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동안 일제의 압박과 설움에서 불쌍한 우리 민족에게 해방의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 기도로 세워진 우리나라 대한민국입니다.
매년 5월은 어린이날, 청소년의 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기념일이 많고 바쁜 달입니다. 그 가운데 국회와 관련된 기념일인 5월 10일은 유권자의 날이고, 5월 31일은 이 선거에서 뽑힌 제헌국회의원 198명이 첫 회의를 열고 헌법을 공포한 날입니다. 제헌국회는 300명 정원이었지만, 100명은 이북 몫으로, 200이었으나 4.3사건으로 제주도 선거 결과가 무효로 되면서 두 자리가 빈 채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7월 17일을 제헌절로 지키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631년 전 1392년 7월 17일에 태조가 수창궁에서 왕에 올랐으니 이날을 조선건국일로보고 7월 17일을 제헌절로 지키고 있으며 75주년이 되었습니다.)
5월 10일 유권자의 날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실시된 선거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12년 제정한 날이고, 한국은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8.15해방을 맞았지만 전승국(미국·소련) 상호간의 이해관계,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라는 구호 밑에 남북협상에 참가한 상해임시정부계의 민족진영 일부 인사들의 반대, 공산당을 비롯한 좌익 계열의 방해공작 등으로 인해 1948년 2월 26일 국제연합의 결의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우선 선거가 가능한 38선 남쪽 지역에서만 헌법제정을 위한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1948년 5.10총선 당시 선출된 제헌의원들은 언제, 어디서 첫 회의를 열며 회의 진행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선례를 삼을 만한 규정도 없고, 모두 새로 길을 내야 할 형편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당선자 신분이었던 제헌의원들은 미군정 당국자들과 협의 끝에 제헌국회 개원일자를 5월 31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1948년 5월 31일 월요일 오전 10시 20분, 제헌국회는 중앙청에서 당선자 198인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국회 제1차 본회의를 열었습니다. 첫 회의에서 국회의장 한 명과 부의장 한 명을 뽑는 선거도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의장 한 분과 부의장 한 분이라고 했는데 부의장 한 분으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라는 이정래 의원의 발언으로 곧바로 거수 표결을 통해 부의장을 두 명 뽑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부의장 2인 체제의 출발이 된 것입니다. 이어서 국회의장선거가 실시됐는데 이승만 의원이 188표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초대 국회의장에 당선됐습니다. 곧바로 신익희, 김동원 부의장이 선출되었습니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 뿌리를 내린 제헌국회 2년. 많은 사람들이 제헌국회를 1대 국회, 또는 초대국회라고 하지 않고 제헌국회라 부르는 데는 제헌(制憲, 헌법을 만들어 정함)이라는 뜻깊은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헌의회의 첫 모임에서 임시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 박사는 사회를 시작했습니다. 개회인사로 “동지여러분! 우리나라에 독립 국가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겠습니다”며 국회의원이며 어른이신 이윤영 목사님에게 감사기도 드릴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감리교 목사로 종로에서 당선된 이윤영 목사님은 단상으로 올라가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음은 그 기도내용입니다.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복을 내리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 동안 이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셔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셨으며 세계인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서 역사적인 환희의 날이 우리에게 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드러나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 아직까지 남북이 둘로 갈린 이 민족의 고통과 수치를 씻어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민생의 도탄이 오래 갈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만 확대될 것이오니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속히 이 땅에 임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독립을 주신 하나님, 이제는 남북의 통일을 주시고 또한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불과 3년 전에 해방과 함께 분단된 우리 민족에게 통일을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한 목사님의 기도가 감동이 됩니다.
첫 국회였던지라 의원들 중에는 유학자, 불제자,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윤영 목사가 기도드릴 때에 의원 전원이 자발적으로 기립하여 기도에 동참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요즘 들어 종교편향이란 말이 나왔지 그 시절에는 그런 말조차 없었습니다. 국회의원 모두가 종교와 사상을 초월하여 함께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기에 이 나라는 기도로 시작된 나라입니다. 대한민국 국회의 의사록이 기도문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뜻깊은 사실인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통치과정에 어두운 그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나라를 건국할 때에 분명한 두 가지 목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세우겠다는 목표였습니다. 그 선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둘째는 이 나라를 기독교적 가치관 위에 세우겠다는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한국 교회가 그런 비전을 받아들일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를 못하였습니다. 이승만 장로는 여러 가지 과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심중에는 하나님 사랑과 겨레 사랑이 함께 깃들어 있었습니다. 5월 31일 개원 이후 국회는 곧바로 헌법 제정과 정부 수립을 향해 속도를 냅니다. 이날 회의에는 196명의 의원이 참석해, 180표로 이승만 대통령을, 133표로 이시영 부통령을 선출했습니다. 1948년 8월 15일 당시 중앙청 앞에서 역사적인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장로이신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식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하나님께 기도로 시작한 나라입니다. <해방정국에서의 기독교> 해방 후 한국 사회의 급선무는 일제 잔재의 청산과 새로운 건국이었습니다. 당시 한반도는 미·소 군정에 의한 분할점령, 그리고 이어지는 신탁통치논쟁 등을 거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국내외의 정세는 거센 급류 속에서 부침을 거듭했고, 새로운 시대를 맞아 개인과 각종 단체들의 욕구는 거침없이 분출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교회는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통일된 조국 건설에 대한 기대와 염원을 강력하게 표출했습니다.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생각이 자리했습니다. 하나는 기독교가 이미 구미제국에서 오랜 역사에 걸쳐 실험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새로운 건국은 도덕심의 함양 없이는 불가능한데, 그것을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는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불교나 유교는 이미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실험되었는데 실패하였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