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합니다.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 같은 열매 맺기를 원하며 쉽고 좋은 곳 마다하고 어렵고 험한 길 자처해 섬마을 선교, 전도, 복지의 사령관을 자임하며 비바람 거친 파도 견뎌내는 바다 바위처럼 이 시간도 오로지 나누어 주고자 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목회생활 46년 완도선교 교회개척 40년을 맞은 임직식에 참석해 주인공 김정두 목사의 회고를 들어봤다. -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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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김정두 |
김정두 목사는 1976년 4월 12일 경기노회에서 전도사 고시 후 성복제일교회 교육전도사 사역을 시작 1977년에서 1980년 3월까지 육군 군종으로 군복음화에 앞장서서 군 사역을 감당하며 군복무시절 수색성은교회에서 청년부 사역을 감당했다.
미아리 신일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 중 사명이 불같이 일어나 1981년 3월 안양 박달교회를 개척하여 부흥이 되던 중에 완도 금일도에서 사역하는 친구의 권유로 고민하고 기도하던 중 안양을 사임하고 완도읍 매립지 터미널 근처의 10여 평의 가게를 임시로 빌려 1982년 10월 31일 주일에 지역주민 7명과 첫 예배를 드림으로 완도선교교회를 개척했다.
장흥에 살고 있는 셋째 누나가 구입해 둔 완도읍 군내리 1232-9의 땅을 빌려서 40여 평(예배당25평, 사택15평) 창고식 건물을 지은 것이 첫 번째 예배당이 됐다.
김 목사는 1983년 10월 5일 제57회 목포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본격적인 목회자로서의 사역을 시작했다.
태풍 주의보를 만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섬마을 목회자들의 형편을 보고, 이야기를 듣던 중에 섬마을선교를 위한 뜨거운 사명을 느끼고 헌신을 다짐하게 되었고 한국섬마을 선교회를 조직, 발족하게 시켰다.
영사기를 가지고 섬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더 구체적인 사역을 위하여 1998년까지 섬 선교사역도 활발하게 전개했다. 1994년에는 24톤 급의 복음선 ‘성결호’를 많은 빚 속에 진수예배를 드렸다. 직접 앞에서 진두지휘하며 섬마을 찾아다니면서 주민들에게 떡과 버선, 수건 등을 선물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영사기를 들고 다니면서 선교영화도 상영했다. 자식도 없이 혼자 비참하게 숨져가는 주민들의 눈을 감겨드리고 장례식도 치러줬다.
열정적인 사역에 시험도 있었다. 1987년 12월 23일 교회를 사임하고 아르헨티나 선교사로 가려고 했으나 대형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 사고는 김 목사에게 섬 선교의 사명을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말씀과 은혜사역을 위하여 서울 성복교회 이태희 목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국내외 분들을 초청하여 집회를 하며 구원의 확신과 은혜의 삶을 사는데 도움을 주었고, 완도에 오봉산 기도원을 설립하여 기도의 능력으로 더 확신 있는 응답을 받아 더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도 했다.
특히 군 선교에 사명이 있는 김 목사는 육지 최남단 군부대인 청해진부대에서 4년 이상을 완도선교교회와 동시목회를 했고 군인교회를 건축하여 봉헌도 했다.
사역 중 1997년도에는 IMF라는 경제위기 속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소망이 보이지 않는 힘든 터널을 통과하던 중에 하나님께서는 김 목사 부부를 1999년 1월 12일부터 2016년 12월 23일까지 18여 년 동안 미국에서 불러 한국과 미국을 수없이 오가며 미국본도 50개주를 7바퀴를 돌며, 김영길 목사가 섬기는 감사한인교회를 중심으로 530여 교회에서 800회 이상 간증과 선교보고 및 부흥회를 인도하게 하셨다.
그리고 사역을 위한 기금모금 일환으로 사랑의 김 미역 나누기 운동을 전개했고 많은 양을 미국으로 보급하였으며 완도를 홍보하는 홍보대사로 쓰임을 받았고 이로 인하여 미국 LA에릭가세티시장상을 중심으로 나소카운티 맹가노 의장상과 미국 한인목회자들이 인정하는 자랑스러운 목회자상을 중심으로 많은 기관으로부터 감사패와 상장을 수여 받았다.
그리고 완도군창설 120주년이 되는 2016년 5월 31일에는 완도군민의 상 본상을 수상했다.
1999년 여름, 21세기 준비를 위한 목회자세미나 강사로 온 김영길 목사와 완도 해장국식당에서 만나, 제차 사역을 확인하고 2000년 완도읍 대신리에 오늘의 사회복지법인 평강재단 의 전신인 ‘평강재단’설립, 2010년 국가보조시설 완도전문요양원, 2017년 평강양로원을 개원, 현재 완도선교교회 당회장과 한국섬마을선교회 대표와 평강재단 이사장으로 수고하고 있다.
선교 및 주어진 바쁜 사역으로 봉사하지 못했던 김정두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동목포노회의 131-132회기 노회장으로 헌신 동역자들의 본을 보이며 영혼 사랑과 섬김의 목회자로서 목회사역 46년과 완도사역 40년 근속을 맞아 뜻깊은 행사를 가졌다.
김 목사는 이영채 사모와 1980년 3월 1일 서울역 앞 성남교회에서 강경규 목사 주례로 결혼 3남매를 뒀다. 첫 딸 은혜는 미국유학 중 남편을 만나 두 자녀, 둘째 딸도 공기업에서 차장으로 재직하며 약사 남편과 한 아들을, 셋째 아들은 어렸을 때 아빠 목사님의 조수가 되겠다더니 대학에서 행정을 전공하고 총신신대원을 졸업 후 목사안수 후 여수에서 목회하시는 목사 따님과 결혼했고 두 딸과 함께 본 교회를 섬기고 있는 단란한 주의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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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두 목사, 이영채 사모 |
한편 완도선교교회는 지난 10월 29일(토) 김정두 목사 성역 46년 교회설립 40년, 임직 감사예배를 드리고 권사은퇴 및 명예장로, 명예권사추대, 권사취임식을 은혜롭게 마쳤다.
△명예장로추대 김달섭 △권사취임 이귀숙 정향미 백형임 △은퇴권사 우수덕 최영애 김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