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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세상으로 가져온 교회 공동체 - 이성재 목사




이성재 목사
(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J형. 어느 새 시월도 중순에 접어들었구려. 우리 나이에 세월은 그 속도감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릅니다. 음악적으로 표현하자면 ‘빠르게’(비바체, Vivace)를 훨씬 뛰어넘어 교향곡 4악장의 절정인 ‘가장 빠르게’(프레시티씨모, Presitissimo)로 마무리 인생을 달린다고나 할까요! 그럼에도 내가 형과 사귐의 시간을 가질 때마다, 화두가 죽음이라든가 나이 듦의 아픔, 또는 신변잡담이 아닌 복음을 통해 진리를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으로 받아들여 형과 내가 각자 받은 소명(召命)을 이 순간에도 잊지 않고 사회 생활에서 어떻게 사랑과 충성과 봉사를 하고 있는가를 나누는 우정 관계라고 생각할 때, 우리 나이가 인생의 4악장 클라이막스(Climax)임에도 2악장의 깊고 진지함을 논함이 은혜입니다. 그런 가운데 ‘기독교가 인류에게 영원히 희망이 될 수 있는 길은 사랑밖에 없다’는 평소 형의 신앙관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 깊은 경지에 이른 형을 무척이나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 발걸음으로 민족의 역사를 바꾸며 인류에 희망을 줄 수 있는 기독교 교회로 존재해야 산다는 생각을 더욱 다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김병주 목사를 소개합니다. 그가 섬기는 피플스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예배당 강도대(講道臺) 벽면에 쓰여진 「살아 있는 교회, 살리는 교회」라는 표어가 내 마음을 압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축약(縮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애끓는 사랑, 창조 이래 단 한 차례도 변한 적이 없는 크신 사랑, 보시기에 좋았던 인류의 조상이 배신의 열매를 움켜쥐었을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시키신 그 사랑은 지금 <교회>를 통하여 이어지고 있다는 깨우침에 깜짝 놀라기까지 합니다. 김 목사의 눈빛은 항상 눈이 부시고, 그의 목소리는 울림이 큽니다.


J형. 초대 기독교 공동체를 머리 속에 그려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공동체는 세상을 위해 세상 속에 존재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능력이었고, 그 공동체 스스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존재로 여겼습니다. 모든 방언, 종족, 나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교회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에는 건설하거나 방어할 물질적, 시각적 공간이 없었으며, 함께 모일 특정한 장소도 없었습니다. 제국 전체에 흩어져 있었으나(다양성), 하나로 맺어졌습니다(일치). 지역이나 경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나누는 독특한 교제의 본질에 의해 맺어진 신앙 공동체가 <교회>였습니다. 초대 교회는 자신들을 세상의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 보았습니다. 또 세상의 구조 안에서 예수님을 계속 전하는 사람들로 보았습니다. 다른 왕과 다른 나라의 대사(大使)들이므로 그들은 자기들에게 로마 제국의 영속적인 집(건물)이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기억했었지요. 그 대신 그들은 히브리서가 기록한대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을 자기들이 본향을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 그들이 이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0, 13-14)의 말씀대로의 고상한 삶이었습니다.


J형. 그런데 사람들 아니 우리들은 <교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성경이 말씀한대로 “하늘을 땅으로 가져온 공동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B.C. 5세기 이후로부터 「에클레시아」(Ecclesia, 교회)는 공공 복지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결정하기 위해 부름 받은 시민들의 집회를 일컬었지요. 히브리어 「카할」(Qahal)은 엄숙하고 사려 깊은 이스라엘 종족의 집회를 뜻하는데, 70인경에서는 「카할」을 에클레시아 - 하나님의 집회 - 로 번역했어요. 모든 헬라 시민들이 시민의 문제를 말하고 「폴리스」(Poris, 도시)를 위한 의제를 제시하는 헬라의 시민양식에 기반을 두는 한편, 「에클레시아」는 당대의 정치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이는 시민들의 집회로 이해했었습니다. 신약 성경은 그 단어를 지역 회중이나 그리스도인의 집회를 묘사하기 위해 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에서 볼 수 있듯이 「에클레시아」를 <교회>로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장소나 건물이 아니고 사람이지요. 교회는 사람들이 매 주일마다 한 시간 동안 모이는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기초를 둔 대안적 실체, 즉 지금 있는 소망과 앞으로 다가올 소망을 선포하는 종말론적 ‘택자(擇者)들의 모임’이 <교회>라고 가리킵니다. 따라서 초대 교회는 세상에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를 구현했습니다. 초대 교회 선진들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지도 않았고, 세상에 항복하지도 않는, 세상에 필적할만한 공동체로서 세상을 위해 살았던 신앙의 영웅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우리 나라 대기업 상사 파견 책임자로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살았던 교우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도시에 가서 느낀 첫 인상은 기독교 몰락의 위기감이었답니다. 주일에 방문하는 교회 예배당마다 텅텅비어 있는 데 충격을 받았고, 스스로 세속주의 기독교 국기로 단정지었다고 합니다. 사업차 방문한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더랍니다. 그런데 그들의 생활에 깊이 들어 갈수록 개인의 삶과 사회가 복지면에서 기독교적 기초가 단단할 뿐 아니라 그 나라 국민들이 우리와 전혀 다른 양상의 신앙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는 것인데, 현지 사원들의 일상적인 정직하고 성실한 태도에서 「예수 믿기」와 「예수로 살기」의 거의 일치된 근무 태도에서 오히려 도전 받았다는 소회였습니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일본의 무교회주의자들이 그렇습니다. 일본은 기독교나 로마가톨릭교나 0.5% 미만에 머무는 영적 불모지이지요. 이렇듯 교세가 극도로 약한 것과는 달리 일본 사회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나 평가 수준은 대단하여 사회적 존중도가 높은 편입니다. J형도 아시다시피 내가 7·80년대에 CBMC(한국기독실업인회 중앙총무) 아시아 지역을 섬겼을 당시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경험한 바입니다. 그 적지 않은 몫은 일제 시대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와 그 제자들이 보여 준 철저한 신앙에 있었습니다. 그가 “소년이여! 하나님을 위하여 야망을 가지라”(Boys, be ambitious for God)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은퇴한 미국인 삿포로농업학교(현, 훗카이도대학) 설립자 윌리엄 S. 클라크(William S. Clark) 박사에게 감화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 이 두 분과 우치무라 선생의 제자들이 기독교 사상을 서구의 것이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의 문제의식을 개혁하는 동력으로 삼아 오늘의 일본 사회를 담아냈던 열매가 일본 사회의 질서와 친절과 공중도덕입니다. 선생은 사회적으로 일장기에 허리굽혀 절하는 것(일본은 경례가 아닌 배례)을 거부하였고, 천황제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였으며, 전쟁 반대운동을 전개하는 등 제국주의 시기에 지식인 저항 세력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내가 독자로서 존경하는 도쿄제국대학교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 박사도 이 역시 같은 이유로 해직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일본의 패전 후, 복직이 되어 모교 총장으로 추대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 사회가 가장 어두운 시기를 통과할 때 지식인으로서 제 몫을 감당한 대표적 집단으로 무교회주의자들이 꼽혔다는 것은 제도와 자산으로부터 자유로운 면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결코 다수가 아니었지만 근대 일본 사회 형성에 기독교적 정신을 일상적으로 실천했던 이들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그 사회에 기독교의 존재 양식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입니다.


J형. 형에게 편지를 쓰는 나의 본뜻은 무교회주의를 주창하거나 제도권 교회를 부정하는 논지는 결코 아닙니다. 오늘의 <교회>가 하늘의 모형이라기 보다는 세상의 축소판에 가까운 현실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어 초대 교회의 본질을 소환하다 보니까 일본의 무교회주의자들의 살아 있는, 그리고 살리는 신앙적 역동성을 한 예로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시하시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친히 보여 주셨으며, 성령께서 사도들로 하여금 세상에게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게 하셨으나 그 <교회>가 세상에 빠졌다는 점과 이를 수수방관하거나 침묵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평소 나의 생각을 다시 밝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교리)로 신앙 공동체를 이룬 <교회>는 반드시 ‘예수 닮아 예수로 살기’(사랑의 실천)로 나아가야만 비로소 세상에게 하늘(Heaven)을 보여주는 본질적인 <교회>의 모습이라는 장 칼뱅의 교회론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도권 신앙 공동체인 <교회>를 부정하거나 ‘모이는 교회’로서의 장소(건물)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와 눈에 보이는 ‘현상’을 거의 절대시하는 ‘금송아지 우상’(왜곡된 교회관)을 극복해야 산다는 16세기 개혁자들의 신앙을 기억(Remember)하면서입니다. 실제로 남서울은혜교회가 발달장애인 밀알학교를 개설하고 건물을 지어 그 특수학교 밀알재단에 자산 전체를 기부채납하고, 교회는 예배와 각종 모임을 유상임대하여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는 예는 좋은 모범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건물과 자산이 사람보다 우선시하는 풍조는 없어야 하기에 드리는 예입니다. “진리의 복음은 영혼이 하늘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땅에 가져오는 것이다”라고 말한 마이크 어(Mike Erre) 목사의 교회관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주님께서 형과 나에게 주신 사명은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상으로 가져오는 사역자라는 명제를 재확인하면서 펜을 놓습니다.


J형. 환절기에 건강 유의하시고, 형의 축적된 지식과 성숙한 인격으로 아우의 부족한 부분들을 바르고 곧게 펴 주시기를 계속 기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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