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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 - 김상열 장로




김상열 장로
(목포남부교회 원로)


감사는 믿음의 고백이며 축복의 출발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라고 감사합니다. 영적으로 축복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감사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미국 뉴욕에 가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라고 하는 아주 세계적인 건물이 있습니다. 층수는 102층이고 높이가 380m인데 그 위에다가 또 60m의 탑을 세웠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그 높이는 440m나 되어 집니다. 그런데 102층으로 건축한 이유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이 1620년 12월 21일 미국의 프리머스항에 상륙한 사람의 숫자가 102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도착하기는 102명이었지만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출발한 사람은 153명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처음 153명이 출발했지만 3개월 동안 배 위의 추위와 또 갖가지 어려움 때문에 51명이 해상에서 죽고 겨우 102명만이 상륙할 수가 있었습니다. 102명의 순례자를 맞이한 첫 번째 겨울은 굉장히 추웠습니다. 다음해 봄이 되기 전에 추위, 질병, 굶주림, 인디안의 습격 때문에 거의 반이나 죽었습니다. 생존자 중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장정이 21명이었고 소년이 6명이어서 모두 27명의 남자만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염려와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불안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일주일 동안의 특별기도회를 열기로 의견을 모으고 한 주간동안 특별한 금식기도를 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안과 근심이 있었습니다. 또다시 한 주간 기도회를 더 연장하자는 그런 제안도 나왔지만 누군가가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서 사랑하는 가족과 여러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큰 은혜를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농사하여 추수까지 했습니다. 이제는 금식기도는 그만하고 이렇게 우리에게 자유와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 앞에 찬미하고 감사의 예배를 드립시다”고 말했습니다. 온 회중이 이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여 그해 지은 농산물을 가져와 여러 가지 음식을 정성껏 만들고 마사소아라고 하는 추장과 90명의 인디안을 초청해 감사의 축제를 3일 동안 했습니다. 지금까지 염려하고 근심했던 모든 무거운 마음들은 다 없어지고 기쁨과 감사가 그들 마음속에 넘치게 되어졌습니다. 이 청교도들이 드린 첫 번째 감사의 예배가 축복이나 평안한 가운데서, 성공했을 때에 드린 것이 아닙니다. 다 건강할 때 드린 것이 아닙니다. 153명 중에 거의 100명이 죽었습니다. 세 사람 중에 한사람만 살고,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 죽었습니다. 그 죽음, 가난과 고통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풍요로운 대지와 드넓은 하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 전쟁의 참화 뒤에 온 평화, 이 모든 것은 인간이 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낸 자비로운 선물이거늘 전 세계의 미국인들은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기념토록 하라.” 1863년 10월 3일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제정해 공표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에 의해서 다시 시작되어진 감사절도 평화와 축복의 때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북전쟁의 그 참화 속에서 감사절을 공휴일로 선포했습니다. 한편 캐나다에서는 10월 둘째 주 월요일을 추수감사절로 기념하고, 영국은 8월 1일, 한국 교회는 11월 셋째 주 일요일에 추수감사절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서 경제가 어두워지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고통하고 있을 때에 감사절을 지키도록 온 국민들에게 공포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축복과 성공의 때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죽음, 질병, 가난 속에서 시작된 것이 공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감사하고 찬송하는 저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사용하시며, 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어떤 환경 가운데서라도 감사합시다. 특별히 우리는 고난 가운데 세상 사람들이 감사할 수 없는 그런 환경 가운데서라도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 세상을 떠난, 내일이 보장되지 않았던 생활 가운데에서라도 감사했던 이런 신앙을 본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감사를 선포했던 링컨과 같이 아름다운 신앙을 본받아서 그들이 받았던 놀라운 복과 은총을 받아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어느 의사가 쓴 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왜 모두 감사하질 않을까, 당연한 사실들은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다.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 가고 싶은 곳 어디든 자기발로 갈 수 있고 손을 뻗어 무엇이든 잡을 수도 있다.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나온다.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아무도 당연한 사실들을 감사치는 않고 당연하다고 웃어버린다. 하루세끼를 먹는다. 밤이 되면 편히 잠들고 아침이 오면 상쾌한 바람을 실컷 들이마신다. 웃다가 울다가 고함치다가 뛸 수도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당연한 일, 그렇게 멋진 것을 아무도 감사할 줄 모른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오직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뿐이다.”


손가락을 하나라도 잃어본 사람만 남아 있는 손가락에 대해 감사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다리를 잃어 본 사람만 두 다리의 고마움을 절감케 됩니다. 건강을 상실한 사람만 건강의 고마움을 알게 됩니다. 재물을 잃어 본 사람만 재물의 참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무엇보다 세상의 것을 잃어본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알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잃음, 없음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총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박국이 살던 당시의 국제정세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강대국이었던 앗수르가 망하고 애굽 역시 국운이 기울어지면서 신흥국가인 바벨론이 강력한 세력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게 됩니다. 이 바벨론이 유대나라를 노리고 있는데 머지않아서 바벨론이 유대나라를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온 나라 안에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이런 소문을 들었던 하박국은 얼마나 낙심하고 얼마나 떨었던지 창자가 흔들렸다고 했습니다. 창자가 흔들려본 경험이 있습니까. 이런 소문을 인하여서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입술이 바르르 떨렸어요. 이들이 쳐들어오는데 그 들어오는 것을 기다린다고 뼈가 막 썩어 들어가는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몸도 떨렸습니다. 뼈가 막 썩어 들어가는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얼마나 상황이 급박했으면 이런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겠습니까. 바벨론의 침략으로 다치게 될 나라의 운명이 이렇게 비참할 뿐만 아니라 자기 주변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는 식물이 없고 우리에는 양이 없고 외양간에는 소가 없어지는 이런 일들이 다가오게 되고 또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이런 환경 가운데서라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할 조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상황 속에서 하박국은 그저 감사의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도 혼자서 중얼거리는 독백이 아닙니다. 자기가 사용하고 있는 수금을 타면서 신나게 기쁘게 노래를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게 하박국의 감사입니다. 환경을 초월한, 어떤 환경 가운데서라도 찬송하며 감사할 수 있었던 차원 높은 하박국의 감사신앙입니다. 이 신앙을 우리가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사하며 감사주일로 기쁘게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하박국에게 없는 여섯 가지는 우리 생활에 있어서 절대로 필요한 생활필수품들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는 일종의 양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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