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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도(Credo), “나는 믿습니다.” 3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이성재 목사
(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이천 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전통적인 교리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교리(Trinitarian Creed)이다. 이 신앙에서 떠나면 기독교가 아니다. 그러면 전통적인 신앙이란 어떤 신앙인가? 다음 여섯 가지를 준거(準據)로 삼는다. 첫째, 성경의 영감(靈感)됨을 믿는다. 성경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요,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이며 정확무오(正確無誤)한 유일한 법칙이다. 둘째,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믿는다. 셋째, 동정녀 탄생을 믿는다. 넷째, 대속(代贖)의 구원을 믿는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제사였음을 믿는다. 다섯째,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믿는다. 여섯째,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다. 오셨던 예수님, 부활 승천하신 그 예수님께서 장차 다시 심판주로 오실 것을 믿는다. 이상 여섯 가지 신앙 고백을 믿어야 바른 신앙이며, 이를 정통주의(正統主義), 개혁주의(改革主義) 신앙이라 일컫는다. 이제 이 여섯 가지 개혁주의 신앙 중 세 번째 ‘동정녀 탄생(童貞女 誕生)’에 관한 성경적 의미를 탐구할 차례다.


「사도신경」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옛)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새)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떤 삶을 사시고, 그 삶 가운데 어떠한 일을 하셨는지에 앞서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신 일, 즉 ‘성육신’(聖肉身, Incarnation) 사건을 고백하도록 이끈다. 게할더스 보스(Geehardus Vos)는 그의 저서 「성경신학」 (Biblical Theolog)에서 ‘성육신’을 “선재하시는 메시아가 인간성(Human nature) 안에 들어오시며, 초역사적인 분이 역사의 흐름 속으로 들어오시는” 놀라운 일이라고 표현하였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이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주님이 이 세상과 역사 가운데로 오실 때 그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우리들 가운데 오심을 알려 주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탄생기사는 마태복음 1장 18절에서 25절과 누가복음 1장 26절에서 38절에 소개되고 있는 바, 이를 요약하면, “영원하신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聖子)께서 우리들의 인성(人性)을 취하실 때 그는 성령에 의해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는 방식을 취하셨고, 따라서 그녀의 몸 안에서 다른 어린 아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열 달 동안 자라다가 우리와 같은 몸을 취하시고 그 몸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세계에 출생하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셨다”이다. 그래서 일찍이 철학자요, 기독교 호교론자(護敎論者)였던 유스티누스(Justinus, 100-165)는 “어머니가 마리아라면 성령은 로고스”로 보았고, 공인된 로마 신조는 “이는 성령을 통해(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로부터(에게서) 나시고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sto, natus ex Maria virgine)”라고 고백하고 있다. 여기 성령 앞의 전치사 de(through)와 마리아 앞의 전치사 ex(from)의 두 기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령에게 쓰인 de는 성령으로부터 출원된 성자의 출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자의 출생에 성령의 어떤 기능이 도구로 쓰였다는 사실을 지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경우 성령을 성자의 아버지로 보는 것은 부당한 반면, 성자의 출생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동시적 협력사역이 있었음을 보여 주기에는 훌륭한 예가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교우 암브로시우스(Ambrosius, 320-397)와 그의 제자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는 성령으로 인한 예수님의 잉태와 출생을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해석함으로써 삼위일체론을 전개 발전시킨 훌륭한 신학자로 추앙받고 있다. (*암브로시우스는 삼위일체 찬가(Trinity Chornt), 즉 송영(Doxology)의 창시자로서 그의 찬송이 한국 찬송가 130장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신학의 성경적 근거가 요한복음 1장과 누가복음 1장이다. 요한복음이 말씀, 곧 (λόγος, 요1:1)가 그 옛날 모세의 성막 안에 거하셨듯이 이제 그 “말씀”이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 거하셨다”(요1:14)라고 기록하고 있는 바, 이는 로고스가 우리의 몸과 동일한 몸(肉體)을 취하시고 그 몸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세계에 장막을 치시고 우리와 함께 거하셨다(Immanuel)라고 변증(辨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성령은 절대로 성자의 아버지가 아니며 영원한 성자이신 아들로 λόγος와 함께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덮으신 것”이라고 변증한다(눅1:35). 예수님의 수태고지(受胎告知)에 관한 천사 가브리엘과 동정녀 마리아의 대화를 1장에서 본다. 31절, 천사: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4절, 마리아: “나는 남자를 알지(성 관계)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6절, 천사: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이 대화를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자신이 인간이어야 하되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흠이 없는 제1 아담의 형상인 완전한 인간이어야 했기에 그분이 인간으로 오실 때 “성령께서 마리아의 위에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마리아 너를 덮을 것이며, 낳으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알린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이 마리아는 항상 ‘네게’, 즉 대상으로만 나타나고 성령은 언제나 주어(主語, subject)로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따라서 마리아는 단순한 도구에 불과한 존재여서 “네가 임신하고 네가 아이를 낳을 것이다”가 아니라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이 너를 덮을 것이다.” 즉 성령이 주격(主格)이 되어 임재하심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 덮다의 헬라어 ‘에피스키아세이(έπισκιασει)’는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즉 ‘거주하다’의 헬라어 ‘스케노(σκηνόω)’라는 동사는 여성명사 ‘천막’ ‘스켄(σκήνη)’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신현적(神顯的) 임재를 표현하고자 할 때 사용되던 단어와 같은 뜻이다(출40:35; 시91:41;140:7 참조). 이는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마리아에게 있고, 그 임재의 결과 그녀는 아기를 잉태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복음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덮으심’ 곧 성육신(Incarnation)은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임재하신 것을 말하며, 그리스도는 ‘여전히 하나님’이신 채로 인간의 형상을 입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 참 사람이라고 표현할 때 그분은 완전한 인성을 갖춘 인간이셨지만, ‘인간이 되어버린’, 다시 말해서 ‘전략해버린’ 인간은 아니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도 “네 아내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1:20)고 확언한 것은 마리아의 처녀성을 강조하는 한편, 요셉 자신에게도 천사의 분부대로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지키도록 무언의 싸인을 준 것이다(마1:24-25). 이미 마리아와 요셉 두 사람 모두는 율법에 흠이 없고 동기와 과정에서 모두 하나님과 동행한 삶을 살았음을 성경은 역력히 보여 주는 한편, 성자께서 흠이 없으신 하나님이요, 온전한 제물로 잉태하셨음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잉태는 동정녀 수태의 원인이며, 따라서 남편의 씨 없이 여자 홀로 잉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이것을 가능케 한 원인이 바로 성령의 역할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다. 창조를 믿는 사람은 동정녀 탄생도 믿는다. 왜냐 하면 무(無)로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성자의 오심을 위해 동정녀 탄생을 예비하셨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결코 믿을 수 없는 불가해(不可解)한 기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옛날 갈데아 사람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으나 그 약속의 성취는 혈기 왕성한 청춘기가 아니라 그의 나이 백 세, 아내 사라 역시 구십 세, 늙디 늙어 여성의 생리가 이미 50여 년 전에 끊긴 (창17:16,18:12-13) 불가능한 상태였음에도 가능케 하여 아들 이삭을 낳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창21:1-5). 로마서 4장 17절에서 24절은 이 초자연적이며 초역사적 사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은 우리도 위함이나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그렇다! 이 말씀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죽어 있는 태를 여실 수’ 있으며,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믿음을 가졌던 아브라함이었기에’ 그는 ‘이삭의 출생’과 ‘이삭을 죽여 바치더라도 다시 살릴 수 있을 것을 믿는 일’을 동일한 것이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성도가 죄로 말미암아 죽어 있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 때문에 ‘능히 살아날 수 있음’을 뜻한다. 한편, 요셉과 마리아는 다윗의 혈통을 이어온 가문(家門, one's family)이라고 성경은 소개한다. 이는 이들이 경건한 인물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천사로부터 경이로운 은혜의 알림에 마리아는 “주의 계획 중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라고 감격스럽게, 그리고 겸손하게 이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약속대로 마리아의 몸에 그리스도가 잉태되자 마리아는 “내 영혼아 주를 찬양하며 … 내 구주를 기뻐하셨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눅1:46-48)이라고 기뻐 찬송한다. 여기에서 보듯이 마리아는 자신이 지극히 인간이라는 점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그러함에도 로마가톨릭교회는 「영원동정녀설」을 넘어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사역 이전에 이미 구원을 경험했다는 이단성을 주장했고,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Pius Ⅸ)는 「무흠잉태설」(Immaculate conception)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으며, 나아가서 원죄로부터 자유롭게 된 마리아는 당연히 죄의 삯으로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므로 육체로 하늘로 승천했다는 황당한 교리를 공포하였다. 이것이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Pius Ⅻ)가 공의회를 통해 발표한 「성모승천설」이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멘으로 응답했던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를 하자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라고 하나님을 찬송했던 순수한 믿음의 어머니를 후대의 교회가 신격화함으로써 우상으로 둔갑시킨 오류는 분명 마리아 자신도 원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 로마가톨릭교회는 교리적으로나 의식제도적(儀式制度的)으로 반성경적 이단 집단인 것이다.


이상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사람의 방법이 아닌 성령으로 한 여인의 몸을 통해 잉태케 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에 따라 완전한 인간의 출생까지 충분한 형식을 갖추었기에 우리는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성탄절(Christmas)의 참된 의미를 여기에서 찾아 경배해야 올바른 명절이 될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서 내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 다음 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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