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가 사역하던 18세기 영국의 상황은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 종교적인 부패와 타락으로 국가 전체가 무너져가고 있었다. 아울러 당시의 영국 국교회도 마찬가지로 도저히 갱생이 어려워 보이던 암울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대에 한 체험적 신학자요, 실천적 전도자인 요한 웨슬리에 의한 “교회 안의 작은 교회”(Ecclesiolae in Ecclesia) 운동을 통한 선교운동이 어떻게 한 나라와 교회를 그토록 새롭게 갱신시키는데 성공을 하였고, 나아가 온 세계를 향해 “전 세계를 나의 교구로 간주한다”고 외치면서 세계 선교의 비젼을 제시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과정들을 종합적으로 도출해 내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웨슬리 당시를 전후하여 직면했던 역사적, 사상적 배경과 함께 그의 선교운동을 가능하게 한 웨슬리의 영적 체험과 함께 그의 체험을 중심으로 형성한 신학적인 특징들을 도출해 냄과 아울러 개혁과 선교운동의 과정 등을 연구함과 동시에 그의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가능하게 했던 중요한 선교도구로서의 “교회 안의 작은 교회”(Ecclesiolae in Ecclesia)운동의 역사적, 신학적 배경과 그 주요한 특징들을 연구함으로서 이 시대 교회의 본질 회복을 통한 선교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폭넓은 시각을 열어 주고자 하는데 그 근본 목적을 두고 있다.
한국교회는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30여 년 동안 급성장하여 선교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하였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독특한 역사적인 상황을 반영한 결과인데, 한국 전쟁을 통하여 생겨난 삶에 대한 불안과 허무의 경험과 도시화, 산업화로 야기된 소외계층의 박탈감이 교회 성장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즉 전쟁으로 인해 허물어진 정서적 안정의 회복과 소속감 회복이라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한국인들은 교회를 택했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외적 성장은 교회를 성장과 실적 위주로 평가하게 만들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교회는 성도 서로간의 관계를 소홀하게 만들었다.
이 시대에 제시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교회성장 방법은 회개운동이다. 회개를 통한 교회 성장운동이 초대교회의 교회 성장운동이었고 18세기 영국의 감리교회의 성장운동이었다. 1903년 감리교 선교사 하디(R. A. Hardie)18) 목사의 회심과 1907년 장대현 교회의 회심운동이 과거 한국교회 성장의 최대 원동력이었던 것처럼 교회는 재래종교와의 혼합이나 종교다원주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회개를 통해서 성장한다. 이제 한국교회의 성장 둔화의 요인은 바로 교회가 재래 종교의 범신론과 인간 신격화를 수용함으로 말미암아, 회개를 잃어버리고 말씀을 떠나고 성화되지 못하며, 성령의 역사는 소멸되어가고 교회는 병들어 가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웨슬리 당시에도 상당히 흡사한 현상들이었다. 18세기 영국교회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다 준 웨슬리도 교회가 외적, 형식적 측면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나는 이른바 감리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사라지는 것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그들이 단지 아무런 능력이 없는 종교의 형식을 가지면서 하나의 죽은 종파로서만 존재하지 않을까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처음 출발할 때 보인 교리와 정신과 훈련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John Wesley, The Works of John Wesley, ed., & Intro., Thomas Jackson(Peabody : Hendrickson Publishers, 1991), vol. Ⅷ. 258(이후로는 서명을 Works로 표기함); Luke Tyerman, The Life and Times of Reverend John Wesley (New York: Harper and Brother, 1870), 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