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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Ph.D.),버클리 연구교수, 남장로교 연구소와 아르메니아 조지아 연구소, '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 핸드북', '목포 기독교 근대 역사관의 배경', '최초의 서양 의사 드류 유대모' |
전라도에서 사역한 후,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블랙 마운틴에서 여생을 보내던, 선교사 제위께서 ‘우리의 이야기를 남겨달라’는 유지를 받들어 미 남장로교회 선교역사 및 전라도 교회사를 연구해 오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 필자가 크게 감사할 일이 두가지가 있다. 1. 전라도사관의 개척과 그 시각에서 두권의 책을 낸 것이다. 2. 전라도 선교의 물꼬를 튼, 의료선교의 역할에 대하여 사필귀정을 하면서 드류 유대모 선교사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분명하게 정립한 점이다. 미 남장로교의 전라도 선교 초기는 동학농민혁명으로 인하여 큰 난제에 봉착해 있었다. 당시 전라도에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지 않은 가문이 없을 정도로 생존한 민초들의 마음은 분노와 증오로 가득차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라도 민초들의 마음에 복음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난제를 극복하고, 민초들의 마음 한 켠에 복음의 씨앗이 자리잡게끔 기적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 의료선교였다. 그 중심에 최초의 서양의사 드류 유대모 의사 선교사가 있었다.
미 남장로교에서 한국에 파송한 최초의 의료 선교사이자, 교단 전체로 보아도 역사상 두 번째 의사 선교사이기도 했던, 드류 유대모 선교사는 지리, 역사, 문화, 국제정치 등 인문학적 소양이 남달랐던 인물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전라도 선교지에 대한 지리학적 이해를 통하여 항구도시들인 군산과 목포의 중요성을 간파하였다. 아울러 군산의 고군산도와 목포의 신안 섬들의 복음화와 선교적인 활용에 대하여 구체적인 계획들을 가지고 있었다. 드류 유대모 의사 선교사의 탁월한 견지에서 볼 것 같으면, 목포와 군산은 몇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로, 항구도시로서, 바다를 통한 접근성이다. 둘째로, 영산강과 금강 등 배편으로 내륙 깊숙이 닿을 수 있는 편의성이다. 셋째로, 이들 지역 주변에 육로로 또는 배편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거주지들이 비교적 가까이에 있어서 선교적인 사역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필자의 ‘목포 기독교 근대 역사관의 배경’을 통해서 목포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대하여 당시 세계 정세의 변화와 역학관계 속에서 살펴본 바 있다. 더군다나 이번에 출간된지 얼마지나지 않아서 재판을 인쇄한 ‘최초의 서양 의사 드류 유대모’에서, 드류 선교사가 목포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재차 방문하여 목포, 신안 섬들, 그리고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답사한 내용들에 대하여 소상하게 언급하였다. 드류 의사 선교사는 목포가 군산보다 먼저 개항을 할 수도 있다는 객관적인 자료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당시 이러한 정세를 파악하고 있던 선교사들은 드류 박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드류 박사의 인문학적 소양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새롭게 발굴하면서, 필자는 목포가 아직도 여전히 신앙적으로, 교회사적으로, 모든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모든 분들에게 환기시키고 싶다. 필자가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미 남장로교회의 선교역사 및 전라도 교회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전라도사관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전라도사관은 한국교회사 전체를 이해하는 관점을 새롭게 정립할 뿐만 아니라, 이제 성령의 불은 평양을 깃점으로 북으로부터가 아니고, 남으로부터 북으로 번져가고 있다고 해야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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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2025-07-28 11:37: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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