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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도(Credo), “나는 믿습니다” XII ② - 이성재 목사

죄를 용서 받을 것을




이성재 목사
(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성경은 인간의 죄가 그것이 과거의 죄이든, 현재의 죄이든, 심지어 미래의 죄이든 하나님께서 친히 그 주도권(initiative)을 가지신다.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정죄 당한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래서 임박한 종말과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없다. 그러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성부하나님의 선제적 은혜, 곧 죄 사함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贖罪)가 필요한 이유이다.


우주의 법정 안에서 그 분의 속죄가 이루어지는 순간, 절망은 희망으로 대전환을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가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 된 것이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셨다는 구원의 진리를 말씀하고 있다(히 9:24-26). 죄 사함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곧 예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동의하는 것이다(딤전 1:15).


로마서 5장 8절과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처럼 영생의 선물이 가능해진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이 지은 죄가 모두 예수님께 전가(轉嫁)되었고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에게 진노를 남김없이 쏟아 부으신 것은 인간이 철저하게 부패했고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런 죄인들을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의 형벌을 받으셨고, 그래서 이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인간의 죄 용서에 대한 유일한 근거가 된다. 성경은 전반적으로 이 사실을 분명하게 진술한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5).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내어 줌이 되고”(롬 4:25).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롬 5:8-1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13).
이상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주님이 구원의 주 그리스도로서 인간의 죄에 대한 형벌과 저주를 친히 담당하심으로써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인된 인간을 위하여(For us) 죽으셨고, 죄인의 자리에서(In our place), 죄인된 우리 인간을 대신해서(On behalf of us) 형벌의 죄 값을 온전히 지불하심으로써 우리가 ‘죄 사함’, 곧 ‘죄 용서’를 받은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본질적 의미이며, ‘죄 용서’ 교리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었다”와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은 동의어(同義語)이다.


그렇다면 ‘죄 용서가 이루어지는 좌소(座所)’는 과연 어디일까?


사도신경에서 죄 용서는 ‘성령론’ 안에 위치해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교회론’ 안에 있다.


“나는 죄를 용서받은 것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은,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나는 거룩한 보편적(Catholic) 교회, 곧 성도의 교제를 믿습니다.” 바로 그 다음에 고백되어진다.


따라서 ‘죄 용서’가 “거룩한 공교회, 곧 성도의 교제를 믿습니다”라는 고백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바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교리와 맥을 같게 한다.


“거룩한 공교회란 성도의 교제인 바, 이는 오직 거기에 죄 용서함이 있기 때문이다.”


니케아신경은 교회의 속성을 ‘단일성(하나의)’, ‘거룩성(거룩한)’, ‘보편성(공/보편적)’, ‘사도성(사도적)’ 등 네 가지를 갖는다고 말한다.


특히 이 중 “왜 교회가 거룩한가?”라는 물음에 신경은 “왜냐하면 교회 안에 죄 사함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는데, 이는 ‘거룩’은 반드시 ‘죄’와 관련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교회가 거룩한 것은 교회가 ‘죄를 용서하는 공동체’임을 끊임없이 고백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 칼뱅은 제네바 교리문답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104문 : 왜 죄 사함에 대한 고백이 공교회에 대한 진술 다음에 있습니까?


답 : 왜냐 하면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한 지체가 되지 않으면 누구도 죄를 용서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05문 : 교회 밖에는 저주와 죽음만이 있습니까?


답 : 예, 그렇습니다. 성도의 무리로부터 떨어져서 분파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의미가 없는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형성하고 있는 성도들은 교회를 ‘은혜의 수단’을 위한 청지기로서 ‘죄가 있는 것이 당연한 공동체’가 아니라 ‘죄를 소멸시키는 공동체’로서 교회의 표지(標識)가 확고하게 드러나야 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순전하게 선포되고 경청되며,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세례, 성찬)가 바르게 베풀어지며, 권징(勸懲)을 공명정대하게 시행함으로써 교회의 순결과 질서가 바르게 세워져 갈 때, 주님의 참 교회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왜냐 하면 말씀과 성례와 권징은 ‘죄의 용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는 곧 아무리 생소하고 결점 투성이라 할지라도 구원의 서정(성화)으로서 하나님이 친히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돌로 삼아 선지자와 사도들의 터 위에 세우신 교회(엡2:20)에서만 죄의 용서를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네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 앞에 필자는 날마다 때마다 옷깃을 여민다.




- 다음 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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