은 소리 마. 섬은커녕 지금 우리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판국에…”
“하지만 다른 수가 없잖아. 무조건 앞으로 나가보는 거야.”
모두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배에 타고 있다기보다 오히려 물속에 앉아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리라. 나는 겁이 덜컥 났다. 추위로 이가 덜덜 떨리면서 맞부딪혔다.
‘이대로 모두 죽는 게 아닐까? 좀 더 물이 들어오면….’
바로 그때였다. 태환 형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찬송가였다. 너도나도 따라부르는가 싶더니 마침내는 합창으로 변했다.
멀리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도 외로워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 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목이 터지라 불러댔다.
노를 잡은 형들도 힘을 얻은 듯 보였다. 배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멀리서 희미하게 불빛이 보였다.
“야! 저기 봐. 뭔가 보인다.”
“배일지 몰라.”
우리는 더욱 크게 노래를 불렀다. 불빛이 차츰차츰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일제히 아우성을 쳤다.
“살려줘요! 여기에요. 살려줘요.”
발동선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요동이 심해 쉽사리 전진하지 못했다.
“조금만 더!”
“어이 괜찮아? 이런 풍랑에 어딜 가는 거요?”
“목포! 목포에요.”
선장인 듯한 남자가 밧줄을 던져주었다.
(다음 21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