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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公正), 공평(公平), 자비(慈悲)가 통하는 세상 - 이성재 목사




이성재 목사
(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오성호 시인의 「운동회 날」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삶이란 게 / 가을 운동회 날처럼 / 늘 마음 설레게 하는 것이었으면

(중략)

누구나 똑같은 출발선에 서서 / 긴장하고 서 있다가 / 총소리와 함께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고 / 공정한 출발을 위해서라면 /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날

진 자도 이긴 자도 떳떳하게 / 푸른 가을 하늘을 우러를 수 있는 / 그런 날들이라면


시인은 운동회 날처럼 마음 설레는 세상, 함께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는 공정한 세상이면 좋겠다고 노래한다. 나 또한 그런 공정한 세상에서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현실이다. 이 시가 그렇듯이 상상을 통해서 세상을 새로운 현실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은 상상의 산물이자 상상의 결과요, 인식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상상은 현실을 바꾸는 힘이다. 따라서 세상은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이 보태짐으로써 실제적인 현실이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게시의 글임과 동시에 장대한 인류의 역사서다. 그 계시의 초석(초석(礎石)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다.


성경 출애굽기를 보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 이민시키셨다. 그러나 종국에는 애굽에서 420년 동안 혹독한 노예 신분으로 살게 하셨다가, 그들의 고통의 신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출2;23~25), 양치기 모세를 불러 2백 여 만 명의 언약 백성을 출애굽Exodus시켜 40년 간의 광야 생활을 경험하게 하신 가운데에서도 경고하셨던 말씀은 ‘공정과 공평 사회’ 성립이었다(레19:35-37:신25;13-16).


그러나 인류가 경험했고, 또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상은 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역주행하는 불공정, 불균형 사회다. 온통 경쟁하고 쟁취하는 진흙탕 싸움터에서 살아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상상력을 통해 여과된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을 꿈꾼다. 이것이 인간사의 보편적 바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은 서로 경쟁하고 쟁취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음으로써 생기(生氣)를 얻는 장소이기도 하다. ‘진 자도 이긴 자도 떳떳한’ 세상 말이다.


꼭 10년 전 일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마이클 J, 샌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었다. 아마 그 책의 열풍은 우리 한국 사회가 얼마나 정의롭지 못했는가를 반증하는 예였으리라. 그러나 그 책을 접한 나로서는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정의(justice)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현대 정치철학 고전에 대한 왜곡과 철학적 오류로 가득한 저자의 논증은 문제 해결은 커녕 똑같은 질문「정의란 무엇인가」를 남겼을 뿐이다.


   미국의 리드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파터 스타인버거 박사는 그 책을 평하기를 “샌델은 자신의 견해를 논증한다보다 단지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혹평하였다.


그렇다면 성경은 정의(공의)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성경 계시의 점진적 진전과 더불어 다양한 의미들을 함의하고 있으나, 한 마디로 요약하면 ‘공평한 저울과 추’(레19:36)로 상징되는 공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 기준은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항상 안전하고 올바르게 행사하시고(시89:14;계15;3), 윤리적 기준과 동일하며 참된 사랑과 거룩의  표현으로서(미6:8), 메시아의 특징적 모습(사9:7;행3:14)을 말씀하신다. 이 진리는 영원히 불변하다.


정의(공의)를 수립하는 최종 목적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다. 이 사랑이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 정의의 이름으로 불의가 자행되는 세상 아닌가?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나라를 바로 잡겠다던 대통령취임사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여전히 이전과 다른 바 없다.


법은 정의를 수립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그러므로 법은 사회적 신분과 관계없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고 자조 섞인 표현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는 날은 언제쯤일까? 법은 사회 질서를 위하여 엄격하게 집행되어야 하고, 그 법은 존중되어야 한다. 요즘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얼굴은 공정, 공평, 그리고 자비는 없고 오직 분노한 얼굴들 뿐 이다. 너나없이 부정직, 불공정으로 판을 치기 때문이다.


제발 불행을 조장하는 타락한 정의(?)는 사라져 주었으면 한다. 가을 운동회 날처럼 함께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는 공정한 나라를 꿈꾸어 보자. 진 자도 이긴 자도 떳떳한 여유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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