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재 목사
(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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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영적 부활도 언급할 뿐만 아니라(요5:25;엡5:14), 몸의 부활을 분명히 가르친다. 그리스도를 부활의 첫 열매요,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고전15:20,23;골1:18;계1:5), 성도들의 부활도 그리스도의 몸이 부활한 것처럼 몸으로 부활할 것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몸의 부활체는 새로운 몸의 창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전에 살았을 때 입고 있던 그 본래의 몸이 부활한 것과 하나로 결합할 것을 뜻한다.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부활체가 자기의 이전 몸과 동일한 것을 제자들에게 분명히 보여 주었다(눅24:36-43;요20:20). 이에 따라 후에 나타날 성도들의 부활체도 동일성을 가진 것이 확실한 것이다.
또한 부활체는 썩지 않으며 죽지 않으며 강하며 영광스러우며 신령한 몸이 되어 영원한 세계에서 알맞은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고전15:42-44,50;요일3:2).
그러나 성경은 두 종류의 부활을 말한다.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다(단12:2;요5:28-29;행24:15). 의인에게는 부활이 영생에 이르는 계기가 되지만, 악인에게는 부활이 심판의 전제가 된다.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동일하게 의인의 부활체는 남녀의 성별은 존재하나 세속적 관습은 없으며, 완전하고 신령한 몸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넘쳐나게 될 것이며, 자신의 삶을 오직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 안에서만 찾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 영생(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영생은 영원한 삶 이전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라고 앞서 마르틴 루터는 정의했다. 조지 래드도 같은 생각을 진술한다. “영원한 생명이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셨고 내가 그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내가 그와 함께 교제를 나누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생명을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인간이 다시 하나님과 화해케 됨으로써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케 된 것이 곧 ‘영생’이다.
하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시다는 말씀은 곧 하나님이 시간의 주(主)시라는 말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의미도 예수님이 시간의 제한을 넘어 시간의 주(主)가 되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또 장차 오실 자(계1:4-8)로 소개하고, 또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허락하신다(요3:36,17:3;롬5:21,6:23;요일5:11)고 선포하신 것이다.
영생이 하나님에 의해 영화롭게 완성된 인간의 삶을 표현한다면, 그 영생이 펼쳐지는 현장은 곧 ‘하나님 나라’이다.
영생이 하나님과 한 인간의 관계 회복을 통한 삶의 완성으로 이해되었다면, 이러한 관계의 회복과 삶의 완성이 한 개인이 아닌 전체적 우주적으로 확장된 형태가 곧 하나님 나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마지막 때의 새로워진 세상을 “새 예루살렘”(계21:2,10)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또 “새 하늘과 새 땅”(계21:1)으로 말하기도 한다.
새 예루살렘 성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거하시며 오직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 안에 거할 수 있다(계21:26-27).
새 하늘과 새 땅의 경우도 결국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또 하나의 설명으로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새 창조의 파노라마이다(계21:5-7).
그러므로 영생은 단순히 미래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의 구체적 결과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바 성도는 소망 가운데,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라고 확실하게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나’ 개인과 우리 교회 모두가 바르고 충실한 부활과 영생의 증인들일 수 있기를 간구하면서-.
- 다음 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